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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신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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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에 아로새겨진 노래    
글쓴이 : 신성순    12-05-30 02:51    조회 : 3,614
 
 
 
 
가슴에 아로새겨진 노래 
 
신성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김소월 <부모> 전문
 
 
 
 

소월 시는 익숙한데 유독 <부모>에 곡이 붙어있어 더 친근하다. 심금을 울려 애창곡이 되기도 하여 부르다 눈물 찔끔 거리게 하는 최루성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어쩐지 고상하게 취급해야 맞을 것 같은 이 시는 흔히 통속적으로 여겨지는 가요와 한 배를 타고 느긋하게 출렁이며 다수의 마음속을 항해하고 있다.
 
 
내가 이 노래에 처음 귀를 기울이게 된 계기는 언니가 결혼 후 아버지 생일로 첫 친정 나들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형부가 동석했고 우리와 그는 또 다른 느낌의 낯설음으로 잔치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먹을 것과 마실 것 앞에서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낯설음도 맥을 못 추는 것인지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가면서 분위기는 서서히 무르익었다.
 
 
남자들 얼굴이 취기에 조금씩 발그래해질 무렵 장인어른이 그 백년손님에게 노래하나 불러보라 청하자 그는 짧게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목청을 가다듬고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 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눈가에 반짝이는 물기. 그는 어느새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숙연해졌다.
 

결혼을 하고서야 어쩌면 자라는 동안 속 썩였을 자신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만큼 키워 준 것에 대한 감사와 아픔 삭히며 사랑으로 보듬었을 부모에게 새삼 느껴지는 미안함이 엄습했을지도 모르겠고. 하여튼 그는 진지하지만 울음이 섞여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끝까지 불렀다. 그로인해 많은 사연이 담겼음직한 이 짧은 시가 내 가슴에 진하게 아로새겨졌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사계 중 가장 긴 밤을 소유한 겨울. 시인은 여인들이 특히 어머니들이 지니고 있는 사연이 책 열권을 써도 모자랄 만큼 많고 많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쌓인 한을, 눈물을 다 쏟아 내야하는데 봄밤인들 견뎌내겠는가, 여름밤인들 적선할 수 있겠는가.
 
 
내 어머니는 그 속내를 조금이라도 알아 줄 대상은 아들보다는 딸이라 생각했는지 이 시 속에 있는 어머니처럼 기회가 되면 뭐라도 말하고 싶어 했다. 그 한숨 섞인 중얼거림은 때로는 곤혹스러움으로 다가왔다. 어떨 땐 해도 해도 풀어지지 않는 갈증이어서인지 이미 들었던 사연들을 마치 처음 해주는 이야기처럼 진지하게 들려주곤 했다.
 
 
이 철 없는 여식은 그 아픔이 어디까지인지 도대체 가늠할 수 없어 '그래, 다 들어드리자' 했다가도 가끔은 '엄마, 그 이야긴 이미 들었어."라는 말로 날카로운 비수를 그 먹먹한 가슴에 꽂기도 하였다. 그것이 또 하나의 찬바람이었는지 도무지 알 턱이 없었다.
 
 
저 짧은 시구 속에 담긴 긴 사연. 시인은 눈물과 한으로 얼룩진 어머니의 가슴을 다독거렸으며 동시에 불효막심한 자식들을 철저하게 채찍질하였다. 더 깊숙히 들어가 보면 내리사랑도 있고 돌고 도는 윤회도 있다. 또 부모에게 받은 은혜 자식에게 배푸는 걸로 갚고, 자식이 저지르는 속 썩임은 내가 부모 되어 받는다는 교훈도 있다. 다른 직설은 겪어보지 않고는 그 속내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까지.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이 짜증 섞인 푸념이 부모의 마음에 얼마나 커다란 눈물샘을 만들어지게 되는지. 그런 반응이 못내 섭섭하기도 하련만 그는 티끌만큼도 내색하지 않고 한숨 속에 묻어버린다.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는 나 때문에 화가 난 어머니의 냉소적인 '너도 이담에 더도 덜도 말고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했던 말을 내가 그 어머니처럼 부모가 되어서 내 아이에게 그 말을 재생하여 '너도 이담에......' 라며 화를 삭히던 내 모습 아니던가. 너무 형이하학적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이 적나라한 비교야말로 가장 쉽게 와 닿지 않을까. /blue
 

*** 《책과 인생》 (범우사,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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