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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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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여인    
글쓴이 : 김미원    12-05-23 19:10    조회 : 5,044
아름다운 여인
김미원
안톤 체홉의 단편 〈귀여운 여인〉에는 내가 한때 이해하지 못했던 올렌까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는 매일 불평만 하며 좌절하는 게 일이던 연극 연출자를 동정하다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그가 죽자 목재업을 하던 옆집 남자와 결혼해 6년 동안 또 행복하게 산다. 그 또한 병으로 죽고 다시 수의사를 사랑했지만 그가 말도 없이 떠나자 실의에 빠져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없어진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수의사가 가족을 데리고 돌아오자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집 본채를 내주고 수의사의 아들을 자신의 친아들처럼 키운다. 비로소 생기를 찾은 그녀의 관심은 이제 오로지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의 아들을 가르치는 것 밖에 없다.
자의식이 강했던 사춘기 시절, 이 소설을 읽으며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왜 자신의 주관이 없이 남편에게 모든 것을 거는지, 어째서 남편의 세상이 그녀의 세상이 되고 우주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남자를 사랑했으면 다시 사랑을 하지 말든가, 그렇게 지조 없는 여자를 체홉은 왜 귀여운 여인이라 했을까 의문을 가졌다.
올렌까는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사는 여자다. 혼자는 아무 것도 못하는 여자로 보일 수 있지만 항상 돌보고 의지하는 대상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그녀가 어찌 보면 아름답기도 하다. 내 나이 30쯤 되었을 때는 그런 여자도 있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그로부터 세상을 훨씬 많이 산 지금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는 귀여운 여자라는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고 싶기도 하다.
장난감을 선물 받아
그것을 바라보고 껴안고, 그리고는 부셔버리고
아침엔 어느 새 준 사람도 잊고 마는 아이와 같이
당신은 내가 바친 나의 마음을
귀여운 장난감처럼 조그만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내 마음이 아프게 괴로워하는 것도 모르고 지냅니다.
헤르만 헤세 〈아름다운 여인〉  
비슷한 시절, 이 시를 개사한 서유석의 노래를 들으며 올렌까가 오버랩 되었다.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지만 내일이면 선물을 준 남자를 잊어버리는 무자비하고 무감각한 여인이 올렌까와 같은 종류의 여인이 아닐까라고. 체홉의 ‘귀여운 여인’과 헤세의 ‘아름다운 여인’은 분명 다르지만 순간순간 몰두하고 사랑한다는 점에서 닮은 것도 같다. 어째서 헤세는 자신을 잊고 마는 이런 여자를 아름다운 여인이라 했을까. 어쩌면 남자들 마음속에는 이와 같은 여인을 마음에 그리는 게 아닐까라는 어쭙잖은 분석도 해 본다.
나는 체홉의 귀여운 여인 보다는 헤세의 아름다운 여인이 되고 싶다. 올렌까는 남자에게 너무 헌신했기에 남자가 떠난 게 아닐까. 이기적인 나는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예수님의 사랑처럼 헌신적으로 남자에게 주기만하기 보다는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싶다.
남편의 꿈은 아무도 없는 바닷가 섬에서 내 무릎을 베고 책을 읽고 낮잠을 자는 거다. 아직 이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아직도 나를 욕망하고 있으니 나는 헤세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공한 것도 같다.
이쯤해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는 내가 한창 희랍인 조르바에 미쳐 있던 젊은 시절,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노가다’라고 말해 나를 설레게 했던 남자이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날아다닌다고 생각했던 나는 땅 위에 꼿꼿이 서서 몸으로 사는 그가 나를 잡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에 눈이 먼 나는 그를 나의 이상형에 대입시켰던 거다.
그는 식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남자이고, 여느 집처럼 식탁 옆에 가족사진을 행복의 표상인양 걸어두고 싶은 내 소원을 무 자르듯이 잘라내는 남자다. TV를 보다 추운 겨울, 쭈글쭈글한 손으로 김치를 꺼내러 장독으로 가는 궁색한 70대 시골 부부의 모습을 보고 힘들겠다고 하는 내게 ‘그래도 저 분들에게는 생의 활력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남자이다.
착한 그는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도망가듯 급히 집을 나가 삐그덕 거리는 모텔 침대에서 같이 밤을 지냈던 남자이고, 한밤중 딸이 급성 장염에 걸렸을 때는 응급실에서 함께 밤을 꼬박 새웠으며, 아들이 조각칼로 손바닥을 깊이 베었을 때는 하얀 와이셔츠가 피범벅이 되는 것도 모르고 뛰었던 남자이다.
그런 그와 나는 부안 격포 채석강 해안가에서 발견한 호랑가시나무 꽃을 보며 좋아했고, 저 평화로운 남도 땅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을 지나 어느 집 마당에서 찾아다니던 고인돌을 발견하고는 고고학자라도 된 양 즐거워하기도 했다. 빨간 동백꽃 대신 솜사탕 같은 때늦은 함박눈을 만난 선운사에서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하얀 속살을 보이며 난분분 내리는 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앞으로…….
그는 군대에서 보낸 훈련병 아들의 손때 묻은 사복을 보며 우는 나를 위로해줄 것이고, 나는 딸의 결혼식 날 눈물짓는 남편의 손을 잡아줄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의 상을 치르고 돌아와서는 등 뒤에서 가만히 안아줄 거다.
얼마 전 한창 차가 붐비는 시간인 금요일 저녁 시간에 식구가 같이 차를 타고 가는데 어쩐 일인지 길이 막히지 않았다.
“왠일이야? 오는 길, 가는 길 모두 차가 안 밀려 이상하네?”라고 내가 말하자 남편은 “그럼 왕비를 모시고 가는데 길이 막히면 어떡합니까.”라고 장난스레 말을 받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왕비과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나는 “왕비는 무슨... 나는 무수리야.” 라고 했다. 그러자 딸은 얼른, “엄마가 무수리였으면 벌써 쫓겨났어.”라고 끼어든다. 딸은 커 가면서 점점 아빠 편이 되어간다. 나는 그의 빈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헤세의 아름다운 여인처럼 남자의 사랑을 짐짓 모른 채 하며 그를 밀고 당기며 살아가고 싶다.
 
에세이문학 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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