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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이와 누리    
글쓴이 : 옥화재    12-05-15 21:50    조회 : 3,605
뚱이누리
 
옥화재
 
뚱이누리는 일곱 달 전부터 함께 살게 된 금붕어 두 마리의 이름이다. 고도비만으로 뒤뚱거리는 검은 놈이 뚱이, 옅은 금빛으로 비교적 날씬한 놈이 누리다. 어항에서의 평균수명이 길어야 1년 정도라는데 4년을 넘긴지도 한참 지났으니 하시라도 닥칠 이별을 정해진 수순으로 받아들이리라 생각하며 한 지붕아래서 지내고 있다.
어느 해 이천 도자기축제 행사장에서 맞춤한 도자기 한 점을 발견하고 제법 많은 값을 치르고 내 것으로 만들었었다. 청자 빛깔을 닮은 청회색 그릇인데 표면에 부조된 매화꽃 문양이 섬세한 것이 우선 보기에 좋았다. 게다가 제법 큼지막한 자배기모양이라 두루 쓰일 것 같아 샀는데 때맞추어 다니러온 예쁜 도둑의 눈길이 오래 머물기에 조금 아까운 마음은 감추고 미리 사두었던 선물처럼 내어주었었다.
달포쯤 후에 딸네 집엘 들렸더니 그 그릇 속에서 겨우 눈만 붙은 새끼 금붕어 두 마리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나이 들도록 그릇욕심을 놓지 못한 나를 잘 아는 딸은 마뜩찮은 내 표정에 안기듯 파고들며 어리광을 부렸다.
엄마! 임시야! 임시.”
외손자 녀석이 어린이날 백화점행사에서 얻어온 것인데 마땅한 그릇이 없어서 임시로 썼다는 이야기다. 이미 내 것이 아닌지라 겉으로는 웃어 넘겼지만 속마음은 영 섭섭해서 금붕어에게는 눈길도 안주고 서둘러 돌아왔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도자기 속에서 잘 자라주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오가며 정이 들었는지 때때로 궁금하기도 했다. 현관에 발소리가 들리면 물위로 주둥이를 내밀어 마치 뽀뽀라도 할 것처럼 뛰어오르는 모양새로 온 식구의 사랑을 받아내더니 아이들 입에서 끈질기게 주문하던 애완견 키우자는 말이 사라졌단다.
지난해 말. 딸네식구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됐다. 아이들 교육이며 여러 가지를 놓고 운을 띄우기는 했었지만 이리 급하게 갈 줄은 몰랐던 터라 감당키 어려워 며칠을 심하게 앓고 말았다. 그간 딸과 지냈던 나날들. 40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여덟 달 반 만에, 그것도 거꾸로 세상 빛을 본 딸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속이 깊은, 드러냄 없이 타인을 배려하는, 내게는 가장 가깝고 신실한 이웃이었다. 가정을 이루어 남매를 두었고 남편과 예쁘게 살아 주변에 잔잔한 기쁨을 나누더니 이 땅을 떠나 살겠다는 것이다. 부암동으로, 인사동으로, 둘이서만 다니던 길, 찻집... 170센티나 되는 큰 키도 팔랑팔랑 내게는 작은 나비. 클로버 꽃시계가 잘 어울리는 다섯 살 박이 소녀가 아직도 내 가슴에 머물러있는데 나를 두고 떠나겠다고 한다.
내 눈길이 미치는 곳에 있어 주면 좋으련만... 얼굴을 마주하고, 어루만지며 살고 싶은데 저들 살아가는 길에 정말 중요한 일인지라 내 생각을 드러내놓을 상황도 아니었다. 몇 차례 딸집을 오가며 내 마음을 다지는데 짐 싸는 날이 가까워 오자 무언가 끙끙거리는 눈치였다. 자꾸 눈물이 나려는 내 표정을 모를 리 없는 딸이 엉뚱하게 도자기 얘기를 꺼낸다. 그릇은 가져가야겠는데 금붕어를 그곳에서 옮겨내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며 넌지시 하는 말 한마디.
엄마 손은 무엇이든 살리는데...” 금붕어 두 마리를 나보고 맡으란다.
생명 있는 것을 엄동설한에 버릴 수도 없고 더구나 아이들이 정들여 기르던 것인지라 즉시로 비닐 통에 담아 출발했다. 도중에 음악회까지 참석하고 오느라 4시간이나 걸렸더니 옮겨놓은 그릇에서 바닥에 붙어 꼼짝도 않았다.
밝은 날 다시 살펴보니 뚱이란 놈은 여전히 옹기 바닥에 선 채 거의 움직임이 없고 누리 는 아래위로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새집을 살피고 있었다. 물속이 어둡기에 흰색 자갈을 깔아주고 수련 화분을 옆으로 비켜놓아 공간을 넓혀주고서 하루가 더 지나자 안정이 되는지 뚱이도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떠날 때까지는 살려내야 한다는 부담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던 참이라 반가워 먹이 몇 알갱이를 주었더니 둔한 몸짓으로 다가와 입질을 했다. 맘껏 표현할 수조차 없는 서운한 마음 한구석을 이놈들이 채워주려나 보다 여겨지니 퉁방울 같이 나온 눈도 밉지 않았다.
 
어느새 6개월이 지나 봄 마당에 꽃이 흐드러졌다. 이삼일에 한번 씩 화상 통화로 만나는데도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 건 순전히, 봄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딸 때문이리라.
엄마 퍼피 피었어요?” “아니 서부해당화가 흐드러졌다.”
엄마 물망초는?” “, 인제 피기 시작해.”
엄마 언제 오실 거예요?” “7월쯤.”
! 사랑해.” “나두.”
뚱이와 누리는?” “잘 지내지.”
통화를 끝내고서 니들만 두고 갔구나.” 혼자 소리를 하며 금붕어와 눈을 맞추려니 먹이 보채는 몸짓과 함께 요상한 소리를 내며 재롱을 부린다. 눈으로 따라가며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낯가림 하는 것처럼 슬며시 부레옥잠 아래로 숨어든다. 명이 다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보살피리라 생각하다가 문득 어미 마음은 헤아리지도 않고서 제 자식과 훌쩍 떠나버린 딸을 대신해 미물에게 정을 쏟고, 위로를 받으려는 나를 발견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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