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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루미 선데이    
글쓴이 : 신성순    12-05-30 02:35    조회 : 4,086
 
 
 
 
글루미 선데이
신성순
 
 

금방이라도 눈물을 똑 떨어뜨릴 것 같은 목소리가 잿빛 멜로디를 타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가슴으로 흐느적 스며든다. 정신 바짝 차려보지만 나는 시나브로 휘말리고 만다. 시디 플레이어에 있는 스톱 버튼을 누른다. 일순 정적이 흐르는 듯 고요하더니 어느새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내 귓전을 집요하게 맴돈다. 온 몸을 휘감는 우울한 환청이다. 그 노래.
 

우울한 일요일, 시간은 꾸벅꾸벅 흐르고 내 곁을 늘 지켜준 그림자들은 수 없이 많습니다. 작은 흰 꽃들은 결코 당신을 깨우지 못할 겁니다. 슬픔은 마차가 당신을 데려간 곳으로부터.. 천사들은 당신을 되돌려 보낼 생각도 안 하는데 내가 당신 곁으로 간다면 천사들은 화낼까요. 우울한 일요일, 우울한 일요일.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내 마음은 하루 종일을 보냅니다. 이제는 모두 끝내기로 마음을 먹지요. 곧 꽃들이 놓이고 슬피 기도하는 이들이 모일 겁니다. 네, 울지 말라고들 전해주세요. 내가 기쁘게 떠났다는 걸 알려주세요. 죽음은 꿈이 아니지요. 죽어서 당신을 만질 수 있으니까요. 내 마지막 숨결로 그대를 축복할 겁니다. 우울한 일요일. 꿈, 나는 꿈꾸고 있었을 뿐이지요. 이제 깨어나 내 맘 깊은 곳으로부터 당신을 찾습니다. 그대여. 그대가 내 꿈 때문에 아파하지 않길 바라요. 내 마음은 얼마나 내가 당신을 원했는지 말하고 있어요.
(글루미 선데이 가사 전문)
 

헝가리의 피아니스트인 레조 세레스(Rezso Seress)가 1935년에 작곡하였는데 당시 그에겐 사랑하는 여인(헬렌)이 있었다. 왜소한 체구, 유머가 풍부한 사람, 레스토랑 피아노 연주자인 그가 애인에게 버림을 받는다.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곡이 <글루미 선데이> 라는데, 더 기막힌 사연은 이 노래가 레코드 출시 8주 만에 헝가리에서만 1백87명이 자살했고, 전 유럽과 미국에서 수 백 명을 자살로 이끌었다는 설이다. 이 내용을 사실처럼 믿는 사람도 있고 그 곳(헝가리)은 자살 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여서 꾸며낸 이야기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작곡가 레조가 1968년 1월 7일에 이 노래를 틀어놓고 투신자살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어쨌거나 <글루미 선데이>는 '자살의 찬가'라는 닉네임을 얻게 되었으며 독일의 영화감독인 롤프 슈벨이 단조 선율을 전편에 깔고 1939년에 나치 점령지였던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1999년에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제목도 노래와 동명인 〈글루미 선데이〉다. 1988년에 발표된 닉 바르코의 소설 《슬픈 일요일의 노래》와 레조 세레스의 곡을 기막히게 접목시켜 이루어낸 걸작이라 하겠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렇다.
 
 
1999년 가을. 노신사가 헝가리의 한 레스토랑을 찾는다. 무엇을 회상하려는 듯 아련한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본다. 그리고 침울한 표정으로 말한다.
 

" 그 노래를 연주해 주게"
 
 
조용히 음악이 흐른다. 그때 피아노 위에 놓인 한 여자의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갑자기 고통스럽게 가슴을 쥐어뜯으며 쓰러진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이 노래의 저주를 받은 거야. 글루미 선데이의 저주를."
 
 
 
나는 다시 예전에 내 가슴 전부를 휘감았던 멜로디와 목소리에 살며시 나를 띄워놓고 모니터 속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갔다. 노신사의 과거인 60년 전으로 말이다.
 
