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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을 말한다    
글쓴이 : 김미원    12-05-23 18:52    조회 : 4,469
내 이름을 말한다
김미원
대학시절 연극을 했던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워크샵에 참가해 처음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여배우(물론 그 때는 무명이었다)가 일어나서, “○○○예요.”라고 하더란다. 사람들이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예요.”라고 했다. 그래도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자, “○○○이라니까요.”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 때서야 사람들이 웃으며 큰 박수를 쳤다고 한다. 이름이 자신을 나타낸다고 믿는 나는 가끔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에 가면 그녀를 떠올린다.
내 이름은 김미원, 金美源이다. 뜻을 풀면 너무도 거창한 ‘아름다움의 근원’쯤 된다. 근원이라니. 내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님은 내게 너무도 큰 뜻을 품으셨나 보다. 청빈한 유학자로 돌아가시는 날까지 상투를 풀지 않으셨던 할아버지는 손녀딸인 내게도 항렬을 따라 이름을 지어주신 게다. 그러나 나는 항렬인 원(源)자가 너무 무겁다.
아름다울 미(美)는 또 어떤가. 미는 진(眞), 선(善)과 함께 인간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로 여겨왔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름다움은 조화 속에서 완전해진다고 했다. 플라톤은 인생에 유용한 것, 목적에 합치된 것이 선인 동시에 미라고 여겼다. 또한 미가 진이나 선과 단절되면, 부조리나 악과 결합된다고 했다. 아름다움이 단지 아름다움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 나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자신이 아름답지 않을뿐더러 왠지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경박한 것 같고 깊이가 없는 것 같아 이 이름을 싫어하기 까지 했다. 세상에는 아름다움 말고 추구해야할 가치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어렸을 적, 친척 할머니들께서 나를 가리켜, “천상 여자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여성적이지 않은 나는 ‘천상 여자’가 내포하는 소극성, 의존성, 종속성 등이 떠올라 그 말이 듣기 싫었다. 속으로 ‘나는 천상 여자가 아니야’ 라며 혀를 낼름거리기도 했다.
여성적인 이름보다는 좀 더 강한 이름을 갖고 싶었다. 내가 네 살 때 남동생 이름을 지으러 갔는데 서울 장안에서 유명했던 김봉수 씨가 내 이름을 김지원(金志源)으로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바보가 된다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그 후 가족과 친척 사이에서는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지만 그만 학교 갈 때 호적 이름인 김미원으로 불리어지면서 친구들은 미원으로만 알고 있다. 그 때부터 내 이름은 두 개가 되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보다는 뜻을 품은 사람, 뜻을 펼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미원이란 이름보다 지원이란 이름이 더 그럴 듯 해 보였다. 학교 다니면서 도로 미원이 된 나는 따지고 보면 네 살 이후로 정말 조금씩 바보가 되는 듯도 하다.
부끄럽지만 고백을 하자면 나는 고등학교 때 친구와 선생님들 사이에서 코스모스란 별명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고교시절 헤르만 헤세에 빠졌었고 루이제 린저나 에밀 아자르 등을 읽으며 교실 뒷자리에 앉아 공부만 하는 모범생을 비웃기도 했던 나는 하늘하늘하고 창백해 보이고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이 별명이 좋았다. 당시 동물적인 탐욕적인 인간 보다는 욕심 없고 순결한 식물적인 인간을 동경해 이 별명을 은근히 즐겼던 것도 같다. 양갈래 머리를 따던 순수했던 시절을 지나 세파에 휘둘리면서 이 별명을 오래 잊고 살았다. 글을 쓰면서 깊은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듯 이 별명을 생각해 냈으니 말이다.
결혼 후에 물 흐르듯이 시간이 흘러가는 가운데 내가 사는 삶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다. 평온하고 행복한 순간에도,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인생이 가벼운 거야. 아직 아니야. 아직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너무 가벼운 인생이, 이제 조금만 가벼우면 날아갈 지도 모르는 위태한 순간에 글을 쓰는 행복을 찾았다. 조용한 시간에 내면을 응시하며 나를 찾고,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며 글로 나타내면서 비로소 인생을 사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 그동안 써온 글들을 모아 책을 내면서 평소 중국문학을 배우던 허세욱 교수님께 부탁해 작은 옹달샘이란 뜻의 소천(小泉)이라는 호를 받았다. 옹달샘은 끊이지 않고 물이 솟아오른다. 고이지 않아 맑다. 아무리 큰 강이라도 그 발원은 조그만 옹달샘이다. 여기에도 근원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은 우연이 아니리라.
옹달샘하면 그리스 리바디아 바위산 기슭에서 이웃하여 솟아난다는 므네모쉬네(기억) 샘물과 레테(망각)의 샘물이 떠오른다. 기억과 망각의 샘물이 합류해 시내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흐르듯 인생이란 기억과 망각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망각의 양이 기억 보다 많은 어느 날 이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닐까. 하여 사람들이 나를 소천이라 부를 때 하늘로 돌아간다는 소천(召天)을 떠올린다. 언젠가 가야할 하늘나라가 떠올라 마음이 경건해진다. 내 마음의 또 다른 추이다.
나는 내 안에 두 가지가 다 있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에 가까이 가고 싶은 여성적인 취향과 뜻을 펴는 강한 남성적인 모습. 이러한 것들이 다 합쳐진 것이 내가 아닐까하고 조금 세상을 살았다고 믿는 요즘에야 이런 생각이 든다.
다시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름이 사람을 identify 시킬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뜻을 펴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이름대로 자아와 교만을 버리고 복종하는 순한 사람이 되었다고.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말이다.
나를 소천(小泉)이라 불러주신 허세욱 교수님께서 2010년 7월 1일 소천(所天)하셨습니다. 천국에서의 평안을 기도합니다.
 
수필문학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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