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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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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글쓴이 : 노정애    24-06-25 07:15    조회 : 833

                              

 

                                                        노정애

 

 마당에 들어서니 엄마는 동네 분들과 담소 중이었다. “엄마, 저 왔어요.” “우리 딸 왔냐. 정서방은?” 엄마의 첫 마디가 떨어지자 어서 와요, 잘 왔어요, 먼 길 고생했네.” 이웃 분들의 환영인사가 뒤따랐다. 부산이 삶의 터전이었던 부모님들은 25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오랫동안 뵌 분들이라 고향 친지들 보는 것처럼 반갑다. “다들 잘 지내셨어요?” 그간의 안부를 묻는 내게 그늘 자리부터 내어준다. 가족들 안부를 챙기며 남편을 찾는 어른들에게 혼자 왔다고 했더니 엄마 표정이 굳어졌다. 단 둘이 되자 조심스럽게 무슨 일 있니?” 묻는다. “일은 무슨 일, 그냥 보고 싶어서 왔죠.” 경쾌한 내 대답에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그제야 웃었다. 이른 아침부터 동네 분들과 마늘을 뽑았다며 함께 목욕을 간단다. “쉬고 있어라. 후딱 다녀올게가방을 챙기더니 급히 나갔다.

 엄마는 김해에 산다.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8년의 투병생활을 하고 떠난 뒤 외할머니와 살림을 합쳐 15년 가까이 함께 지냈다. 지난해 정초에 외할머니가 104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었다. 자주 찾아뵈어야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다행히 동네 분들이 식구처럼 챙겨주고 부산과 창원에 사는 오빠와 동생이 수시로 들여다본다. 오래전 받은 허리수술과 고관절 수술로 거동도 불편한데 농사를 짓는다. 자식들의 그만 두라는 성화에도 올해만, 올해만하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거실에 들어서니 집안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물 마실 컵을 꺼냈는데 얼룩도 없다. 뜨거운 차 한 잔을 타서 마당에 섰다. 날이 좋아 간간히 구름이 지나는 하늘은 더 높아 보인다. 우측에 무척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든든하다. 마당가에 있는 사과나무와 포도나무에 달린 과일들은 익어가고 크고 작은 화분에 꽃들도 피어 눈길 닿는 곳마다 풍요롭고 아름답다. 엄마의 부지런한 손길이 만들어낸 정원이다.  

 두 달 전 엄마 눈에 문제가 있다는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안경을 맞춰드리러 갔더니 안경점에서 빨리 안과에 가보라고 했단다. 엄마는 안경이나 새로 맞춰주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자식들 안부만 챙겼다. 제대로 검사받아보자는 자식들 고집을 꺾지 못해 결국 서울에 왔다.  

 다음 날 예약된 병원에 갔다. 오전시간 내내 검사를 받았다. 고관절 수술 이후 다리를 조금씩 절었는데 기운도 없었다. 내 팔에 매달리듯 꽉 붙잡고 천천히 움직였다. 늘 당차고 씩씩하게 걱정하지 말라고만 하는 올해 86세인 엄마다. 당신의 온몸이 내게 전해졌다. 검사 결과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의 무게까지 더해져 내 팔이 묵직했다. 백내장이 많이 진행된 상태이며 황반변성까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상생활이 많이 불편했을 거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그간의 일들이 이해가 되었다. 깔끔했던 분인데 어느 순간부터 집안이 지저분했다. 그때는 외할머니 보호자 노릇으로 주변 살필 틈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엄마 집에 가면 제일 먼저 한 일도 집 청소와 그릇 소독이었다. 몇 번 넘어져서 병원 신세도 졌다. 그때도 조심하라는 말만 했다. 서서히 나빠진 시력을 나이 탓만 하고 있었다. 렌즈삽입술로 원거리(遠距離)와 근거리(近距離) 시력을 회복하고 황반변성은 약으로 치료하면 된단다. 당신은 불편한지도 몰랐다며 수술비 걱정부터 했다. 늦은 오후에 왼쪽, 다음 날 오른쪽 눈을 수술했다.

 수술 후 나를 보며 처음 한 말이 아가 네 눈 밑에 있는 그게 이가?”였다. 수술이 잘 되었나 보다. 엄마는 세상이 환해졌다고 좋아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주름이 많고 나이가 들었구나.” 혹은 우리 딸도 나이가 들었네, 눈가에 주름이 많다,”등의 말을 했다. 그런 것들은 안 보여도 좋으련만.  

