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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디    
글쓴이 : 정민디    24-07-15 16:02    조회 : 3,019

                                                                   롱디
                                                                                                                                                           정민디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만났을 때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나이는 약 1100살로 추정되며 높이가 42미터 뿌리 부분의 둘레는 15.2 미터로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높고 오래되었다. 딱 보아도 품이 넓은 암나무로, 노익장을 뽐내며 매년 350 키로그램 정도 열매를 맺는다. 그럴싸해서 그런지 사찰로 올라오는 길 상점에는 은행열매로 만든 여러 가지 먹을거리가 많아 보였다. 천년의 나무 근처에 다른 은행나무가 또 있나 찾아보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무 가지가 위로 뻗어있는 수나무를 찾아 본 것이다. 주위에 다른 은행나무는 없었다. 내가 알기로 암수 나무가 따로 있어 수나무가 있어야 수분을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럼 어떻게 은행열매를 맺었을까 하고 의문이 가시지 않았는데, 그 동네 식당 주인으로부터 참으로 신박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용문사가 있는 양평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한다. 그는 성수기에는 역에서부터 식당까지 차량을 제공하여 손님을 유치하며, 그 인근 관광해설 까지 곁들여 장사에 박차를 가한다고한다. 나는 은행나무가 궁금해서 숨 가쁘게 물었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서 가장 빛나는 해설은 분명히 은행나무얘기 일거라는 촉이 왔다. 얘기에도 순서가 있는 지 먼저 용문산 은행나무의 전설은으로 시작했다.

 신라의 고승인 의상 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되었다는 것과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을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 심었다는 전설도 있다고 한다. 구한말에 일본군이 의병을 소탕하기 위해 절을 불사라 버렸으나 은행나무만은 타지 않았다. 그 사찰에 흔한 전설로는 나라에 재앙이 있으면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 한다. 그 얘기도 오리무중인 데 바람이 세게 불어 나뭇가지를 많이 흔들어 소리를 냈는지 진위는 알 길이 없고, 오래 산 어르신 나무의 영험함을 추앙하는 것 일게다.

그런데 사장님, 은행나무 말이에요. 보아하니 주위에 수나무가 없는 거 같은 데 어떻게 열매를 맺어 매년 수확량이 그렇게 나오느냐고요.”

장거리 연애를 해요. 요새 말로 롱디를 합니다. 낭군이 있는 곳은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에 있는 500살 밖에 안 된 연하남이래요. 비가 오면 빗물이 소식을 보내고 가끔은 사람이

연애편지를 전해주기도 한답디다.“

흥미로웠다. 은행나무가 롱디 연애로 그렇게 다산을 하고 있다니 정말 신비하다.

 정말 특이한 것은 여타 식물들은 바람, , 곤충, 동물들을 이용한 수분이 대부분이지만 은행나무는 정세포가 빗물 속을 수영하여 암술까지 이동한다. 어떻게 그런 긴 이동거리를 가질 수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생물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잘 설명되지 앓는다현재 유일한 매개동물은 은행 종자를 먹고 이를 퍼뜨려주는 인간이다다른 동물들은 은행 종자를 유독성 먹이라 안 먹는다. 새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수많은 견과류의 매개동물을 담당하는 다람쥐 청설모 조차 건드리지 않는다.

롱디 라는 말은 롱 디스턴스(long distance) 의 줄인 말이다. 롱디 연애라 함은 요사이 장거리연애를 지칭한다. 장거리 연애라 하니 아들 생각이 났다. 아들은 늘 상습적으로 롱디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대학 졸업 이후로 지금 까지도 이 나라 저 나라로 직업을 옮기게 되어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나라마다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고 다른 나라로 가게 되면 저절로 롱디 연애가 되니 금세 시들해 져 헤어지곤 한다이전에는 전화비용이 많이 드니 자주 연락을 할 수 없고, 비행기로 이동해야만 만날 수 있으면 얼굴을 자주 못 보니 장거리 연애는 힘들었다. 이렇듯 멀리 떨어져 있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일반론에서 헤어날 수 없는 거였다. 하지만 이제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좀 더 오래 연애 할 수 있는 매개체가 많아졌다. 간단한 소식은 핸드폰 전화 문자로 긴 대화는 컴퓨터로 챗팅 또는, 곧이어 화상 통화도 할 수 있다. 하물며 스마트 폰이 도래해서는 무료로 문자도 하고 영상통화도 하고 있으니 시간만 있으면 24시간 서로 보면서 얘기할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애가 무릇 혈기 왕성한 때 하는 것이니 생리적으로도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터이다.

 아들이 여자 친구와 헤어지는 장면이 컴퓨터 화상 통화로 연출 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신파극이 따로 없었다. 화면에서 여자가 계속 울고 있었다.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다. “엄마 나 지금 미나 랑 헤어 졌어.” “아니,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매몰차냐.” 했더니 자기는 언제나 우선순위가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아들은 나쁜 남자 주인공이다. 한 때 아들의 별명이 카사노바 였다. 카사노바는 여자를 절대 울리지 않고 잘 헤어졌다는 데.

 아들은 올 봄 부터 호주에 있는 여자와 그 아슬아슬 하고도 위험한 롱디연애를 또 다시 하고 있다. 결혼계획이 미처 없으면서도 꿈은 야무져 아이를 셋은 낳아야 된다니 무슨 수로? 비행기가 운반 해다 줄거나, 태풍이 불어 비바람이 꽃가루를 몰아다 줄거나, 삼신할머니가 관여해 수분을 시켜 줄거나. 아들아! 시간이 없어. 언제 까지 젊을 것 같으냐. 어쨌거나 간절한 장거리 연애로도 매년 풍작을 하는 은행나무를 닮아, 아들이 원하는 다산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 한국산문 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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