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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베 홑이불    
글쓴이 : 김명희    24-06-25 00:36    조회 : 931


 

                              삼베 홑이불

 

                                                                       김명희

 

 한낮의 볕은 아직 뜨겁지 않은데 벌써부터 밤이면 갑갑해졌다. 나는 밤에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누워 있으려니 이불을 덮고 있으면 덥고, 걷고 있으면 추운 밤이다.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 찬 것은 아닌가 싶어 방문을 살짝 열어 보니 이불을 둘둘 말고선 한잠이 들어있었다. 성인이라 커버린 덩치들이 작은 침대에서 몸이 굴러 떨어질듯 불안해 보였다.

 이맘때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장롱을 정리하고 이불과 베겟닛을 꺼내 준비해야 한다. 게으른 내가 적당한 때에 아이들의 여름 이불을 교체해 주기 위해서 여름 이불 손질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날이 좋을 때 장롱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아래쪽에 박혀있던 여름이불을 꺼내 겨울이불과 자리를 바꾸느라 나는 하루 종일 장롱을 뒤집었다. 작년 가을 다음 여름을 기약하며 깊숙이 넣어 두었던 삼베 홑이불들이 주렁주렁 걸려 나왔다

 

 날이 더워지면 어느새 빳빳이 풀을 먹인 여름 이불을 내어 주시던 나의 어머니. 딸 셋이 뭉쳐서 자야했던 작은 방이었지만 내 기억 속의 여름 밤들은 그다지 갑갑하지 않았다. 여름 볕이 뜨거워지기도 전에 빳빳하면서도 반들반들한 광목 홑이불과 삼베 베겟잇은 미리 이불장에 개켜져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하얀 모시 셔츠와 파르스름하게 물을 들인 어머니의 모시치마가 ‘이제 여름이야!’ 하고 알려주듯 안방 벽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그게 우리 집 여름의 시작이었다.

 내 손으로 여름을 준비하게 된지도 제법 오래 되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스물 몇 번째의 여름을 또 준비해야 한다. 장롱을 다시 정리하고 네 식구의 삼베 홑이불을 꺼내 며칠 내로 풀을 먹여 다림질을 해 두어야지 결심하며 따로 챙겨 두었다.

 우리 집 삼베 홑이불들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든 것이다. 결혼한 첫 여름, 큰아이가 태어난 여름, 그리고 막내가 태어나던 해 여름까지 세 번에 걸쳐 친정어머니께 받은 것들이다. 어머니는 포목시장에 들러 삼베를 한필씩 끊어 오셨다. 삼십 센티미터 정도의 폭밖에 되지 않는 삼베를 한 폭씩 감칠질로 이어 붙여 만들어 주신 홑이불은 사용에 늘 조심스러웠다. 어머니는 삼베는 조심조심 쓰는 것이라 함부로 세탁기 돌려서 빨래해도 안되고, 너무 자주 세탁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런 어머니 말씀에 나는 날이 제법 더워져도 삼베 이불을 미리 꺼내지 않았다. 그다지 꼼꼼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내가 여름 이불만큼은 장마가 끝나고 나면 꺼내서 쓰다가 찬바람 살짝 들면 걷어내는 정성을 들였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결혼 할 때마다, 그리고 손자들이 태어 날 때마다 홑이불을 만드셨다. 포목점들 잔뜩 모여 있던 부산진 시장을 몇 번이나 오가며 삼베를 고르고, 기계로 수놓아 만들어 팔던 꽃송이도 따로 사 오셨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홑이불 위에 예쁜 꽃 한 송이 씩 피워 올린 어머니의 손길이 닿아서인가? 첫여름 빳빳이 풀 먹여 들고 가서 시원하게 덮으라고 주신 그때부터 나는 늘 풀 먹이기를 해야만 열대야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불은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하나씩 늘어났다. 크고 작은 세 개의 삼베홑이불과 베겟잇에 풀을 먹이다 보면 친정아버지의 모시 셔츠들과 여름 속옷들을 풀을 먹이고 다림질 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세상이 좋아져서 삼베나 모시도 흔한 것이 되었고, 더 시원하고 좋다는 인견이나 리넨으로 만든 이불이며 옷들도 많아졌다. 우리 가족들도 여름이면 삼베대신 인견으로 된 잠옷들을 입는다. 하지만 지금도 아버지는 여름이면 여전히 모시셔츠와 바지를 챙겨 입으신다. 아버지의 하얗게 센 머리와 그보다 더 하얗게 풀을 먹은 아버지의 모시셔츠 차림을 보면 마음이 서늘하면서도 뜨거워 질 때가 있다. 앓는 소리를 하시면서도 날만 더워지면 여전히 풀 먹이기로 바쁜 어머니 때문일 것이다.

 결혼 전 외할머니의 모시적삼에 풀을 먹이시며 나중에는 누가 내 옷을 풀을 먹여주려나 하시던 어머니도 그때의 외할머니만큼 연세가 드셨다. 나도 그때의 어머니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런데 내가 풀을 먹인 홑이불들은 어머니가 해주시던 것처럼 빳빳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부드럽지도 않다. 왠지 그다지 반들반들 윤이 나지도 않는다. 여름 어머니 생신 무렵 친정에 한 번씩 갈 때면 꺼내주시는 홑이불을 당겨 덮으면서 늘 빳빳하면서도 윤기가 나는 것이 신기했다. 나도 열심히 풀을 먹이고 나름의 시간을 들여 열심히 밟아 준 것도 같은데 왜 어머니의 이불과는 다른 것일까 싶었다. 풀이 거친 것인지, 풀 먹인 이불들을 밟아주는 정성이 미진한 것인지......

 더위를 많이 타는 작은 아이는 까슬한 촉감을 아는지 유독 삼베이불을 찾는다. 큰 아이도 남편도 풀을 빳빳하게 먹은 홑이불이 침대위에 깔리면 한 번 더 쓱 문질러 본다. 아기일 때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것이라 다 커 버린 아이들에게는 다소 작은 것 같은데도 여전히 내 이불이라며 여름 한철 배를 덮고 얼굴을 문지르며 잠이 든다.

 

 가끔 이웃집이나 친지를 방문해보면 고운 색으로 염색된 홑이불을 본다. 도톰하게 만들어 편안해 보이는 삼베 카페트가 깔린 것도 볼 때가 있다. 새 이불을 구입해서 고운 색으로 깔아주고 싶다. 그러다가 나의 이불들을 들추어 본다. 삼베색 그대로던 내 이불은 어느새 점점 희어지고 있다. 아버지의 흰 모시셔츠도 더 하얗게 변하고 있다. 점점 낡아 가는데도 더 보드랍고 색이 고와지고 있어 여전히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풀을 먹이시는 어머니의 손끝도 조금씩 떨리고 있다. 예전 삼베의 그 색은 아닐지라도 다시 고운 빛으로 색을 들여 볼 까? 그렇게 아버지의 하얀 셔츠도 고운 물을 들이고 어머니의 손끝에도 그 물이 들면 그 손끝도 떨림을 멈추어 줄까?

 

 

 

                                               <<한국산문 20.10호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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