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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글쓴이 : 김요영    12-05-14 17:20    조회 : 4,228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김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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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을 타고 설핏 든 낮잠을 깨우는 그윽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부드러운 냄새,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아 핸드 드리퍼로 내려먹는 새로운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아들 녀석이 또 한 잔을 음미 중인가 보다.
두어 달 전 느닷없이 일본영화 카메오 식당을 보다가 손님 없는 식당을 지키면서도 커피콩을 갈아 하얀 도자기 드리퍼로 내려먹는 주인공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녀는 마치 의식을 치르듯이 그렇게 정성을 다해 한 잔의 커피를 만들었다. 즉시 온라인 쇼핑몰을 뒤져보았더니 가격도 저렴한데다 그라인더와 하얀 도자기로 된 드리퍼, 덤으로 블루 마운틴 원두 한 봉지를 패키지로 파는 게 눈에 띄길래 앞뒤 생각 없이 당장 구입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듯이 식탁 위 과일 바구니랑 양념통들을 제치고 어느 새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이놈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나 자신이 카메오 식당의 여주인이 된 듯하다. 그런데 정작 구입한 사람은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하고 있고 아들놈이 늘상 커피를 갈고 있다. 그렇게 마실 작정이면 원두를 더 사다 놓으라고 한마디 했더니 냉큼 주문을 했단다. 얼마나 애용을 하려고 그러는지
고종황제는 하루 종일 수시로 커피를 마셔대는 지독한 커피 중독자였다. 의지했던 아내를 졸지에 잃은 후 백성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힘없는 황제의 고통을 감수하며 아관파천을 감행했을 때 그를 지탱해 준 게 아마도 쓰디쓴 커피가 아니었을까. 도망치듯이 거취를 바꾼 그에게 러시아 공사는 생전 처음으로 진한 커피를 진상했다고 야사는 밝히고 있다.
그렇게 즐기고 애음하던 커피 때문에 독살의 위기도 겪었으니 아관파천 당시 역관으로 세도를 누렸던 김흥륙이 러시아와의 통상에서 거액을 챙겼던 사실이 드러나 관직을 내놓고 유배까지 가게 되자 궁중 내인(內人)을 매수하여 고종이 먹을 커피에 아편을 다량 탔던 사건이 있엇다.. 다행히 평소 마시던 맛과 다름을 알아차린 고종은 삼키지 않고 뱉어 냈으나, 같이 동석했던 순종은 모두 마셔버렸다. 그런 까닭이었는지 죽을 때까지 순종은 아편 중독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저런 기록을 빌미로 쓴 김탁환의 소설 노서아 가비에서는 주변을 항상 경계하며 노심초사에 애간장이 타는 말년을 보냈던 답답한 통치자의 심정을 커피라는 매개물을 통해 조금이나마 드러내 보이고자 했던 의도가 아니었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은 어디였을까. 요즘은 흔하디흔한 커피 하우스가 1902년에 문을 열었다. 고종의 커피수발을 들던 손탁 여사(러시아공사의 동생)가 황실의 후원을 받아 건립한 덕수궁 뒤편 2층짜리 손탁 호텔 아래층에 개업했으나 그 곳은 상류층들만의 비밀장소였기에 서민들은 아마도 그런 곳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커피 하우스는 1919년 삼일운동 이후 비로소 생겨났고, 한국인이 꾸민 최초의 다방은 영화감독 출신인 이경손이 1928년 관훈동에 개점한 카카추였다. 그리고 그 이후의 다방은 예술가들의 집합소로 신문화의 상징이 되다시피 했다. 전화가 귀했던 시절이었으므로 다방에서 모든 일상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다방의 역사에 대학가를 배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 제일 하고픈 일 중 하나가 다방에 들어가 태연스럽게 커피를 주문해 마셔보는 것이었는데 그 어색함은 신입생티를 벗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래도 그 어색함을 떨쳐버리려고 삼삼오오 다방에 모여 정담을 나누기에 시간은 항상 모자랐다.
그런 다방커피에 익숙해질 무렵 간간이 일부 커피숍에서는 원두커피를 맛 볼 수 있었다. 일반 커피 값을 훨씬 상회하는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울적할 때나 간혹 축하 할 일이 생겼을 때 과감하게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분위기에 젖어 우아하게 마시곤 했다. 그렇게 커피는 내 일상으로 비집고 들어와 커피를 줄이라는 의사의 강력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내 감성을 지배하고 있다.
꼭 원두커피가 아니더라도 커피가루에 물을 붓는 순간 퍼지는 향기는 일품이다. 향기만 맡고도 온몸의 고통이 잦아들어가는 경험을 때때로 한다. 게다가 그 진한 내음을 능가하는 오묘한 맛은 일차로 혀를 자극하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벌써 구석구석 말초신경을 깨운다. 온갖 시름이 그 한 모금으로 인해 자취를 감춘다. 커피 마니아라기보다는 중독 증상에 가깝지만 무릇 모든 중독이 그렇듯이 쉽게 빠져나오질 못한다. 아니 나올 생각조차 안한다고 할까. 오히려 자판기 커피부터 아직 시음해보지는 못했지만 최고로 치는 루악커피까지 마다할 생각이 전혀 없다.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커피 한잔을 권유 받는 그 순간에 난 무지 행복한 사람이 된다. 맘이 통하는 지인과 공유하는 커피향은 그 자체가 언어이기 때문이다.
온 집안을 카페처럼 진한 향이 감싸 돌고 있다. 그리고 코끝에서 뇌신경을 자극하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한 한 잔의 커피가 도자기 컵에 담겨 나를 유혹하고 있다.
아마도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아들놈이 어미 것도 내렸나보다. 그래 , 아들아 우리 동호회나 한번 만들어 볼까나. 커피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나이나 지위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 커피 하나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으므로.
(20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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