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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신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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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 이 슬픈 오딧세이    
글쓴이 : 신성순    12-05-25 23:25    조회 : 3,613
 
 
 
 
가난, 이 슬픈 오딧세이
- 공선옥의《멋진 한세상》을 읽고
 
 
신성순
 
 
 
공선옥의 소설 <<멋진 한세상>>에 담긴 사연들. 살이에 지친 어깨, 더는 나갈 길 없어 발 동동 구르며 흘리는 눈물 한 바가지. 아직 아물지 않아 눌러도 아프지 않을 흉터가 채 되기 전 생채기처럼 그렇게 쓰리고 콕콕 쑤시는 고통이 티끌만큼의 보탬도 없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나열되어 있다.
 
 
내 가슴은 요동을 친다. 그런 통증들을 내 살아온 기간에 겪었던 그래, 딴에는 내가 가장 아파했을 그런 것 중에 무엇과 견주어 아, 그 정도의 아픔이겠구나. 라면서 고개 끄덕일 것인가. 에 대한 사치성 딜레마.
 
작가의 말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처해 있는 현실이 갑생 씨보다는 덜 기막힌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라는.  
무엇이건 간에 앞뒤가 있고 흑백이 있고 장점 단점이 있듯이 이 말에도 극과 극의 본능이 숨어있다. 나의 현실을 위해서 다독거리는 현명함, 비극을 보고 내가 위안 삼는 잔인함.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이 소설집은 〈그것은 인생〉, 〈정처없는 이발길〉, 〈나비〉, 〈관가행차〉,〈홀로 어멈〉, 〈멋진 한 세상〉, 〈고적〉,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이 한 장의 흑백사진〉, 〈한데서 울다〉, 〈이유는 없다〉로 묶여있다. 물론 내용은 각각 다르다. 공통점이 있다면 등장인물들의 가슴에 어떤 아픔들이 잔뜩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막히게 혹은 허무하게……
 
〈그것은 인생〉을 쓰는 동안 작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당신, 이래도 세상 살기 어렵다고 꽥꽥 죽는소리할래 였을까. 여기엔 온갖 공포와 절망, 분노에 서린 눈동자, 세상을 향해 버럭 내지르는 푸른 오기, 어쩌지 못해 저지르는 무책임, 그로 말미암아 희생되는 가녀린 생명이 있다.
 
포장마차로 생활고를 해결했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다. 그로 말미암아 중학생인 오빠와 초등학생인 여동생에게 서서히 가난이 주는 고통이 스며들어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불편함을 겪게 된다.
 
가난이 죄가 아니라며 아이들을 다독거리던 어머니는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그녀를 더는 견디지 못하게 하는 무엇이 있었으리라. 남편, 아이들 모두 팽개치고 집을 나간다. 남은 사람들의 정신적 상실감이나 절망이 눈물겹다.
 
집 나간 아내를 향해 너 없다고 우리가 못살까 보느냐며 이를 악물던 아버지도 자유스럽지 못한 육체로는 더는 남매를 보살필 능력이 희박하다. 자신만 없어지면 이 불쌍한 아이들, 동사무소에서 최소한의 생활비라도 보조가 되겠거니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쪽지 한 장 달랑 남겨놓고 사라진다. 이제 그야말로 생활력 전혀 없는 오누이만 뎅그러니 남게 된다.
 
소년의 눈에 독기가 서려 있다. 행복동 영구임대아파트 103동 1,304호에 관리비가 잔뜩 밀려서 단전, 단수가 되었을 때도 그랬다.
 
"까짓 거. 겁 하나도 안 난다 이거야. 불 안 켜버리면 된다 이거야."
아버지가 집을 나갔을 때도 그랬다.
"까짓 거. 우리끼리 살면 된다 이거야."

 
 
아이에겐 백가지의 절망과 하나의 희망이 있었다. 비가 오는, 불도 켜지지 않던 어느 가을날. 오빠가 돈만 구해오면 이 무시무시한 어둠의 공포도, 너무 추워 오금을 저리게 하는 것도, 친구가 거지라 놀리며 놓고 간 빵도 소년과 함께 먹게 되어 배고픔도 다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참고 기다린다. 그것이 아이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돈을 구하러 간다던 소년의 그 방법이란 소매치기다. 오기 등등한 눈빛. 분노로 이글거리는. 술 취한 사람의 뒷주머니를 터는 데 성공한다. 소년의 생각이 거칠어진다.
 
 
어둠 속에서 소년을 기다리다 잠들었던 아이가 깨어났다. 추워서 온몸이 빳빳해졌다. 무섭다. 오빠를 불러본다. 없다. 일어나서 전기 스위치를 누른다. 어둡다. 손을 휘젓는다. 부탄가스가 잡힌다. 가스버너에 넣는다.
 
치익, 가스 물이 묻어나온다. 냄새도 난다. 방안은 암흑이다. 양초를 찾는다. 가스불을 켜고 거기에 물을 끓여서 마시면 추위가 가라앉을 것이다. 아이는 라이터불을 켠다. 한순간 온통 환해진다.
 
행복동 영구임대아파트 103동 1,304호에 불이 났다. 소방차가 숨 가쁘게 달려든다. 검게 그을린 아이의 시신이 흰 무명보자기에 덮어씌워져있다. 소년은 주머니 두둑하게 돈을 마련해서 아파트 입구까지 온다. 경찰차가 보인다. 자신을 잡으러 온 것 같아서 아파트 반대 방향으로 튄다. 소매치기의 인생은 힘들고 험난한 길이라고. 힘들고 험난하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이 절망, 이 아픔, 이렇게 고스란히 내 가슴에 스며드는 슬픔을 어쩌란 말이냐. 내 손에 닿지 않은 이 지독한 설정 앞에서 나는 이보다 나으니까 안도의 숨을 쉬라고? 그게 위안이라고? 나는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정처없는 이발길〉은 마을이 물에 잠길 위기여서 철거작업을 하는데 어디로 나가서 살 곳이 없는 어느 노부부의 애환을 너무나 절절하게 그렸고 〈관가행차〉는 내 땅이 왜 국가 땅으로 넘어갔는지도 도통 모르는 어느 소시민이 군청을 드나들면서 자신의 땅을 되찾으려는 거대한 바위에 대항하는 달걀처럼 힘없는 목소리를 적나라하게 펼친 내용이다.
 
 
〈고적〉은 자매의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말이 없고 어떤 상황에도 미련하리만큼 착하게만 처신하던 언니가 차츰 성인이 되면서 겪게 되는 가난 때문에 사납고 신경질적이며 억척스럽게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비록 언니보다는 낫게 살지만 그래도 그 가난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처지여서 제 앞에 와서 우는소리를 하는 언니를 보면서도 차마 도울 입장이 못 되어 차라리 반쯤 외면해버리는 동생의 모습이나 심정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렇듯 세상 속에서 꿈틀거리는 여러 형태의 삶을 어떤 군더더기 하나 붙이지 않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냈다. 너무나 적나라하여 오히려 보기 무색할 정도이다. 문학평론가 양진오는 이를 〈억척 어미의 여성성, 가난과 마주하는 문학〉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공선옥의 《멋진 한세상》처럼 내 온몸을 따끔거리게 한 것은 참 드물다. 너무나 아파 야속하다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어. 너 정신 차려, 라는 일침 같아 가슴 싸 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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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인생>> 5월호 (범우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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