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곽지원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happygangster2024@gmail.com
* 홈페이지 : https://www.youtube.com/@happygangster_w
  '커밍아웃'    
글쓴이 : 곽지원    25-05-12 09:10    조회 : 632

커밍아웃

 곽지원

 

 “…기차가 터널에 들어가서 컴컴할 때, 한 칸에 타고 있던 OO 선생님한테 달려 들어서 막 인디언 밥하고 시치미 떼고…”

 “…다른 방은 뭐하고 노나 궁금해서 갔는데, 아 글쎄, OO 선생님이 준비해 온 나이트클럽 

조명 켜놓고 춤들을 추고…”

  여고 동문회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초대된 선배가, 2 때 갔던 경주 수학여행 에피소드를 한 보따리 풀어 놓았다. 거침없고 맛깔난 그녀의 입담 덕분에, 모두 배꼽을 잡고 웃다가 촬영이 끝났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일말의 불안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혹시 나한테 수학여행에 대해 물어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위아래로 요동을 쳤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은 조마조마….

 내가 경주를 처음 간 건 고2 때가 아니다. 신혼여행 코스를 제주도와 경주로 잡았다.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남편이 석사과정을 밟을 미국으로 함께 갈 예정이라서, 비록 국내 여행이지만 길게 다녀왔다. 둘 다 백수여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것도 한몫 했다. 대학 졸업여행을 제주도 로 갔던 나, 제주도를 안 가본 남편. 그렇게 우리는 제주와 경주, 각자 처음인 곳을 하나씩 신혼 여행지로 남겼다.

 

수학여행을 앞두고 마음이 시끄러웠다. 아빠의 부도는 내가 고3이 되자마자 났지만, 불길한 징후는 이미 1년 전부터 있었다. 집에 돈의 씨가 마르고 있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얼마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여행 비용을 엄마에게 달라고 하기가 망설여질 정도였으니…. 그렇게 며칠을 혼자 끙끙 앓다가 내린 결론은, ‘수학여행을 가지 말자였다.

학교와 친구들에게 알린 공식적인 이유는, ‘코앞에 닥친 문예 창작대회에 낼 소설을 퇴고할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일말의 자존심이었다. 그 대회에서 내 소설이 당선되었길래 망정이지, 망신살이 뻗칠 뻔했다. 평생 한 번인 수학여행까지 포기하고 쓴 소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으니 말이다.

2학년 교실이 텅 비어 있는 며칠 동안, 나 같은 학생들은 무조건 학교 도서관으로 등하교를 해야 했다. 첫날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 놀랐다. 우리들 사이에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서로 말을 안 걸고, 섬처럼 뚝뚝 떨어져 자기 일에만 집중했다는 거…. 돌이켜 보면, 주머니 사정 외에 무슨 큰 사연이 있었을까 싶다.

 소풍의 꽃, 2 수학여행. 동창들을 만날 때 가끔씩 소환될 수밖에 없는 대화 소재다. 3 때 친구들만 만나니까, 다들 내가 경주에 안 간 걸 모르는 눈치다. 그중 2학년 때도 같은 반인 친구가 있더라도, 나를 배려해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겠지.

경주’, ‘수학여행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는 나. 이제야 커밍아웃한다.


*[소풍 끝에 남은 기억] (포레스트 웨일 공동작가)에 수록된 수필 3편 중 하나입니다.



 
 

곽지원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3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98379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100871
3 '커밍아웃' 곽지원 05-12 633
2 운명의 빨간 실 곽지원 03-12 2854
1 오렌지 물결 곽지원 03-05 2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