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한 켤레
박경임
사위가 사준 운동화는 가볍고 발이 편했다. 그 신발만 자주 신었더니 낡아서 새로 하나 살까 하고 같은 제품을 파는 매장에 가보았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한 켤레에 이십만 원 가까이 하는 운동화를 만지작거리다 매장을 나오며 아들이 이 운동화를 신고 싶어 하던 예전이 생각났다.
아들은 나하고 이야기도 잘하고 다정하게 집안일도 잘 도와주는 착한 성품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사춘기가 왔고 앞머리 한 가닥을 길러 아침이면 물을 발라 이마에 붙이느라고 화장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는 왜 무스를 안 쓰냐며 은근히 헤어 제품을 원하기도 했다. 미남 이라기 보다 귀여운 얼굴인 아들은 남녀공학인 학교에서 따르는 여학생이 은근히 많았다. 체육 시간이나 아들이 운동장에 있는 시간이면 스탠드에 여학생들이 모여 앉아 환호하곤 해서 얼굴이 빨개진다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아들은 제 멋에 겨워 여학생들의 시선을 즐겼고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담임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학교에 가니 선생님은 아들 성적이 떨어지는 원인을 알고 있느냐며 걱정했다. 개중에 어떤 여학생은 자기 수업도 빼 먹고 아들 체육 시간에 운동장을 배회한다니 한참 이성에 눈뜬 아이가 어떤 마음일지 알 것 같았다. 아빠는 멀리 있고 사춘기 아이들을 데리고 노심초사 하루하루가 외줄 타기였다.
아들은 멋 내기에 열심이었고, 학기 초부터 N 사 운동화를 사 달라고 졸라 댔다. 나는 그렇게 비싼 운동화는 사줄 수 없으니 유행에 신경 쓰지 말고 떨어지는 성적이나 걱정하라며 타일렀다. 며칠 동안 입이 나와서 다니는 아들을 모른 체했다. 아침 등교 시간, 아들은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면서 다시 N 사 운동화 타령을 했다.
“다른 애들은 다 신었단 말이야.”
나는 쏜살같이 아들의 등에 매달린 가방을 낚아 채서 키가 나보다 커버린 아들을 넘어뜨려 발로 밟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같은 일로 세 번 잘못했을 때 이유를 설명하고 옷장 위에 보관해 둔 회초리를 꺼내 종아리를 때리곤 했다. 그런데 회초리는 재껴 두고 다짜고짜 온 힘을 다해 밟았다.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화풀이가 더해진 행동이었다.
“이제부터 학교 가지 마라. 운동화 때문에 입 나와서 다니고 그렇게 외모에만 신경 쓰고 공부하기 싫으면 공부 안 해도 된다. 엄마는 그 운동화 사줄 돈도 없지만 있어도 안 사준다.”
워낙 겁도 많고 회초리 들면 아무 반항 없이 종아리를 대주던 아이다. 아들은 내가 팽개쳐 놓은 가방을 가슴에 꽉 끌어안고 엎드려 내 발밑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학교 가게 해주세요.“
나는 못 이기는 척 자리를 비켜 나왔고 아들은 눈물을 닦으며 낡은 운동화를 신고 학교엘 갔다. 아들은 그 이후로 한 번도 메이커 운동화나 옷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엇나가지 않고 공부에 매진해서 명문대를 나와 외국 기업에 근무하는 능력 있는 사회인이 된 아들이 고맙다. 하지만 제 아이들을 티셔츠에서 부터 운동화 모두 메이커로 치장해 놓은 것을 보면 어지간히 가슴에 맺혔나 보다. 손자들은 그렇게 베풀어주는 어빠에게 고마움을 가질까? 원하기 전에 가지는 것이 많아 손자들은 내가 뭔가 선물을 해주려고 해도 마땅치가 않다. 아이들 역시 별로 원하는 물건이 없어 보인다. 그 시절에 나도 능력이 되었다면 아이들에게 메이커제품을 사주고 꾸며 내놓으며 신나했을까?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모습을 재단할 때가 있다. 대중문화나 소비를 타인의 욕망에 따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아들은 중학교 시절에 다른 친구들의 운동화나 겉옷을 바라보며 자신을 초라하다고 생각했으리라. 세상은 그것이 비교의 척도가 되어있었으니까. 오늘날에도 우리는 타인의 잣대로 자신의 욕망을 키워가는 경우가 많다. 내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가지고 싶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실리적인 소비를 선호한다. 메이커 운동화 한 켤레 살 돈으로 다섯 켤레 쯤 신발을 사서 바꾸어가며 신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것은 타자의 욕망이 아니라 나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모습이다. 이 글을 쓰며 30년 만에 아들에게 사과의 문자를 보냈다. 아들은 다 지난 일이라며 웃으며 전화를 걸어왔지만 난 웃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