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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 이제는 내려놓을 때    
글쓴이 : 노정애    12-05-16 19:45    조회 : 6,278
 

권력, 이제는 내려놓을 때 


                                                         노 문 정 (본 명: 노 정 애)

  10월 끝자락, 결혼 20년 만에 며느리라는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아들 넷에 셋째 며느리로 들어온 나는 신접살림을 시댁 옆에서 시작 했다. 함께 살지 않았을 뿐 모든 생활을 공유해 멀리 계신 친정 부모님보다 더 가까이 느껴지곤 했었다.  아버님이 세상을 뜨시고 2년이 안되어서 어머님도 그 뒤를 따르셨다.  1년에 몇 차례씩 입 퇴원을 반복하고 8년 전 치매판정을 받아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이 붙은 어머님은 여든이 넘으셨는데도 신장 암으로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으셨다. 아프실 때면 몇 달씩 머무르곤 했던 우리 집에서 마지막 반년을 함께 했다.
   어머님이 오시던 날 작은 아이의 방을 내 드렸다.  공부방이 없어진 녀석이 식탁에 책을 펴고 앉으면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여기가 어디야? 너는 누구니? 서울 가는 길 좀 알려줘? 등의 똑같은 질문을 한 자리에서 수십 번씩 했다.  아이는 싫은 내색 하지 않고 늘 대답해주며 사랑한다고 하루에 몇 차례씩 안아드리곤 했었다.  동생과 한방을 쓰면서 잠을 쪼개어 자는 고3 큰 아이는 새벽에 한 보따리 짐을 들고 “학생, 서울 가는 길이 어디야?”라며 깨우는 할머니를 날이 밝으면 가시라고 방에 모셔다 재워드리면서도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유난히 출장이 잦아진 남편은 주중에 깨어있는 어머니를 보기가 힘들었다. 새벽녘에 어딘가로 가시려고 현관 앞에서 문을 열지 못해 쩔쩔 매시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 아파하며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마약성 진통제로 생명의 끈을 힘들게 잡고 누워만 지내셨던 마지막 한 달은 가방 싸는 모습이 오히려 그리워지기도 했었다.
  남편은 어머님을 모시는 내게 틈틈이 메일을 보냈다.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정성들여 쓴 연애편지의 말미에는 꿀처럼 달콤한 말들을 쏟아 부어 피곤함도 잊어버리게 했었다. 아이들도 할머니를 더 많이 염려하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아빠와 고생하는 엄마를 먼저 위로하여 철든 어른처럼 굴어 대견하게 했다. 내가 권력의 칼날을 휘둘러도 참아주고 신경 쓰지 않게 자신의 일들은 알아서 해주어 늘 고마웠다. 가족을 사랑한 어머니가 식구들을 대신해 아파주고 있는 것만 같아 더 잘 해드리고 싶었다. 우리 가족이 어머니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어서 감사했었다.
 전날 남편은 제주도 출장 중 어머니가 갑자기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전화를 받고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병원에 가겠다는 남편을 하루는 기다려 주실 거라고 너무 늦었다며 말렸는데 새벽에 부음을 받았다. 고1인 작은 아이의 중간고사 이틀째 되는 날. 고3인 큰 아이의 수능이 2주 앞으로 다가온 날 성질 급한 어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상을 치르고 작은 아이는 자신의 방에 가지 못했다.  그 방에만 들어서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며 시험 날이라 발인을 못 본 것이 죄송해 눈물을 찔끔거렸다.  코앞으로 다가온 수능을 준비해야하는 큰 아이도 휑하니 비어버린 마음을 잡지 못해 좀처럼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남편의 달콤한 연애편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난 청춘을 몸 바친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처럼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온 가족은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다. 
  나는 직무유기상태였던 아내 노릇과 엄마노릇을 시작했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큰 아이가 수능을 망쳤다며 너무 울어 개구리 눈 마냥 부어터진 몰골로 귀가했을 때 따듯한 위로 대신 열심히 하지 않은 결과라며 비난과 힐책의 가시들을 쏟아냈다. 뚝 떨어진 성적표를 가져온 작은 아이에게도 수업시간에 뭐했냐며 짜증부터 냈다.  매사에 불평이 많아진 남편의 말은 그냥 묵살하기 일쑤였다.
   남편의 불만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되었다. 반찬이 부실하다는 음식투정, 아이들에게 신경 좀 쓰라는 잔소리, 깨끗한 셔츠가 없다는 투덜거림, 내가 엉뚱한 말이라도 하면 버럭 고함을 질러 무안하게 하는 등.  모든 것을 받아주고 이해해주던 친절한 남편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수능이 끝난 큰 아이는 해방구라도 찾은 듯 귀가시간은 늦어졌으며 잔소리를 하는 내게 간섭하지 말라며 혼자 살고 싶다는 말을 툭하면 뱉어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굴었다.  성실하고 착하게만 여겼던 작은아이는 쌓아두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폭발이라도 했는지 엄마의 몇 마디 충고에도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고 예쁘지 않은 자신의 외모 타령에 꿈도 없으며 무엇 하나 잘 하는 것이 없다고 자학 같은 말들을 뱉어내곤 했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생각해주던 측은지심은 어느새 실종상태였다. 집안은 늘 저기압 상태로 한바탕 폭풍이라도 몰아칠 듯 무겁기만 했다. 