 
아름다운 일로나(에리카 마로잔)의 모습이 보인다. 부다페스트에서 규모는 작지만 꽤 유명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유태인 자보(조아킴 크롤)의 애인이다. 그곳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사람을 채용하기 위한 인터뷰를 하느라 분주하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 한사람, 얼굴에 고독의 그림자가 가득한 남자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시)를 고용하는데.
 
그의 등장이 서로의 가슴에 아프고 슬프게 다가오는 사랑의 서곡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매혹적인 일로나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홀로 가슴앓이를 한다거나 혹은 독일인 사업가인 한스(벤 베키)처럼 용감하게 청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의 첫 장면을 장식한 노신사가 바로 한스이다.
 
 
공교롭게도 이 날이 일로나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안드라스는 자작곡인 <글루미 선데이>를 선물이라면서 처음으로 연주하게 되는데 일로나 역시 자신도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같은 날 두 남자가 마음을 보이지만 그녀는 한스에게 보기 좋게 딱지를 놓는다. 이런 반응에 그는 몹시 절망하여 급기야 다뉴브 강에서 자살을 기도한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자보가 구해주어 실패로 돌아가지만.
 
한편 안드라스는 일로나와 떨리지만 행복한 밤을 보낸다. 그녀의 마음이 피아니스트에게 서서히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자보는 다음날 돌아 온 애인에게 아프지만 어렵게 결심한 듯한 목소리로 "당신을 다 잃느니 차라리 반쪽이라도 갖겠어"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사랑도 있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자보를 사랑하면서 한편으로는 안드라스와 사랑을 속삭였다. 두 남자에게 있어서는 반쪽 사랑의 딜레마다. 고정된 사고 안에서 헤매고 있는 나의 시각엔 일로나의 행동거지가 아슬아슬하게 비추어질 수밖에 없지만 억지로 이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기대거나 어리광을 부려도 든든하게 받아주어 언제나 마음 편하게 해주는 그(자보)와 연민과 모성심리로 꼭 보듬어 주어야할 것 같은 그(안드라스)를 한 가슴에 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어쨌거나 내면의 갈등은 스스로의 몫으로 묻어둔 채 세 사람은 묘하게도 화합하는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며 생활한다.
 
 
사랑은 그렇게 변칙적으로 흘러가도 레스토랑은 점점 더 활기 있게 번창한다. 이유는 손님들에게 인기가 있어 단골 메뉴가 된 음악 덕분이었다. 마침 그 곳을 방문한 빈의 음반관계자가 그 노래를 듣고 신중하게 취입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아들여 음반이 빅히트를 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속 생기기 시작했고 안드라스에게는 언론의 시선이 집중되면서 그런 반응에 자책을 하며 실의에 빠진다. 두 사람은 그런 그를 위로하기에 여념이 없다.
 
 
한편 독일로 돌아갔던 한스는 장교가 되어 다시 부다페스트에 나타난다. 자신을 구해주었던 자보를 유태인 수용소로 보내려는 음모를 꾸미는데 일로나는 그를 어떻게 해서라도 구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나 싫은 한스의 사무실을 찾아간다. 그녀를 천사라 추켜세우며 키스하려는 한스에게 "아마 천사가 존재한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천사는 꽤 보수적인 것 같아요."라는 말로 거절한다. 결국 자보는 유태인 수용소에 보내진다.
 
 
점점 더 험악해지는 레스토랑의 분위기. 나치의 강요로 일로나가 <글루미 선데이>를 부르던 날 안드라스는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눈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들려주었던 음악, 그녀가 부르는 그 노래를 마지막으로 들으면서 생을 마감한다.
 
 
나는 처음엔 우울한 멜로디에 감금당했고 그 다음엔 노래로 인해 파생된 거짓 혹은 진실로 아직까지 남아있는 무시무시한 자살 설에 섬찟했고 세 번째로는 과감하게 그려놓은 삼각 사랑이 갈등 없이 묘사되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금도 나는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있다. 나를 통째로 삼키려는 마력이 숨어있긴 하지만 단 1초도 자살이라는 것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다만 글자 내면에 담겨있는 음울하다거나 우울하다는 것에서 도망치지 않고 충분히 즐기고 있을 뿐이다.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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