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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를 무는 연상    
글쓴이 : 이정희    12-05-27 19:25    조회 : 3,858
꼬리를 무는 연상(聯想)
                                                  학정 이정희
 
 ‘-답다’라는 접미사가 이즈음 부쩍 내 관심을 끈다. 흔히 쓰는 말이니 굳이 사전을 들추어 그 의미를 따져볼 필요는 없을 터이다.
 새해 벽두이기 때문일까.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과연 여자답고 어머니다운가. 시누이답고 올케다운가. 친구답고 이웃다운가. 나는 의식만큼 행동이 따라주지 않고 있음을 얼굴 화끈한 부끄러움으로 자각한다.
 관심의 영역을 나 밖으로 확장하여 지도자나 지성인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진정 지도자답고 지성인다우며 이 사회를 바람직하게 이끌어가고 있는지를 가늠해 본다.
 그러다가 결국엔 다시 내 자신에게로 돌아와 근래 초미의 화두인 글 쓰는 문제에 귀착한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다운가. 글다운 글을 쓰고 있는가. 시나 소설이 아닌 수필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이 나다운 일이었는가.
 글을 쓰는 사람답기 위하여 그 중에도 수필가답기 위하여 내가 갖추도록 애써야 할 덕목은 어떤 것들일까. 좋은 글 감동적인 수필이 지니는 특성을 생각하다 보면 그 개념이 잡힐 것만 같다.
 
 수수함이 맨 앞줄에 와야 하지 않을까. 빛깔로 말하자면 시선을 한꺼번에 붙잡는 노랑이나 빨강이랄 수 없을 것 같고 오히려 연한 옥색이나 은회색 정도가 될 성 싶다. 세련된 양장보다는 편안하게 차려 입은 한복 맵시라고나 할까.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아름다움과 지닌 향내가 새록새록 은근하게 묻어나는 그런 느낌이면 좋겠다.
 구수함이 그 다음 줄에 서면 어떨까. 된장찌개처럼 텁텁하고 익숙하면서도 물리지 않는 토속적인 맛과 정취가 있는 분위기, 새삼스레 근사한 표현이나 수식이 없어도 한 두 마디 의 재치가 웃음을 자아내는 짜임새라면 좋겠다.
 편안함이 그 다음 줄에 서도 괜찮지 않을까. 유식한 말이나 난삽한 표현이 없어 수월하게 술술 읽혀지는 이야기들. 설거지를 하다가도 불현듯 젖은 손을 앞치마에 훔치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마음이 순화되는 자잘한 소재들이면 좋겠다.
 예리함도 줄에 세워줘야 하리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대자연의 섭리 안에서 이름 모를 작은 들풀 한 포기 생명의 소중함과 골짜기에서 솟는 작은 샘물 한 방울의 의미를 알게 한다면. 쳇바퀴처럼 되풀이되는 삶과 널브러져 있는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어느 아침에 문득 발견한 한 줌의 작은 행복이나 슬픔으로부터 언제 닥칠지 모를 삶의 질곡에서 헤어날 수 있는 지혜와 인내를 끌어낼 줄 알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아함도 함께 해야 되리라. 생활 주변의 이야기나 하찮은 경험이라도 그것에 오래 삭힌 정서의 옷을 입히고 독특한 시각과 정선된 언어의 분을 발라 단아하고 격조 있는 모습으로 차려 내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
 따뜻함 또한 다음에 세워야 하리라. 어떤 글감, 어떤 주제라도 그것이 종국엔 독자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열게 하여 얼음 같은 이성에 봄바람 같은 감성의 우산을 덧씌울 수 있다면 좋겠다.
 역시 진솔함을 가장 으뜸가는 품성으로 자리매김해야 될 것 같다. 드러내고 감추고 그 정도를 잘 절제한, 그러나 사실에 바탕을 둔 에피소드가 중심이 되어 생의 진실한 어떤 국면을 형상화시킬 수 있는 글이라면 얼마나 감동을 줄까.
 
 아니다.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수사의 나열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태준이 《문장강화》에서 지적한 대로 ‘’누구에게 있어서나 수필은 자기의 심적 나체다. 그러니까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라 했으니, 그 빛깔이 노랑이면 어떻고 빨강이면 어떠랴! 단정한 옷고름의 한복이면 어떻고 세련된 모습의 양장이면 또 어떠랴! 사소한 일상사도 좋겠지만 아주 독특하게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얻은 지적 예술적 감동이나 사유의 결실이라면 더 아니 좋으랴! 자신의 벌거벗은 심적 형상을 자기만의 색깔로 자신의 붓 가는 대로 그리면 그만인 것을. 자신을 가장 자기답게 잘 표현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을.
 글을 쓰는 사람, 그것도 기왕이면 단 한 편이라도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수필을 쓰려는 사람답기 위해서는 결국 드러내야 할 자기의 내적인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이 있어야 할지니, 무릇 겸손히 정진하며 이태준의 지적과 맥을 같이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음미해 볼 일이다.
“ 어떤 수필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라.”
 
                                                                                                         《한국수필》 2004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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