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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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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말걸기    
글쓴이 : 김미원    12-05-23 18:55    조회 : 4,521
나에게 말걸기
김미원
나는 요즘 사춘기 소녀의 일기에 빠져있다. 그녀의 내밀한 자기 고백을 읽노라면 내가 숨쉬고 있는 이 공간이 감사하고 내가 바라보는 것들이 아름답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고맙다.
그녀는 나치를 피해 은신처에 숨어 살며 13살 생일에 받은 일기장에 마음속의 비밀들을 털어놓으며 체포되기 사흘 전까지도 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이다. ‘신의 가호로 살아남는 일이 허락된다면 변변치 못한 인간으로 일생을 마치지는 않겠으며 꼭 세상을 위해, 인류를 위해 일하겠다’던 그녀는 불행하게도 수용소에서 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1947년 네델란드에서 처음 발간된《안네의 일기》는 75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3,500만부가 팔려나갔다(2007년 자료)고 하니 안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어린이가 된 셈이다. 내밀한 자기고백의 글인 일기가 세상에 공표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니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나도 안네가 썼던 빨간 체크 무늬 카바의 일기장은 아니지만 컴퓨터에 일기를 쓴다. 마음이 기쁘거나 집에 일이 있을 때, 아무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나에게 조근조근 이야기 하듯 일기를 쓴다. 그러나 컴퓨터 자판으로 두들기는 일기는 건조하다. 때로 내 일기를 누가 볼까 하는 불안감도 살짝 잠재되어 있다. 너무 솔직하게 쓰다가 이런 것 까지 써도 되나 하는 걱정도 한다.
어린 시절 일기 숙제는 고역이었다. 일기는 은밀한 자기 고백인데 나 아닌 선생님이 보신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포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선생님께 고자질하듯 친구와의 다툼을 적기도 하고, 내 자랑을 나열하기도 했으니 조금은 교활한 일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일기장에서 선생님의 한 줄의 글이라도 발견했을 때의 감격이라니...
검열 받는 일기의 기억 때문일까. 단언컨대, 내가 써온 일기는 100% 정직하다고, 진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도 그렇게 쓴 일기일지라도 훗날 펼쳐보면서 추억에 잠기고 내가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 자신을 칭찬하기도 하고, 그 시절 나와 같이 했던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어느 덧 내 표정은 흐물흐물해진다.
사후 16,000쪽의 일기가 출간되어 유명해진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1821년-1881년)은 일기의 본질을 잘 알고 있던 작가였다. 그는 《일기》에서 “일기는 고독한 사람의 마음의 친구이며, 위로의 손길이고 또한 의사이기도 하다. 날마다의 이 독백은 축도의 한 형식이기도 하고, 혼과 그 본체와의 대화이기도 하며, 신과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고 했다. 일기는 자신에게 말을 걸며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게 해준다.
다시 안네를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필요한 존재이고 싶고, 죽은 후에도 여전히 기억되고 싶다고 했던 그녀는 죽어 그 꿈을 이루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로 인해 ‘죽은 후에도 여전히 기억될’ 줄을 상상이나 했었을까. 살아있다면 우리 어머니 나이쯤 되는 그녀는 이 일기로 불후(不朽)하고 있다. 안네의 일기를 보며 기록의 지엄함을 깨닫는다.
어찌 보면 불후를 꿈꾸는 것조차 허망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불후를 꿈꾼다. 유명한 저술가도 아닌 평범한 나를 위로하는 글이 있다. 임어당과 동시대를 살았던 호적(胡適1891-1962) 은 글 〈불후(不朽)〉에서 ‘고금을 통하여 칭송받아온 도덕이나 공적도 물론 불후하지만, 아주 범상한 언행을 비롯해서 기름이나 소금, 땔감, 쌀 등의 일상품, 우매한 지아비나 지어미의 자잘한 일, 일언일소의 단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후’하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불후한 것이 된다.
결국 불후는 소통이 아닐까. 보통 사람인 나는 주위의 친구들, 지인, 자식들에게 내가 한 말, 행동, 또 함께 나눈 것들로 불후할 것이다. 많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은 아니겠지.
일기는 나와의 소통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타인과의 소통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자식들이 내 컴퓨터를 열어 엄마의 일기를 보며 내가 산 흔적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한편 그들이 내 내밀한 감정들을 보고 혹 서운함을 느끼거나 적나라한 인간 ‘김미원’을 만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일기장을 태우고 컴퓨터에 저장된 일기를 삭제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일기를 쓰고 싶다. 가끔 들여다보며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출발지점 각도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되돌아보고 싶으니까.
이제 새해이다. 새 날, 새 각오를 일기장에 적을 참이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내 감정을 있는대로 적어나갈 생각이다.
 
월간에세이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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