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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안(彼岸)의 절벽    
글쓴이 : 정모에    12-05-30 22:42    조회 : 3,442
피안(彼岸)의 절벽
정모에 
그 길에 내가 서 있었다. 죽일 놈의 인간, 공연히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다. 엽전을 받았기에 점쟁이 할머니는 해결의 책임이 따른다는 걸 염치로 누르고자 애써 강하게 말한 것이다.
부처도 돌아앉는다는 그 길에 해는 서산에 걸터앉아 있고 내 마음에 노을도 저물어갔다. 반쪽이 변해가고 있었다. 가을녘 잘 익은 홍시감이 맥없이 떨어져 개똥 위에 철퍼덕 뭉게져버린 것처럼, 안방을 같이 쓰던 사람은 향이 강한 아라미스 스킨을 곱빼기나 발라댔다. 자신이 변해가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라나? 여자. 여자. 무엇보다도 자존심이 병을 가져왔다.
식어가는 사랑의 막다른 골목에는 멈춤과 묵언이라는 무기를 외면한 채 미움과 질투는 날이 갈수록 가슴을 짓누르며 피안의 절벽으로 날 데리고 가 선택을 요구했다. ‘어느 쪽이냐?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에서 나는 윷의 빽도를 집었다. 내가 행했던 가장 우매한 짓은 낯선 할머니 집을 찾아간 것이다. 눈감기를 선택 한 후, 해결사 악역을 엽전과 함께 할머니께 부탁하고선 내 발걸음은 이성을 잃은 채 죄책감으로 시달리면서도 이혼만은 노~우 였다. 들어오라는 방은 너무 무서웠다. 울긋불긋 크고 작은 동상과 T.V 화면에서만 보던 기괴한 물건들.
“왜 뭐가 잘 안 풀려?” 그 물음 떨어지자 난 모두 일러바쳤다. 조그만 상 위에 쌀 몇 알 굴리며 할아버지를 부른다. 곰 재주에 떼놈 돈 벌고, 난 낯설은 이방인의 방에서 두 무릎 꿇고 돌아오라 빌었다. 걱정 말라며 “이런 건 일도 아니여” 하더니 할머니는 비방이라며 발길 잦은 땅속깊이 묻으라면서 내용물은 보지도 말라 하기에, 늦은밤 놀이터 농구대 밑에 오래된 스텐수저 하나 무기 삼아 땅을 파고 또 파며 묻고 못할 짓에 치를 떨며 두 발로 지신밟기에 용을 썼다. 누구 보는 사람은 없겠지? 그러나 내 양심의 소리는 “넌 네가 아니구나” 그 소리는 환청이 되어 술래처럼 뒤따라왔다. “오죽하면 의붓아버지를 아버지 아버지” 했겠냐며 흘리듯 하시던 엄마의 명언 한마디가 생각나며 그날의 일을 스스로 변명했었지. 마음은 내일이면 끝나겠지 하면서도 몸은 으슬으슬 추워졌다.
그곳은 갈 때마다 동네할머니들의 마실 방이 된다. 가끔 굿을 하고 떡이며 음식들을 이웃들과 할머니들에게 나누다 보니 비좁은 곳에서도 모이게 되고 안면 있는 할머니들은 “아직도 해결 안됐어?” 하시며 모두가 한마디씩 한다.
누군들 그 일 한 번 안 겪남? 아, 눈감아 줘 하는 분, 구관이 명관이여! 하는 노인. 아니, 자네도 맞장떠버려 라며 말을 많이 하는 욕쟁이 할머니.
논쟁은 끝이 없고 나는 지쳐만 갔다. 님은 점점 남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허허로운 발걸음으로 길을 헤매고 다니던 날 다투고 갈 곳이 없어 그곳엘 갔다. 할머니 집.
지하방인 길가 집 창가에 다가가 “나 왔어요, 할머니. 문 좀 열어주세요. 화들짝 놀라며 이 밤중에 웬일이냐며 반겨 주시던 그 분. 갈 때면 항상 새로 지은 된장찌개에 따뜻한 밥, 물김치가 전부인 밥상머리에 두 무릎을 세우면 얼굴까지 닿던 그 왜소한 모습. 그대로 밥을 잡숫곤 했다. 에미야, 많이 먹어라. 정이 참 많았다.
“하룻밤만 재워주세요. 갈 데가 없어요.” “또 안 들어 왔드나?” “아니요. 들어왔어요.” 할머니는 한숨 쉬며 나무젓가락처럼 가느다랗고 긴 장미라는 이름의 담배 한 개비를 급히 입으로 가져갔다. 그날 밤, 할머니는 요 자리 두 개를 펴서 마주보며 손잡고 내 등을 쉼 없이 다독거려 주었다. 나의 외할머니처럼......
“그런데 할머니, 왜 이렇게 안 맞아? 벌써 두 달 짼데......” 갑자기 일어나 앉으며 기죽은 목소리가 되어,
“에미야, 미안하다. 네가 준 돈으로 방 사글세 내고 큰 아들 놈이 손벌려 뺏기고.” 나이 73살에 이 노릇도 못 해먹겠다며 맥빠진 노인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니한테만 얘긴데, 나 요즘 점발이 안 맞어.” 할아버지가 뭐가 삐졌는지 안 가르쳐 준단다. “니 내말 믿지마라, 에미야. 나 다른 일이라도 해봐야겠다만 이 나이에 뭘 할 수 있겠냐.” 그는 점쟁이 할머니가 아닌 동네할머니로 돌아와 있었다.
주객이 전도되어 할머니가 팔자타령에 두 다리 뻗고 울며, “아이고 아이고 여자로 태어난 게 죄~여! 죄~여!. 그칠 기미가 없어 이번엔 내가 할머니를 안고 등을 연신 다독거려 주었다. “난, 괞찮아 할머니.” 점을 보았다는 죄책감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날은 패트를 찍은 듯 나를 투명인간으로 만들 때, 다시금 그 날의 실수를 어김없이 떠올리게 하였다. 그렇다고 해결된 것은 없었고 실망과 미움과 배신감에 자신의 한계를 굴복하며 삶에 버거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난 점점 낮아지는 걸 조금씩 배웠다. 어리석음은 한 가정을 깰 수 있는 지경에까지 와서야 이것도 인생에는 한 점 밖엔 안 되겠지 하며 참고, 눈물 흘린 만큼, 가슴쳤던 만큼, 억울했던 만큼, 미워했던 만큼, 증오했던 만큼 보따리에 싸서 미로에 묻어버렸다. 삶은 자신이 성격에 맞춰 선택하는 공의로운 저울같다. 조율할 지혜를 가지며 삶의 굴곡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 자기를 위한 아픔의 처방을 스스로 할 줄 알 때까진 세월과 상처는 더불어 갔다. 사랑도 한 때, 질투도 한 때, 아직도 남아있는 애증. 한번쯤은 고인이 된 당신께 침전된 내상처의 허물을 짚고 넘어가고 싶었네요. 소인과 여자는 가까이하면 교만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더니 “세월이 가면 내맘 알끼다. 내는 당신뿐이다” 라던 당신, 난,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다는 걸 후회하네요.
오늘도 변명 한마디 없는 빈 하늘엔 아직은 겨울바람이 매섭다. 야산에는 설중매가 피어 홍매화는 눈, 이불을 덮었다는데 그곳도 봄은 오고 있겠지. 
                                                                                                                                          201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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