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김형도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hyungdokim@naver.com
* 홈페이지 :
  자주색 점퍼    
글쓴이 : 김형도    12-05-18 17:22    조회 : 3,866
 
 
자주색 점퍼
김형도
내게는 오래 된 방한복이 한 벌 있다. 속에 오리털이 들어있는 산행용 점퍼로 겨울철이면 즐겨 입는다. 아주 오래 전에 선물 받은 것으로 집사람이 너무 낡아서 버리려고 하지만 내 몸에 잘 어울리고 자주색이 마음에 든다. 그 방한복을 입으면 폭신하고 따스하며 기분이 좋기에 절대로 버리지 못하도록 한다.
1982년도 함백광업소장으로 있을 때였다. 추운 겨울에 회사 직원들과 뒷산 두위봉(1360m)으로 등산을 가려는데 자재과장이 산정은 추우니 입으라고 사다 준 선물이다. 고급스러워 보이는데다가 내 체격에 딱 맞고 색상이 마음을 끌었다. 산정에는 높새바람이 세차게 부는데도 그 방한복 덕분으로 별로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내게도 그런 류의 점퍼가 몇 벌이 생겼지만 다른 것보다는 그 방한복을 즐겨 입는다. 그것을 입고 산행을 하면 감촉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느껴져 그렇게 마음이 흐뭇할 수가 없다. 자재과장 보고 이렇게 마음에 드는 것을 선물해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인사했더니, 별로 비싸게 구입한 것이 아닌데 하면서 소장님이 좋아하시니 자기가 더 기쁘다며 흡족해 했다.
지난 30년 동안 그 옷을 입고 겨울 태백산에도 수십 번 오르고, 전국의 산야를 누비기도 했다. 지금도 아침마다 덕소의 한강변이나 야산을 오르면 꼭 그 방한복을 입는다. 좀 낡고 기름이 묻어서 때까지 끼었지만 그 옷처럼 나를 편안하게 하는 방한복이 없다. 집사람은 그런 낡고 바래 진 것을 입는다고 눈총을 주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내 방에 쉽게 입을 수 있는 곳에 걸어둔다.
선물이란 받기는 쉽지만 막상 자신이 선물하려고 하면 참으로 고르기 힘들고 여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선물할 때는 받는 사람의 취향을 생각하고 또 격에 맞추도록 해야 한다. 정성이 담겨 있고 가격도 적정하다면 받는 사람도 좋아 할 것이다. 내가 선물하기 위해서는 백화점이나 시장을 헤매기도 하고, 갖고 있는 물건 중에서 고르기도 하며, 때에 따라서는 특별 주문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상대가 필요로 하고, 또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일이다. 거기에 내 정성을 담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몇 년 전 나의 수필 등단기념 겸 송년 모임에서 선물을 하려고 며칠 동안 여러 곳을 헤매었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중소기업 대표를 만나 그로부터 칼, 가위, 손톱깎이, 줄 등 11가지가 들어있는 세트를 추천 받았다. 은빛 색상에 내용도 알찬데다가 케이스의 디자인까지도 멋이 있었다. 누가 보아도 갖고 싶어 할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게다가 성능도 좋고 가격도 적정하기에 공장을 둘러보고는 특별 주문을 했다. 송년 모임에서 그 선물은 대단한 인기로 모두로부터 고맙다는 극진한 인사를 받았다. 선물한 사람이 이렇게도 기분이 좋을 줄이야…….
얼마 전 금년 들어 가장 추운 영하 11도 되는 아침이었다. 그 방한복에 마스크를 하고 자주 찾는 야산 길로 갔다가 옛 자재부장을 우연히 만났다. 이야기 끝에 그 자재과장의 안부를 물었다. 지금은 광주 인근 시골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며 그와는 가끔 전화연락을 한단다. 그래서 내가 입고 있는 방한복이 30년 전 그 과장이 선물한 것인데, 지금도 즐겨 입는다며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
며칠 후 자재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소장님, 30년 전에 제가 한 선물을 자기는 잊고 있는데, 지금도 입고 계시느냐?’며 감탄을 한다. 그냥 입는 것이 아니라 즐겨 입는다고 했더니 소장님이 그렇게 좋아하실 줄 미처 몰랐단다. 그 과장은 나의 체격과 소장이라는 직위를 생각해서 나름으로 신경을 쓰서 사이즈와 색상을 부인과 함께 고른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칠십 중반을 넘어서 시골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데 전남 광주에 오시면 꼭 연락을 달라고 한다.
그보다는 내가 사는 덕소에 당시 본사에 근무했던 자재부장이 살고 있으니 서울에 오면 꼭 찾아 달라고 도리어 내가 당부를 했다. 함께 식사라도 하며 회포를 풀자고 했더니 그도 무척 좋아하며 꼭 그러겠단다. 그리고 집사람에게 그 방한복을 세탁해서 기름때를 빼라고 했다. 내게 그것을 선물한 과장이 찾아오면 그 옷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만나야 하니 떨어진 곳이 있거든 손을 보라고 했다.
선물 받은 옷을 이렇게 오랫동안 좋아하고 즐겨 입은 적이 없다. 30년이란 긴 세월이다. 값이 문제가 아니라 선물은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마음에 들어 하고 흡족해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 과장은 내게선물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선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었다. 받는 사람의 성격과 취향은 물론 소유 여부까지 알아보는 등 세심한 배려를 하고 직접 물건을 고르는 마음 자세까지도 알려주었다. 그 선물이 나와 자재과장 간의 연결고리가 되고, 끈끈한 정()도 이어지게 했다.
30년 전에 받은 선물! 오늘 아침에도 그 자주색 점퍼를 입고 산행을 했다. 자재과장을 생각하며, 새삼 고마워하며
  :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20122麗江 金亨道

 
   

김형도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2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90267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92273
2 곡선의 미학 김형도 01-20 4512
1 자주색 점퍼 김형도 05-18 3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