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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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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남자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9:26    조회 : 6,075
 


                                                       가을 남자

                                                                                        노문정(본명: 노 정 애)


“아버지세요? 김해 날씨도 꽤 추워졌죠."
“그래, 뒤뜰 대나무가 어찌나 우는지 시끄러워 밤잠을 설쳤다. 별일 없고, 시어른 모두 안녕하시고? 정말 가을인가 보다. 항상 건강에 유의해라."
“네 감기 조심하시고 다음에 또 전화 드릴께요."
  서둘러 수화기를 내려놓으니 마음이 허전하다. 계절 탓인지, 6년째 꼼짝 못하고 누워 계신 아버지 때문인지 텅 비어 버린 가슴에 시린 바람이 지나간다.
  가을은 매년 오건만 이 해가 혹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마지막 가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노란 은행잎과 푸른 하늘빛조차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운전을 즐겨하시며 가을여행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게 한다며 좋아하셨는데.... 자식들이 커서 앞가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거실 TV에 메모 한 장 달랑 붙이고 서둘러 길떠남을 하셨다. ‘우리는 떠난다 기다리지 말아라.' 그 분들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씩 여행을 했다. 어느 산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지, 갈대 숲들이 어떻게 울고 있는지,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보는 노을은 어떤 빛인지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곤 하셨다. 그 사진들이 집의 벽면을 가득 메우고 앨범 속에 정리되면 마당에 있는 나무들도 옷을 벗어 겨울을 준비했다.
  그 중에서 지금까지 내가 가 본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가끔 휴일에 부모님을 따라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 떠난 기억들은 내 앨범 속에 형형색색 단풍 가득 담은 산 그림자를 배경으로 웃고 있는 정지된 화면 속에만 있을 뿐이다.
  10월에는 아버지의 생신과 결혼기념일이 함께 있다. 당신의 인생에 태어남과 결혼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이 계절에 있어 더 많은 애착을 가지신 것은 아닐까. 부모님의 신혼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네 아버지가 달빛아래 코스모스를 가득 들고 대문에 들어서면 세상이 다 환해 보였지"는 어머니를 추억 속에서도 행복하게 만들었다. 시집살이하는 아내를 위해 길가의 꽃을 꺾는 남편의 낭만도 가을 달빛의 넉넉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생일 또한 유별나게 치르셨다. 언니가 결혼하여 새식구를 맞기 전까지는 매년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생일 상을 드셨다. 낳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라며 그 날의 의미를 꼭꼭 되짚어 주신 후 어머니와 함께 시골로 가시곤 했는데 덕분에 우리 사남매는 주인공 없는 미역국을 먹었다.
  생일을 핑계삼아 부모님 기쁘게 하려는 배려도 우리들에게 효를 가르치려했던 당신의 깊은 뜻이 숨어있다는 것을 난 철이 든 후에 알았다. 아마도 아버지에게 오는 가을은 남자의 계절 운운하는 것과는 다른 자연을 사랑하며 탄생의 봄과 성숙의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어야 제 색을 찾는 아름다운 빛깔의 단풍들처럼 인생의 농익은 모습이 아닐까.
  어쩜 어젯밤 아버지의 꿈속에서는 건강한 모습으로 어머니와 함께 가을 산 속에 묻혀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하셨을 것이다.
  대나무 우는 소리 시끄러워 잠을 설쳤다 해도 이 계절 더욱 더 허허로와 하시는 푸념 속에는 서울로 시집 보낸 딸 보고싶은 마음도 숨어 있을 것이며 꼼짝 못하시고 누워만 계셔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쓸쓸한 대 바람 소리 같아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보고 싶어하는 외손녀 둘 데리고 친정 나들이하면 가을산 그리워하며 누워 계신 허허로운 마음 달랠 수 있을지. 빨리 건강해지셔서 내년에는 온 가족이 함께 여행 가자고 말씀드리며 가을만큼 넉넉한 아버지 품속에 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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