  나는 답답함을 벗어나려고 외출이 잦아졌다.  낮에 동생을 만나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가방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보니 남편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받지도 않을 핸드폰을 왜 가지고 다니냐.”며 고함부터 지른다. 며칠 동안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 세 번째라며 일부러 피하면서까지 무얼 하고 돌아다니냐고 바람난 마누라 잡듯 몰아붙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있다 보니 핸드폰에 무신경했던 탓에 가방에 넣어두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지만 저녁에 두고 보자는 괘씸함만 들었다.    
  그날 저녁 남편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서면서 내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의 등 뒤에 나는 한마디를 던졌다.  “그렇게 불만이 많아서 어떻게 살겠어. 그냥 이혼하자.”  부부싸움의 시작은 대부분 사소한 것이 불씨가 되어 들불처럼 번진다. 그 순간은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없고 자신만의 감정에 치우쳐 막가자는 심정으로 모진 말들을 뱉어 낸다. 단순한 나의 자격지심이겠지만 며느리 노릇 끝났다고 패기처분이라도 할 것처럼 구는 남편에게 쌓여있던 서운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비수 같은 말들을 쏟아놓으며 이런 식이라면 더는 못 살겠다고 악을 썼다. 당장 가방이라도 쌀 것처럼 날뛰던 내가 조금 진정된 기미를 보이자 그가 자신이 잘 아는 부부의 이야기로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이 부부는 25년을 살면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에 집안은 항상 평온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남편이 향후계획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내가 전혀 다른 미래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 잘되어 간다는 서로의 착각 덕분에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지도 몰랐었다.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싸움도 하고 화해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없어서 생긴 골이 너무 깊다고 했다.  싸우지 않고 사는 것이 반드시 행복하게 잘 사는 부부생활은 아니라는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고생한 내게 바쁜 짬을 내서 밥이라도 사주고 싶었는데 번번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바람맞은 기분이 들었던 일, 갑자기 아내노릇에 엄마노릇 한다고 잔소리 폭탄을 쏟아 부어 당황하게 했던 일. 어느 날은 멍하니 정신을 딴 곳에 둔 사람처럼 입을 닫거나 이상한 말을 해서 걱정하게 했던 일 등을 털어놓았다. 내게도 하고 싶은 말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하라며 가끔씩 다투면서 사는 것도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우리 부부는 싸운 적이 몇 번 없다. 오래전 시댁 문제로 크게 다툰 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서로에게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면 우리는 침묵으로 응수하며 시간이 해결해주기만을 바랬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날 남편과 오랜 대화를 했다. 속에 있는 것들을 털어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머님과 함께 할 때는 모든 식구들이 자신의 감정을 측은지심이라는 보자기에 꽁꽁 숨겨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아내나 아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픈 어머니를 집에 모신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못 본 척 참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많은 시간을 어머니와 함께 하지 못한 자신을 힐책하며 고아가 되었다는 허전한 마음을 둘 곳이 없었으리라.  아이들 또한 할머니가 있어 잠시 잊고 있었지만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응석을 부리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졌을 것이다. 내가 다 커버린 어른인 것처럼 몰아 붙였지만 그냥 또래의 아이들일 뿐이었다.  나 또한 이 집안에서 나 말고 며느리 노릇 누가 하겠냐는 똥배짱 부리며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가 끝났음을 빨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편의 까탈은 조금 줄었다. 독립하고 싶다던 큰아이는 “독립은 경제적인 것부터”라는 부모의 말에 기가 죽었는지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학교에 잘난 아이들이 많아 늘 기가 죽어 있던 작은 아이도 자신감을 찾아 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난 여전히 잔소리 폭탄 주머니를 불만이 싹을 틔우는 곳에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 식구들은 참지 않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 그럴 때면 집안이 시끄러워 진다. 비온 뒤에 땅이 굳듯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리라.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듯 맞추면서 살아볼 생각이다. 그 막강한 권력의 자리는 한 동안 그립겠지만 실종된 측은지심을 찾을 마음은 없다.
 
                                                                  <한국 산문>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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