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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라    
글쓴이 : 김명희    23-09-06 01:18    조회 : 1,706

                   아스라

                                                                       김명희

 

 40년 지기 중학교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 왔다. 잘 지내냐 어떠냐 이야기를 나누다가 뜬금없이 학창시절에 학교로 편지 보냈던 거 생각나느냐고 물었다. 그때 적어 보냈던 시가 한 편 있었는데 혹 그 시를 기억하느냐고. 그 시를 아느냐고? 당연하지!

 고3 가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갑자기 교무실에서 호출이 왔다. 내 얼굴을 본 담임선생님은 대뜸 김**이 누구냐고 하셨다. 중학교 때 친구라고 말씀 드렸는데도 한참을 야단을 하시다가 편지 한통을 주셨다. 편지가 개봉되어 있었던지는 확실치 않다. 교실로 와서 읽어 보니 하이네의 시 <아스라>와 자신의 일상 몇 줄이 적혀 있었다. 한창 연애 중이던 친구가 들떠서 시집을 읽고 마음에 닿은 시 한 편을 적어 보낸 것이었을까? 난데없이 날아온 편지에 사랑시가 적혔으니 남자 친구라도 있어 연애한다고 야단인 건가 선생님이 얼마나 걱정을 하셨을까 싶기도 하다. 친구는 그 후로도 몇 번 더 편지를 보냈고 나도 한두 번 더 호출을 받았다. .

   네 저는 마호멧 족속으로

   사랑을 하면

   그 갈망에 죽고 마는

   아스라입니다

       -하이네 <아스라> 부분

 

 친구가 그때 사랑에 취해 있었던 것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한창 공부가 지겨워지던 때라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서였을까? 예쁜 편지지에 꾹꾹 눌러쓴 그 시는 내가 하이네의 시집을 사러 가게 만들었고 밤새 시를 외우게 했다. 아름다운 사루탄의 공주가 목욕을 하는 동안 뒤돌아서서 그녀를 기다려야 하는 건장한 노예. 하루하루 창백해지고 야위어가는 그의 모습과 너무도 경쾌하게 ‘너의 이름은?’ 이라고 묻는 공주. 대조적인 두 인물의 모습, 그럼에도 그는 이야기 했다. 자기는 사랑을 하면 그 갈망에 죽고 마는 아스라 라고 ..

 그때는 공주를 사랑하는 노예라는 설정이 가슴 아팠던 걸까? 등 뒤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모르는 공주가 어리석어 보였다. 자신이 말라죽어 가면서도 사랑을 지켜주고 있는 아스라는 무척이나 순수하고 숭고해 보였다. 그리고 나중에야 나는 공주에게 노예란 대등할 수 없는, 아니 존재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어떤 사물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자신의 노예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으리라.

 아스라가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공주의 육체? 아니면 속박된 몸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만든 자유에의 갈망? 무엇이든 열아홉의 여고생이 상상하던 그런 사랑은 아니었다는 것도 지금은 안다.

 사랑을 꿈꾸던 가을이 있었다. 내 옆에 사랑이 없을 때도 언젠가는 죽을 만큼 갈망하게 되는 사랑을 하게 될 것이라 꿈꾸었다. 대학 때 내 손금을 봐 준다던 친구가 너 연애 못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을 때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운동장에 찬바람이 불고 은행잎이 흩어진 운동장의 스탠드 위로 조명이 바람에 부스러지며 흘러내리던 그 날, 하이네의 시를 읽은 그 밤처럼 늦은 가을의 밤이면 아스라가 공주를 갈망하듯 나에게도 죽을 듯이 그를 갈망하게 되는 그런 사랑이 올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랑은 오지 않았다.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겁이 많고 조심스러웠을까? 아니면 나라는 사람이 너무 계산적이었을까? 두근거림은 있었지만 갈망은 없었다. 그렇게 가을은 지나가고 또 지나갔다.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 내가 가진 사랑의 의미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배려와 안정과 함께하는 기쁨, 이것을 넘어서는 갈망이 있을 텐데 나의 갈망은 어디에서 찾게 될까? 그리고 내가 갈망했던 사랑이 과연 한 존재에 대한 것이었을까? 아스라가 사랑한 것이 공주가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내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나는 특징짓지 못했다. 또 가을이다.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아스라하게 뻗어 가는 계절. 아스라가 사랑한 것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의 갈망은 방향이 틀렸다. 그렇지만 가을이 아름다운 건 아직도 내 속에 갈망이 있어서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여전히 가을이 아름답다. 그리고 여전히 가을이 기다려진다. 

                             
                              -리더스 에세이 2023년 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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