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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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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    
글쓴이 : 노정애    24-06-19 09:04    조회 : 1,162

                           이 사

 

                                                     노정애

 

 이삿날이 정해졌다. 아이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결정하면서 3개월가량 집을 보러 다녔다. 코로나19로 남의 집 방문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다행히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서 계약했다.

 큰아이 6학년, 작은아이 4학년이었던 11월 마지막 날에 이곳으로 왔다. 흐렸던 날씨는 집에 짐을 들일 때 눈과 비를 뿌렸다. 그해 첫눈이었다. 분양받은 새 아파트는 좋았지만 살았던 곳과 너무 멀어져서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애를 먹었다. 남편의 출근시간은 한 시간 앞당겨졌고 아이들도 근처 학교로 전학했다. 힘들면 언제든 옮길 수 있다는 마음이었는데 16년을 살았다.

 책장 위에 있는 작은 액자로 눈길이 갔다. 친정아버지의 건강하고 멋진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가을 산을 배경으로 활짝 웃는 아버지는 행복해 보인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버지 이 집에서 이사 가요. 순조롭게 잘 되겠죠.” 조용히 말을 건넸다. 평소에 즐겨 말씀하셨던 그럼 모든 일이 잘 될 거야.”를 듣고 싶었다. 뇌경색으로 거동이 불편했던 아버지에게 입주 소식을 알렸을 때 내가 빨리 일어나서 꼭 갈게.” 하셨는데 와보지도 못하고 2년 뒤 우리 곁을 떠나셨다.  

 3개월 남짓 남은 시간. 집안 정리부터 시작했다. 구석구석 넣고 쌓아두었던 짐들을 다 가지고 갈 수는 없었다. 베란다 창고 문을 열었다. 이 집에 와서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 어릴 때 썼던 캠핑도구와 빛바랜 텐트, 손잡이 달아난 들통, 외풍이 많은 주택에서 겨울이면 끼고 살았던 커다란 석유히터까지…. 요 녀석들 꽁꽁 숨어서 잘도 살고 있었다. 한때 소중했지만 이제는 쓰임을 다한 물건들을 어루만지며 고마웠어, 잘 가작별 인사를 했다. 거실 한쪽에 모았다. 귀가한 남편은 산처럼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며 이러다 자기도 버리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며칠 뒤에는 거실 수납장을 비웠다.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주인 모르게 어디서 몰래 새끼라도 쳤는지 끝도 없이 나왔다. 나의 게으름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 이사 가는 날까지 이어지지 싶었다.

 서랍장 속에서 시아버님의 주민등록증과 도장, 오랫동안 끼고 계셨던 멈추어버린 시계가 담긴 작은 가방을 발견했다. 아버님 유품이었는데 어느새 잊혀 방치되었다. 이곳에 이사 오는 날은 시어른들과 함께였다. 치매 초기였던 어머님은 낯선 환경에 내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고 아버님은 짜장면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허허 웃기만하셨다. 시어른들의 잦은 입, 퇴원과 수술은 종합병원이 가까운 이 집으로의 이사를 결심하는 데 한몫했다. 오래 함께할 것 같았는데 친정아버지가 떠나고 2년 후 시아버지가 그 뒤를 따르시더니 시어머니도 몇 해 뒤 돌아가셨다.

 어머님의 비망록도 함께 있었다. 치매에 암투병까지 하셨던 시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셨다. “내 이야기를 글로 쓰면 대하소설이야라고. 서울에서 태어나 만주, 서울, 부산, 그리고 서울로 삶의 터를 옮긴 어머님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셨다. 비망록이라고 쓴 공책과 필기구를 드리며 마음먹고 써보시라고 했는데 쓰는 것은 보지 못했다. 기억력이 점점 달아나는 중이라 우리 식구들에게도 모르는 타인처럼 예의를 차리시던 때라 그러신가보다 했다.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며 그 공책을 찾았는데 어머님의 시원시원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덧없이 흘러간 세월에 남은 것은 백발로 하얀 머리칼만 휘날린다. 계획도 없고 미련도 없고 고요히 영원히 잠들고 싶다.’ 현실로 돌아온 찰나의 시간에 쓰셨으리라. 떠나기 전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어 좋으셨겠지 생각했는데 어머님은 많이 힘드셨던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때늦은 후회에 공책을 품에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요즘도 가끔 어머님이 그립고 보고 싶다. 시어른들 유품은 상자에 고이 모셨다.

  두어 달의 시간 동안 틈틈이 했던 정리가 마무리되어갔다. 마지막으로 큰아이 방을 치웠다. 큰아이는 대학 1학년을 다니다가 더 큰 꿈을 찾아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보내고 몇 달은 빈방에 들어가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그리울 때면 머물던 곳은 어느새 잡동사니가 쌓이더니 창고 방이 되었다. 아이가 가지고 놀던 인형들과 즐겨보던 책, 몇 가지 옷만이 방주인의 것이고 내 살림이 더 많았다. 큰아이에게 네 물건을 정리해도 되는지 물었을 때 다 버려도 상관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0여년의 미국생활에 그곳이 집이니 당연한데 왠지 모를 서운함에 아이가 좋아했던 물건 몇 개는 끝내 버리지 못했다.

 이삿날이 다가올수록 말끔하게 정돈되어 깨끗해진 집. 진작 이렇게 살았어야했다. 구석구석 내 손길이 닿았던 곳에는 애틋함이 남아 자주 만져보고 쓰다듬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추억이 가득했다. 떠나기 아쉬웠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단골 미장원에 들러 머리를 하고 집 앞 치과에서 미리 치료도 받았다. 저녁이면 동네를 할 일 없이 어슬렁거렸다. 즐겨 산책하던 우이천변을 걷고 주말이면 초안산 둘레길을 걸었다. 그동안 연을 맺었던 이웃들과 관리실 분들에게 감사편지와 작은 선물을 드리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시간들을 마무리 지었다. 그분들 덕분에 편안하고 행복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냈던 집. 6명이 함께였는데 달랑 3명만 남았다. 시어른들 시골집에 있던 강아지 두 마리를 우리가 맡아서 키우고 있으니 유일하게 불어난 식구다. 남편과 정들었던 동네를 한참 돌다가 들어왔다. 어여쁘고 날씬한 초승달이 하늘에 걸려있다. 별도 보였다.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 같다. 이제 우리가 떠날 차례다. 새로 이사 가는 그 집은 식구들을 맞이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일이면 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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