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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 한번 해 봅시다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9:07    조회 : 6,013
 
연애 한번 해 봅시다

                                                                                                                 노 문 정 (본명:노정애)


  “코피 나게 연애 한번 해 봅시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가 내게 한 말이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화학과 조교 김선생의 고교동창이었다. 서울에서 친구가 여름휴가를 왔는데 바쁜 일이 생겼다며 잠시만 내 사무실에 있게 해달라고 그를 보냈었다. 처음 말을 건넬 때 저음인 목소리는 들어 줄만했지만 수박씨처럼 새까만 피부, 말린 북어 마냥 깡마른 체구, 날카로운 눈매가 성깔 있어 보이는 별 매력 없는 남자였다. 
  “연애는 김선생과 하세요. 내일 섬으로 휴가 떠나요” 벌처럼 ‘톡’ 쏘아 주고는 헤어졌었다. 다음날 친구들과 터미널에 들어서는데 그가 휴가 받은 다른 친구를 꼬드겨 대동하고 나와 있었다. 언제 올지 몰라 새벽부터 기다렸다며 내가 가는 섬으로 그들도 휴가를 간단다.
 내 친구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2박3일을 함께 보냈었다. 청바지를 뚫는 독한 섬 모기에게 헌혈까지 하며 둘만의 야간 데이트도 즐겼었다. 어느 순간 까만 피부는 건강의 상징처럼 매력 있어 보이고 마른 체구는 부지런하고 날렵해 보였다. 날카로운 눈매는 총명함의 발산 같았으며 모든 일 척척 알아서 해주는 자상함 까지 가지고 있었다. 밤바다 앞에서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불러 줄 때는 괜히 가슴이 떨렸었다. 휴가를 마친 그가 서울로 갈 때 자존심으로 무장한 난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더 쌀쌀맞게 굴었었다. 여름은 그렇게 내게 선물을 주고 유혹하듯 뜨거운 눈빛을 보냈었다.  
  부산 광안리 갯가가 고향인 난 손광성의 수필 <바다>의 “까닭 없이 가슴이 답답할 때 우리가 찾아가는 바다, 바다는 물 한 모금 주지 않고도 우리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우리들의 수척한 어깨를 그의 부드러운 어깨로 감싸 안는다.”는 글처럼 집 앞에서 사춘기의 답답함을 호소하고 청춘의 목마름을 토해내며 짝사랑으로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 받았었다.  
  해수욕장이 앞마당이라 여름에 좋았을 거라는 상상은 금물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속에서 불이 나거나 땀이 많아 끈적임을 달고 사는 체질도 아니면서 여름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며, 종교도 없는 주제에 방자하게 하나님께 사계절 중에서 여름만 빼 주시면 안 되겠냐고 몰래몰래 빌기도 했었다. 조용한 밤 들뜬 가슴을 어쩌지 못해 제 몸만 부수는 파도가 창문을 가만히 두드리고 짭조름한 냄새가 가득 베어있는 내 방은 해수욕장이 개장되면 항상 손님용이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친척들은 번호표 뽑고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차례차례 우리 집으로 휴가를 왔었다. 지금이야 일년 내내 사람이 붐비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아버지가 터를 잡으신 70년대는 여름 한철만 피서 인파로 넘쳐났었다. 사람 좋아하시는 부모님은 위치가 좋아 친척들에게 바다를 선물할 수 있다고 좋아하셨지만, 방학도 반납한 체 방까지 내주어 안방에 끼여 자야하고, 식사와 간식, 잠자리까지 모든 심부름을 도맡아해야 하는 내게 여름은 불청객 같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친척들의 방문은 뜸해졌다. 전국에 생긴 콘도며 호텔 같은 숙박 시설이 흔해지고 함께 올 아이들도 어느새 커버린 탓에 휴가 인파가 늘수록 내 집 손님은 줄어들었다. 가끔 바다를 찾은 내 형제들의 친구들만이 저녁 한 끼를 해결하러 들리곤 했었다.  친척 분들을 기다리시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여름 방학을 돌려받은 난 눈만 뜨면 새로 생겨나는 바닷가 카페에 친구들과 몰려다니느라 집에 있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외박이 허락되어 동아리 M.T도 마음 놓고 갈 수 있었다. 변덕이 죽 끓듯 해 사계절 중 여름이 최고라고 몇 년을 떠들고 다녔었다. 최고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여름은 내게 선물까지 주었다.  
  그 선물은 19년째 나와 한 이불 덮고 있다. 여전히 까만 피부에 얼굴에는 세월의 나이테 같은 주름을 만들었고 날렵한 몸매는 불어나서 배까지 나왔다. 총명해 보였던 눈빛은 피곤함에 찌들어 휴식이 필요하다고 쉴 자리만 찾는다. 자상함은 언제부터인가 실종 상태다. 저음인 목소리는 노래는커녕 하루 10분도 들을 수 없다. 처자식 먹여 살린다고 밤낮으로 노력 봉사 중이다. 축 쳐진 어깨로 힘없이 귀가하는 그를 볼 때면 안쓰러움이 앞선다. 코피 나게 연애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가끔 그에게서 바다를 본다. 폭탄처럼 퍼 붇는 내 잔소리를 고깃배 삼키듯 꿀꺽 하고는 잔잔한 파도처럼 응수한다. 아이들을 성질 사나운 엄마보다 더 많이 이해하고 넉넉한 가슴으로 품을 줄도 안다. 함께 고민해야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 바위를 감싸는 바다처럼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해결사 노릇도 한다. 폭풍우치는 밤바다처럼 화를 내어 온 가족을 벌벌 떨게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침 뚝 때는 모습이 영락없는 바다다. 오늘밤 그의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은데 그는 출장 중이다. 바다는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릴 뿐 제 발로 오지 않는다.       
  
 
                                                                                  <에세이 플러스>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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