 2주간 엄마의 보호자 노릇을 했다. 식사와 약을 챙기고 안약을 시간 맞춰서 넣고 수시로 병원에 갔다. 엄마는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다고 좋아하셨지만 움직임은 어눌했다. 걷기가 불편해서 늘 앉아만 지냈고 집 주변 산책도 힘들어했다.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보살펴야했다. 때때로 이렇게 편안해도 되는지 불안해했다. 곁에서 돌볼 보호자가 필요했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자책이 수시로 들었다. 혼자 계시면 안 될 것 같았다. 함께 살자는 내 말에 웃기만 했다.    

 동네 분들은 매일 돌아가면서 안부전화를 했다. 빨리 오라고 성화였다. 더 이상 병원갈 일이 없어지자 갈 날만 기다리는 당신. 혼자 고속버스로 왔는데 갈 때도 그렇게 하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내가 모셔다드린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집을 나서며 네 집에서는 답답해서 못 살겠다. 우리 딸 그동안 너무 수고 많았다.”고 했다. 고층 아파트에서의 생활이 많이 힘들었나보다. 오빠에게 마중을 부탁하고 고속버스를 태워드렸다.  

 엄마는 잘 도착했다. 그 뒤 당신의 생일과 어버이날이 지났고 오빠와 남동생, 언니가 수시로 다녀갔다. 미뤄뒀던 일정이며 약속이 많았던 나는 매일 전화만 했다. 전화 속 목소리는 밝았지만 정말 잘 지내는지 알 수 없었다. 어눌하게 움직이던 엄마의 모습이 자주 떠올랐다. 남편과 함께 가려고 틈을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혼자라도 다녀오리라. 드디어 며칠의 여유가 생겼다.  

 기다리던 엄마가 왔다. 너무 잘 보여서 매일 청소만 했다며 깨끗해진 살림자랑부터 했다. 저녁을 먹자마자 혼자서 못해 미뤄뒀다며 냉장고 청소를 하잔다. 내친김에 김치 냉장고까지 이틀에 걸쳐 청소했다. 말끔해진 냉장고를 열어보며 흐뭇해하는 엄마를 보니 내 기분이 더 좋았다.

 엄마는 온종일 바빴다. 안에서 쓸고 닦고 치우고 밖에서도 할 일이 넘쳤다. 마당가에 잡초를 뽑고 유실수며 꽃들에게 물을 주고 뽑아둔 마늘을 묶어서 걸었다. 오이며 가지, 고추, 콩을 한 소쿠리 따와서 갈 때 가져가라고 주방 한쪽에 챙겨뒀다. 수시로 동네 분들이 드나들었다. 그분들과 어울리며 마당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목소리도 카랑카랑 높았다. 우리 집에서의 어머니와는 완전히 달랐다. 어디서 산삼이라도 드셨는지 힘이 넘쳤다. 잘 있다고 걱정 말라던 전화 속 목소리가 진짜였나?

 그랬던 엄마가 늦은 밤에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낮에 너무 무리해서 움직인 탓이란다. 정형외과에 다니고 있으니 걱정 말라며 진통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다시 생생하게 돌아왔다. 아픈 다리를 걱정하는 내게 가끔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오빠가 모시겠다고 했는데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그런 날은 안 왔으면 좋겠다며 아직은 끄떡없다고 큰소리를 쳤다.

 나는 자주 마당에 나갔다. 문만 열고 나가면 뻥 뚫린 하늘과 산바람 불어오는 마당에 꽃들도 만발하니 휴양지가 따로 없다. 밤이면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수시로 숨을 크게 들이시며 폐 깊숙이 그곳의 냄새를 차곡차곡 저장했다. 그 속에 엄마 냄새도 들어있다. 이러니 우리 집에서는 못살겠다고 했나보다.

 올해 마늘농사가 마지막 농사란다. 다리가 불편해서 더는 못하겠다고 했다. 내가 있어 괜찮은 척 했지만 농사를 접을 만큼 불편하셨던 게다. 베짱이처럼 놀아보겠다는 엄마. 제발 그래달라며 잘 생각했다고 했다. 너무 힘들어 보이면 당장 모시고 가야지 했던 마음은 잠시 미뤘다. 활기찬 엄마를 만난 23일은 너무 짧았다. 곧 또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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