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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공간 청람재 개관 기념전 『그해 겨울』    
글쓴이 : 박지니    24-05-16 17:11    조회 : 898

예술공간 청람재 개관 기념전 『그해 겨울』

 

빨간색 원피스의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짧은 치마 아래로 쭉 뻗은 하얗고 긴 다리. 얼굴은 한국인인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이국적이다(붉은 원피스, 1978). 훤히 드러난 어깨선과 등, 짧은 튜튜 아래로 드러난 다리는 매끈하지 않다. 오히려 살이 접혀 주름이 가득하고 토슈즈를 신은 발은 리본에 눌려 올록볼록하다(무희들, 1978).

브라운 계통의 색감 때문인지 고전적이다. 잘 그린 건가? 주먹만 한 얼굴에 상체보다 두 배는 긴 다리를 보니 적어도 사진처럼 실물과 똑같지 않은 건 알겠다. 내가 그림 속 모델이었다면 서구적인 체형으로 그려줬다고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다. 빛과 어둠을 가르는 경계에서 드러나는 울퉁불퉁한 근육은 여성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서였다.

예술공간 청람재 개관 기념전 『그해 겨울』(202432~17)은 재단법인 김호걸미술문화재단에서 추진한 수장고형 작은 미술관건립사업의 일환이다. 김호걸 미술문화재단은 화백이 43년간 거주해 온 자택을 허문 자리에 예술공간 청람재을 세우고 202432일 개관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화백이 1980년대 초반 수유동으로 이사했던 시기의 겨울 풍경을 담은 작품 「그해 겨울」을 비롯해서 인물과 풍경 작품 스물세 점을 선보였다.

분홍색 치파오를 차려입고 책을 읽는 소녀의 모습이 단아하다(오후의 독서, 1976). 시원하게 뻗은 팔과 다리는 티끌 하나 없이 매끈하여 인형 같기도 하다. 80년대로 넘어가면 발레복이 많이 보이는데, 울퉁불퉁한 무릎 주변과 겨드랑이의 접힌 살이 눈에 띈다. 후기로 갈수록 터치가 잘고 섬세해져 인물에 사실감이 더해진다. 치열하게 학습하며 습작했던 작가의 젊은 시절이 그려졌다.

글쟁이는 글감을 찾아 헤맨다. 그림쟁이 김호걸에게는 여성이 영감의 원천이었던 걸까? 그는 긴 시간 여성의 인체를 그리며 그만의 인물화를 만들어 왔다. 동양인 모델에게서는 보기 힘든 8등신의 비례와 단련된 신체의 근육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시점은 허리 아래에 둬서 안정감을 추구한다. 앉아있든 서 있든 무게중심이 작가의 눈높이에 오도록 모델의 위치를 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호걸의 작품 속 여인들에게는 생명력이 흐른다.

화가 김호걸하면 인물화가 떠오른다. 특히 김호걸은 누드작가다.”라고 할 만큼 그의 여성 누드화는 독보적이다. 미술 역사에서 여체의 아름다움을 다룬 작품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서구와 달리 한국은 나체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는 데 보수적이었다. 1976년 첫 개인전을 연 이후로도 40여 년, 김호걸은 여전히 인물화를 그린다. 그것만으로도 김호걸의 작품세계는 의미가 있겠으나, 그의 작품세계는 인물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설경」, 「서해바다」, 「초갓집 풍경」까지, 풍경화에는 인물화에서 보이는 특유의 붓 터치가 없다. 「그해 겨울」에서는 과감하게 흘리는 듯한 붓 자국이 바람이 부는 듯한 착각을 자아내고, 「사선」에서는 세밀한 묘사가 바다의 고요함을 전해준다. 바닷물의 거친 터치가 흐린 하늘과 어우러져 「서해 바다」에 풍랑이 덮칠 것 같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언어는 시인에게 바치고 / 우리는 칠이나 하세 / 벙어리가 되어 / 그리기만 하세 / 빛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그리기만 하세 (김호걸 作)

한쪽 벽면에 적혀 있는 글귀는 화백이 붓을 잡을 때마다 읊조리는 말이라고 한다. “화가의 일은 빛을 공부하는 것이라는 김호걸은 그림이 빛의 세계임을 강조해 왔다. 그는 인물화와 달리 풍경화를 그릴 때는 현장 작업을 고집한다. 조명을 조절하는 실내에서는 빛을 통제할 수 있지만, 자연광은 시간과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오전과 오후, 흐린 날과 맑은 날의 빛의 방향과 밝기가 다르며, 그에 따라 지형이 달리 보이기도 한다. 작가 자신의 컨디션과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과의 분위기 또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토록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 속에서 자기만의 색을 찾아 화폭에 담아내는 것. 그것이 김호걸의 회화이다.

양지가 밝을수록 그늘은 어둡기 마련이다. 빛은 차이를 만들어 내고 어둠은 무게감을 더해준다. 그의 인물화에서 볼 수 있는 인체의 비현실적인 비례나 근육의 울퉁불퉁함 역시 빛에서 받은 인상을 이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생략할 건 과감하게 생략하고 드러낼 것은 극명하게 드러낸 결과는 아닐까.

 

김호걸(1934~)

경북 영주 출생. 195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개인전 9(1976, 1978, 1979, 1983, 1986, 1988, 2005, 2019, 2024)

단체전 국전(1956-1965), 신미술회전(1974-2023), 한국의 자연(1981), 한국 대표작가 100인전(1986), 서양화 12인 초대전(1989), 한국근현대 누드걸작 展 1930-2000(2013)


'전시공감' 한국산문, 202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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