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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토끼에게 파란 조끼를 입혔나    
글쓴이 : 김요영    12-05-14 17:21    조회 : 3,662
누가 토끼에게 파란 조끼를 입혔나
김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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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 극장의 영화포스터만 보고서도 강렬한 욕구를 느끼는 영화가 있다. 파란 눈동자에 같은 색의 상의를 입고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한 여배우의 모습이 인상 깊어 꼭 보려고 다짐 했지만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했는지 금방 간판을 내리고 말았다. 자신의 게으름을 탓할 무렵 DVD가 출시되어 나를 사로잡은 영화 미스 포터를 아쉬운 대로 접할 수 있었다.
파란조끼를 입은 토끼의 모습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펜시 용품이나 자잘한 가정소품의 한 귀퉁이에서 늘 볼 수 있다. 단추 달린 파란 조끼를 입고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어준 피터 래빗은 100여 년이 넘는 세월에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캐릭터다. 그 피터 래빗을 탄생시켜 옷을 만들어 입히고 꿈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 여성이 영화의 주인공 베아트릭스 포터다.
그녀는 빅토리아여왕 시대인 1866년 런던 근교의 볼튼 간든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동물에 관심이 많아 옥상에서 토끼, , 개구리 등을 키우며 면밀히 관찰하더니 그들의 특징과 습성을 정밀하게 그려서 색을 입히곤 했다. 귀여운 카드로 몇 장 씩 그려서 팔기도 했지만, 삼십 세가 되면서는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고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동화책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옷을 입힌 그녀의 동물 친구들 그림을 책으로 출간하고 싶어 했으나 그녀의 재능을 알아주는 곳이 없었다. 다행히 편집자 노먼의 눈에 띄어 그렇게도 바라던 동화책을 출판하게 되어 피터 래빗은 명성을 얻게 된다. 동심은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지 이후 백 년 동안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1억 부 이상 팔렸다.
자신의 책을 출간 하면서 노먼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연민의 정이 싹터 점점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시대 여성들이 흔히 그러했듯 부유한 남자와의 결혼을 바라는 부모와 평범한 삶이 싫어 서른이 넘도록 그림 그리기에만 열중했던 그녀에게 노먼과의 사랑은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프로포즈를 기쁜 마음으로 수락한 그녀는 극심한 부모의 반대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결국 그녀의 부모는 여름휴가 석 달 동안 떨어져 지내면서도 그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결혼을 허락하겠노라는 약속을 하게 된다. 휴가지로 떠나는 비 내리는 플랫홈에서 노먼과의 짧은 만남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끊이지 않고 노먼에게서 오던 편지가 오지 않자 당연히 사랑이 식을 줄 알았다는 부모의 한마디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녀를 옭아맸다. 안절부절 하는 그녀에게 기차역으로 그녀를 배웅하러 나왔던 날 많은 비를 맞은 후유증으로 깊은 병이 들었다는 노먼의 여동생으로부터의 편지가 전해진다. 즉시 런던으로 돌아간 그녀는 막 장례를 치른 사랑하는 노먼의 부음 앞에 절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의 추억이 가득한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선택한 곳은 어릴 적부터 정든 가족의 여름 휴양지였다.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한적한 농장에서 그녀는 더 많은 영감과 평온을 얻어 계속 이야기가 있는 캐릭터를 탄생시키면서 생을 마치게 된다.
여성들의 지위가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되었다는 지금도 자신의 일을 갖고 살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 더구나 베아트릭스가 살았던 당시에는 오직 좋은 결혼만이 여성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였다. 그런 편견에 과감히 맞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하며 산 그녀를 행운아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물론 딸의 재능을 발견하고 물심양면 밀어준 그 아버지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주위의 온갖 회유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생을 지켜나간 조그만 여인의 뚝심이 부럽다.
런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마을 레이크 디스트릭스는 그녀가 평생을 살았던 곳이다. 그녀는 주인이 떠난 농장을 사들여 계속 작품을 그리며 살게 된다. 그곳의 훼손 되지 않은 자연들을 너무 사랑한 그녀는 개발로 인해 팔려 나가게 된 주변의 농장들을 차례로 사들이며 77세로 명을 다할 때까지 자연보호 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그녀는 500만평에 이르는 땅과 물려받은 유산을 협회에 기증하였다.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해 줄 것이라는 전제조건을 유언으로 남겼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곳은 당시의 모습이 완벽하게 보존 되어 있어 휴양지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장장 11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만큼 모든 스텝들이 열정을 갖고 제작에 임했던 작품이다. 특히 주연으로 나온 르네 젤위거는 공동제작자로도 동참했다니 영화에 쏟은 그녀의 정성이 놀랄 만하다. 모든 촬영을 영국에서 했음은 물론 단추 하나까지도 고증을 할 정도로 의상에도 신경을 썼다는 후문이다. 단순하고 소박한 당시 그녀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각종 캐릭터들이 종이 위의 그림에서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의 장면을 간간이 삽입한 감독의 재량도 충분한 눈요기가 된다.
영화 속의 그녀는 바람에 일렁이는 호수와 병풍처럼 낮게 둘러 쳐진 산, 언덕을 이루며 이어지는 연초록의 풀밭에서 항상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욕심 없는 순수하고 솔직한 성격의 베아트릭스의 배역에 배우 르네 젤위거는 제격이다. 상기된 얼굴과 웃을 때의 발랄함이 움직이는 피터 래빗과 조화를 이뤄 아주 인상적이다. 무엇이 인상이 깊었냐고 물으면 딱히 꼬집어 이거다 하고 말할 수 없는 영화. 처절한 로맨스가 펼쳐진 것도 아니고 자신의 뜻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한 것도 아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여인의 일생을 잔잔하게 조명한 영화다.
죽이고 싸우는 장면에 길들여진 요즘 이런 건강한 시네마 한 편 보는 것도 머릿속을 정화시키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평생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면서 즐겁게 살았고 뛰어난 작품까지 남겨 아직도 전 세계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키워 준 그녀는 나름대로 성공한 일생을 살았다. 그녀가 그림에 몰두했듯이 나 또한 즐겁게 글 쓰는 법을 터득해야 할 텐데 피터 래빗이 베아트릭스를 통해 태어 난 것처럼 일생에 남을 한 편의 수필이 써질 그날을 기다려본다.
 
(2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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