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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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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관은 타관이다    
글쓴이 : 김혜자    12-05-18 09:47    조회 : 4,716
   경복궁의 교태전 후원인 아미산(峨嵋山)의 화계(花階) 동쪽 굴뚝 앞을 지날 때였다. 걸음이 불편해 아까부터 일행의 끝자락에서 겨우 따라오던 할머니가 탄성을 질렀다.
“아이구 반가워라! 이거 진달래 아입니꺼? 우리 고향에도 얼마나 많이 피었는데... ”
꽃철도 다 지나 단풍들기 시작한 철쭉 잎을 가리키는 그녀의 눈시울은 젖어 있었다.
   경복궁 길라잡이로 ‘사할린동포 모국방문단’을 안내한지 3년째이다. 일제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된 1세 및 그 2세들인데 1990년도부터 봄가을에 60여 명씩 매년 8회 정도 초청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행사를 주관하고 경비는 일본이 댄다. 그들을 만나면서 내겐 자원봉사하며 잘 몰랐던 우리 역사의 아픈 한 단면을 실감해 본 기회이기도 하다.
   일본이 2차 대전에 패한 후 사할린을 소련에 반환하면서 거기 있던 자국국민은 다 데려가면서도 우리 동포들은 그곳에 버려둔 채 철수했다. 약 15만여 명 중에서 전쟁말기에 일본으로 10만여 명이 재동원 되어갔고, 남은 4만3천여 명이 졸지에 무국적자 신세가 되어 돌아올 길이 막혀버렸다. 우리정부의 무관심과 소련의 강제억류정책에 의해 포로와 다름없는 감시와 핍박의 고초를 겪은 그들이‘사할린 동포’이다. 현재 사할린 한인 인구는 4만여 명인데 거의가 우리말도 모르는 2세, 3세다.
   방문단은 1945년 이전 출생자로 대부분 2세들이다. 1세들은 광부나 침목공으로 혹사당했고 2세들은 페인트공, 자동차 수리공, 전기기술자 등 주로 노동으로 살아왔다. 그래도 자녀교육은 열심히 시켜서 3세들은 제법 어엿한 전문직도 갖고 대학교수도 있다고 한다.
   화상 자국투성이의 마디 굵은 손을 전기 용접공의 훈장처럼 펴보이던 2세 한 분은 모스크바 항공우주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인 딸이 조만간 항공전문가가 될 것이라며 자랑이 늘어졌다. 한국인의 못 말리는 교육열이 어디 가랴. 그를 보며 나도 덩달아 기쁘고 흐뭇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건청궁 앞 향원정 동편 벤치에 방문단을 앉혔다. 벌써 열댓 번이나 그들을 안내했지만, 어렵사리 찾아온 모국인데 좋은 인상 갖고 가도록 항상 애를 쓴다. 그래서 경복궁의 마지막 코스를 고즈넉한 고궁의 정취가 흐르는 향원정 연못가로 택하고 있다. 청일전쟁 이후 세계정세와 우리 근대사를 아우르며, 또 일본의 내정간섭과 만행으로 힘없는 조선이 겪어야 했던 수모, 그리고 그 사연들과 얽혀있는 궁궐의 건물들을 눈으로 확인시켜가며 해설을 끝맺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그들은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그동안 타국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조국을 찾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누구보다 뼈에 사무치도록 그 시대를 경험했고, 돌아갈 수 없는 조국을 평생토록 그리워하며 살아온 여러분과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부디 몸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아 서둘러 인사를 마쳤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길잡이하면서 그제야 진달래 할머니를 부축했다. 걸음이 느린 그녀를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그녀가 미처 합류하기도 전에 해설의 서두를 꺼내곤 하여 한 시간 반 정도 경복궁을 도는 동안 내내 미안했던 참이었다.
“힘드셨지요. 이렇게 오래 걸으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입니더. 오랜만에 우리 역사를 들으니 정말 반갑고 고맙기만 합니더. 우리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하고 잘 살아서 너무너무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더.”
허리가 기억자로 굽은 할머니를 기우뚱 보조 맞춰 걷다보니 팔짱낀 손등으로 그녀의 가쁜 심장 고동이 전달되어왔다. 온 힘을 다해 펄떡이는, 조금 불안하게 느껴지는 그 박동은 내 나라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품어가려는 노인의 앙버팀만 같아 짠했다.
   친정은 경북 영천이고, 시집은 구미랬다. 신혼 초였던 1941년 남편이 사할린으로 갔다. 1년 기한으로 떠난 사람이 3년이 지나도 오지 않아서 자기도 남편 찾아 갔더란다. 떠날 땐 부모님께 1년 후에 돌아오겠노라고 인사하고 갔는데 62년이 지난 이제야 왔단다.
“오래 살고 정들면 고향이라는데 아무리 오래 살아도 타관은 타관입디더. 나는 그 땅이 내 고향이 안 되더란 말입니더. 늘 부모형제가 보고 싶고, 꿈에서도 내 고향만 보이고...”하며 말끝을 흐렸다. 83세 할머니는 또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다 가시겠지.
   그녀처럼 간절히 귀국을 바라는 1세대는 이미 돌아간 이들이 더 많아 지금은 3,000여명이 생존해 있을 뿐이다. 최근 그들에게 영구귀국의 길은 열렸으나 그 조건이 열악하고 자녀와 헤어져 ‘나 홀로’ 돌아와야 하는 현실이 달갑지만은 않은지 귀국자의 수는 많지 않다.
   얼마 전 안산시립노인요양원에 입원 중이던 영구귀국자 한 분의 부음이 사할린의 딸에게 전달되었단다. 뼈라도 조국 땅에 묻고 싶어 혼자 오신 분이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자식과도 헤어져 조국 품으로 왔을까.
   2006년까지만 해도 방문단에 1세분들이 몇은 있었는데 2007년 가을엔 한 분도 볼 수 없었다. 세월 탓하며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까지도 잊으며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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