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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살던 그곳은    
글쓴이 : 김요영    12-05-14 17:30    조회 : 3,211
나의 살던 그곳은
김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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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원피스에 레이스가 잔잔하게 달린 앙증맞은 옷을 입고 둥글게 둘러선 사람들의 함박웃음 세례를 받고 있는 큰 눈망울의 아이가 있다. 넓지 않은 마당 한구석 수돗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무척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내 기억의 태입은 말해주고 있다.
추억여행을 위해 그동안 꺼내지 않고 보관중인 태입을 과거로 돌리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 반추 해볼 수 있는 그 끝에 다섯 살의 인형 같은 꼬마가 부르고 있다.
6.25 때는 넓은 집을 돌아 나다니기가 번거로워 뒷문과 앞문을 열어 놓으면 군인과 이웃들이 집안을 통과하여 큰길로 나갔다는 그 알토란같은 집. 종로구 청진동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그리고 집안에 우환이 계속되자 서둘러 이사를 결심하셨던 것 같다. 화신백화점 맞은 편이었다니 그대로 있었다면 아주 큰 부자가 됐을 거라며 엄마는 지금도 아쉬워하신다. 하지만 그곳은 기억의 영역 밖이다.
계단을 스무 개쯤 올라가서 다시 대여섯 개의 높은 층계를 밟아야만 대문에 닿았던 왕십리 그 한옥이 철없던 시절의 밑그림이다.
폭이 좁은 장롱과 서랍이 달린 경대가 가구의 전부였던 연탄광 옆 아랫방은 두 사람이 누우면 공간이 별로 없었다. 경대 위에서 까치발을 하고 창문을 내다보면 건너편 집 마당이 보일 정도로 높은 집이었다.
뾰족한 처마가 하늘을 향해 그림을 그릴 때면 장독대 위로 형형색색 빨래들이 난무 하고 방 네 개가 움푹 들어간 마당을 향해 미닫이문으로 방주인의 비밀을 지켜 주던 일곱 식구의 둥지였다. 장독대 밑의 반 지하실은 종종 숨바꼭질의 비밀장소가 되기도 했고 우리 집보다 열 계단 쯤 더 높았던 옆집으로는 부엌 조각문을 통과하여 곧바로 통했으므로 새댁이었던 아줌마가 재빨리 숨겨 주곤 했다. 한 골목 세 집은 숟가락 수까지도 알만큼 속속들이 사정을 아니까 일 년에 몇 번 보던 큰집 작은집 식구들보다도 더 돈독한 이웃이었다.
엄마가 외출하시면 큰언니의 신발장을 뒤져 하이힐을 신고 온 집안을 뱅글뱅글 돌며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은 나만의 놀이였다. “문 열어라소리에 혼비백산하여 뒤처리 하느라 허둥대던 일, 무쇠로 만든 큰 드럼통에 가득했던 쌀로 장사를 한다며 신문지에 담다 바닥에 흘리는 바람에 수월찮은 잔소리를 들었던 일, 밤새 눈이 내린 아침이면 장독 뚜껑에 쌓인 눈으로 크고 작은 무늬를 만들며 그렇게 세월을 색칠하고 있었다. 무지개 보다 훨씬 많은 나만의 색깔로.
그러나 그 집에서 처음 죽음이라는 상황과 직면하기도 했다. 매일 어스름 해질 무렵까지 사고치고 노느라고 정신없던 그런 평범한 날들 중 하루, 집안 분위기가 수상했다. 아마도 초등학교 일 학년 쯤이었을까?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던 언니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홀연히 모두에게서 떠나버렸다. 그 해 봄 버스를 타고 동대문 운동장으로 어린이날 행사에 가는 나에게 십 원짜리 동전을 쥐어주었던 예쁘고 날씬했던 큰언니. 나는 차비를 준 걸로 착각하고 차장에게 쥐어주고 내려 버렸다. 그날 저녁 언니는 군것질하라고 주었더니 차비를 냈다고 은근히 책망하였는데…… 며칠 후 뒤늦게 소식을 들은 언니의 친구가 찾아와서 또 한번 엄마의 눈물샘을 봇물 터지듯이 흔들어 놓았다. 희미한 그림자 같이 서럽게 우시던 엄마의 실루dpt이 안개처럼 눈앞에서 흩어진다.
피난가다 홍역으로 잃었다는 세 명의 언니 오빠는 부모님의 심중에 아픈 상처로 남았음이 분명하거니와 이미 장성한 언니의 죽음은 또 다른 칼날이 되어 오래도록 상처를 더했다. 철몰랐던 나조차도 엄마의 얼굴을 보기가 거북할 만큼.
여유로웠던 집안형편 덕분에 흔치 않았던 냉장고와 TV, 그리고 렛슨을 받았던 셋째 언니 덕분에 피아노까지 소유하는 호사를 누렸다. 경찰 단속을 피해서 몰래 물건을 팔러 다녔던 속칭 미제 아줌마. 알록달록한 껌, 탱이라고 부르는 분말 쥬스, 화장품, 쵸콜릿과 언니의 긴 부츠까지도 그녀의 보따리에서는 술술 나왔다. 유난히 단속이 심했다던 어느 날인가는 허리춤에서 둘렀던 옷감을 꺼내 놓기도 했다.
제법 으스대고 다녔던 열두 살까지의 추억이 스며 있던 집,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귀가 얇았던 아버지의 사업이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5월이 되면 보라색 꽃이 만개해 허접한 나무 대문을 가려주었고 그 향기는 좁은 골목을 가득 메웠지만 한 없이 초라했던 곳. 라일락을 보면 지금까지도 곤궁했던 사춘기시절을 저절로 떠올리게 되고 그 잔상으로 며칠씩 가슴앓이를 하게 된다. (2008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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