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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다 (<<애지>> 2010년 여름호 게재)    
글쓴이 : 임매자    12-05-20 11:08    조회 : 4,022
입원실에서 달리를 만나다
 
 
   병실 벽에 달랑 무료하게 걸려 있는 시계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것을 보는 것이 차츰 고문이 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착시 현상까지 일으켜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가 그린, 연체동물처럼 축 늘어진 시계로 변했다. 달리는 시계를 이용하여 여러 이미지를 창출했다. 시계가 딱딱한 것이라는 선입견을 없애고자 흐물흐물하게 바꾸었을까. 
  상상력을 죽이고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을 자극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기발한 발상이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다. 시간은 경우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줄어든다고 생각했기에 상상력을 동원해 시간의 의미를 재해석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재미없는 사람과 같이 있을 때의 시간은 지루하여 한없이 길게 늘어지지만 즐거운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무척 짧고 팽팽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남편과 내가 부부의 연을 맺은 지도 어언 40여 년이 넘었다. 신혼 때는 그의 유머가 재미있어서 우리의 대화는 탱탱했다. 그러나 연륜이 쌓이면서 어느새 그가 던지는 유머는 늘어진 고무줄같이 탄력 없고 메마른 말로 변하여 달리의 축 늘어진 물렁물렁한 시계처럼 생동감이 없어졌다.
  달리가 보여주는 시계 이미지들은 내 고집스러운 기억을 유도한다. 그 이미지들은 나 혼자 감당해야 했던 아이들 교육과 산더미 같은 일에 파묻혀서 현실적 어려움에 녹초가 되었던 시절, 원초적 모성애에 끌려다니던 내 모습이 떠오르게 한다.
  젊은 시절 내 주위엔 유난히 시계가 많았다. 주방에, 화장실에, 안방에 여백 없이 빼곡하던 시계들은 시간이 촉박하다고 동동거리는 나를 따라다니며 늘 성가시게 재촉해댔다. 지금도 병실에 누워있는 나에게 그 벽시계는 고집스럽게 자신을 각인시키고 나를 자극하며 다그친다.
  시간을 죽이는 나에게 ‘쓸데없는 감정은 걷어버리고 어서 깨어나라.’ 하고 재촉하기도 하고, ‘시간은 촉박한데 지금 뭘 하고 있느냐.’라고 밤마다 보채기도 한다.
  사람들은 달리를 가리켜 마치 카메라로 꿈을 찍는 것 같다고 한다. 그의 그림들이 꿈의 장면들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가 꿈에 매료된 것은 정신분석을 창시한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이론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평소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산다. 그 가면 속에는 이글거리는 검은 욕망이 있으며 이를 무의식의 변형인 꿈으로 표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잠만 들면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허황한 꿈을 꾸곤 했다. 도시의 빼곡한 지붕들 위나 넓은 초원이나 바다를 날아다니기도 했고, 친구가 갑자기 사자로 돌변하고 느닷없이 개로 둔갑하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런 일들이 왜 꿈속에서는 자주 벌어지는 걸까.
  꿈을 꾸면 거대한 벽 같던 현실이 모래알처럼 작아져 마음껏 희롱할 수 있어 좋다. 꿈이나 상상에서는 이렇게 마음대로 형체가 바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달콤하기만 하다.
  누가 이런 내 날개를 꺾을 것인가.
  꿈속에서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보채면 깊은 밤 어김없이 어린 소녀로 돌아가 어머니와 오랜만의 해후를 즐긴다. 어머니가 살아생전 힘드신 줄도 눈치를 채지 못했던 못된 딸이지만 어머니의 느낌은 여전히 포근하고 따듯했다. 그러나 꿈에서 깨면 끝내 털지 못하는 현실의 비애와 아픔이 여진처럼 남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이며 스타 화가인 그는 상상화의 대가이다. 그의 그림들은 대부분 상상을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작품들이다. 특히 <기억의 영속>이라는 그림을 보면 왜 그를 천재라고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한적한 해변에 물렁물렁한 시계들이 축 늘어진 채 걸려 있는 그 작품은 달리가 세계적인 명성을 쌓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 그림은 너무 유명세를 떨쳐 숱한 상업광고에 등장할 정도였다.
  그는 늘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하면서 틀에 박힌 생각만 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어 이런 괴상한 그림들을 그렸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각박한 일상을 사는 도시인들에게 오히려 리얼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달리의 손에 이끌려 몽유의 정원을 서성이다가 돌아오니 생각이 한 치나 자란 느낌이 든다.
  나는 상대와 지루한 대화가 이어질 때면 시선은 상대에게 고정하고 있어도 마음속으로는 이미 각박한 일상을 매미 옷처럼 훌훌 벗어버리고 상상 속의 미로를 찾아드는 고약한 버릇이 내게는 있다.
  남편과 데이트하던 시절, 그는 이런 나의 이상한 습성에 익숙하기 전이라 못마땅해하면서 “자존심 상한다.”고 불평하곤 했다. 그래서 그와의 인연이 끊어질 뻔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대화 도중에 달아나는 나의 상상 속의 미로를 눈치채는 정도의 연륜을 우리는 살고있다.
  골치가 지끈대는 추상화들에 싫증이 나 있을 때 처음 달리를 만났다. 상식을 초월한 작품들은 사진처럼 명료하여  그 고통은 비상식적이면서도 리얼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그의 이미지는 하나씩 따로 끊어도 환각 같은 즐거움을 주었다. 생의 통증을 이미지 안에 새겨 넣었기 때문일까.
  달리는 세속적이면서도 과장된 이미지들을 계속 만들어냄으로써 대중적인 인기 화가로 변해, 언론 덕택으로 유럽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대단한 성공을 맛보게 되었다. 생전에 이미 최고의 그림 값을 받았던 달리는 회화뿐 아니라 조각, 사진, 영화까지 창작 영역을 넓히면서, 여든다섯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유복한 삶을 누렸다. 그러나 여성편력으로 유명한 피카소와는 다르게, 달리는 평생 한 여인만을 줄곧 사랑했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있었다면 달리에게는 갈라가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 연인을 바라보기만 하던 단테와는 달리, 그는 갈라와 같이 살았고  갈라는 달리의 열쇠이고, 하늘이자 땅이었다. 일생에 한 여인에게 바친 지고지순한 외골수 순정을 지닌 그가 어찌 그리 상식을 초월한 상상화를 그려냈을까.
  1982년 갈라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달리는 그녀에게 선물했던 푸볼 성에 갈라를 안장하고 매우 불안한 만년을 보내게 된다. 파킨슨병, 자살 기도, 침실 화재, 수술 등으로 힘든 노년을 보낸 그는 결국 폐렴과 심장병의 합병증으로 1989년 그녀 곁으로 돌아갔다.
  달리의 작품에서는 흔들거리는 혼돈의 위태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입원실 벽의 시계 덕분에 다시 찾아보게 된 달리 작품들은 화려하면서도 리얼한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 수 있게 해주었고, 입원실의 밤이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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