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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숯가마    
글쓴이 : 김데보라    12-06-04 07:57    조회 : 5,302
숯가마


<<계간수필>> 2006년 5/6월호



불꽃의 춤사위가 황홀하다. 평상에 앉아서 오만 색채를 뿜어내는 가마 속의 불꽃에 도취한 그때이다. 머리를 삭발한 채 늘 가마 앞에서 불을 쬐던 남자. 얼굴이 울퉁불퉁 물집이 잡히고 거무스름해 피부병으로 고생하는구나, 짐작만 했었다. 그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넨 후 말문을 연다.

"…제가 신종 폐암에 걸렸어요. 온몸에 퍼졌으니 몇 달 후 아니 곧 죽을 수도 있다 했지요…매일 이곳에 와 몸을 태울 정도로 숯불을 쬐며 찜질을 했죠. 어제 씨티 촬영을 했답니다. 작은 암 덩어리들은 사라졌고 폐에 붙었던 큰 것이 아주 작아졌데요. 기적이야! 의사마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더군요."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퍼진 암 덩어리가 거의 사라졌다니! 자신이 더 놀랐겠지. 가끔가다 얼굴만 스쳤을 뿐인데 암과의 사투를 내게 털어놓을 만큼 기뻤던 게다. 누구라도 붙잡고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퇴촌에 이사와서 참숯가마를 알았다. 알러지에 효력이 있다고 해서 이곳을 일주일에 한 두 차례 다닌다. 처음엔 고온 방이니 꽃방은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관절염이며 아토피성 피부염을 치료받은 이들의 주고받는 대화를 귀동냥해서 들었다. 그때부터다. 꽃방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뻐근하던 오른쪽 어깨며 요통이 치료되었다.

"툭 툭 투둑" 막았던 벽돌을 깨트리면 황토 숯가마가 열리고 화려한 불꽃 쇼가 펼쳐진다. "저 불꽃 좀 봐요. 세상에나,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가마에서 온갖 색채로 타오르는 불꽃이 장관을 이룬다. 불 앞에 동그랗게 모여 앉은 사람들은 그 현란한 춤사위를 바라보며 마음도 순화시키고. 백내장을 예방한다니 눈도 크게 떠보는 거다.

숯가마는 나무를 태워서 숯을 만드는 곳이다. 타는 숯과 결합한 황토 가마는 원적외선을 다량 방출하는데, 제습 능력이 뛰어난 이 숯가마에 들어가 찜질하는 게 웰빙(well-being)이란다. 숯을 빼내고 난 가마는 내부 온도가 1200-1300℃가 된다. 하루가 지나면 개방되는 이방에 들어가면 몸에 빨간 반점이 생기는데 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꽃탕'이라 부른다.

세포조직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져서 세포가 부활하는 숯가마찜질. 꽃방을 들어서면 열기가 '훅'하니 온몸을 덮는다. 맨몸일 땐 머리카락이 탄다. 두터운 타월로 머리 꼭대기부터 뒤집어쓰고 들어가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사십 이상은 불가능하다. 뜨거워서 빨리나와야 하니까. 언제부터인가. 확실치는 않다. 기분일지도 모른다. 이곳엘 들어갔다 나오면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하나로 뚫린 느낌이다. 머리가 맑아지면서 죽은 세포가 벌떡 벌떡 살아 움직이는 듯 하다고나 할까.

나무를 넣어서 가마에 구워낸 검은 덩어리. 즉 재가 되기 이전의 탄소덩어리를 숯이라 한다. 혈액과 체내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이것은 예부터 중요한 존재였다. 신선하고 힘이 좋다는 뜻을 가졌고. 방취, 방독, 원예, 난방이나 음식 조리용으로 쓰였다. 화력이 좋은 참나무, 그 중에서도 굴참나무 숯을 으뜸으로 친다.

숯은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어 우리 몸의 자연 치유능력을 강화시킨다. 첫째는 습기제거와 방부제 역할을 하는 다공성이다. 손마디 정도의 숯은 테니스 코트 장 넓이의 내부 표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구멍이 작고 많을수록 좋은 목탄이다. 미생물의 주거공간이 될 수 있는 이 구멍은 세균과 냄새를 흡착시키는 작용을 한다. 간장이나 된장을 담글 때나 금줄에 숯을 다는 것도 이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둘째는 음(-)이온을 공급하는 것이다. 산소가 풍부한 숯은 공기를 맑게 하고 모든 생명체의 활동을 돕는다. 그 한 예로 냉장고에서 나는 악취는 미생물이 번식하여 가스를 발산하기 때문인데 숯을 넣어두면 이 냄새를 잡아준다. 숯에 기생하는 미생물과 숯이 내뿜는 음이온의 효과로 악취도 사라지는 것이다.

셋째, 숯에는 미네랄이 풍부하다. 80%가 탄소인 숯의 나머지 20%는 미네랄로 구성되었다. 나무는 토양에서 천연미네랄을 빨아올린다. 그 나무를 태운 것이 숯이니 미네랄이 다량 농축된 이것을 우리 몸에 투입시키면 인체에 부족했던 비타민이 채워지는 것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먹고사는 수준을 넘어서 '잘먹고 잘사는 법'에 눈을 돌렸다. 티브이에서 연일 먹거리며 <비타민>이라는 프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웰빙이 최대 관심사가 된 것이다. 행복과 복지를 추구하는 삶, 웰빙! 방송사마다 음식만이 건강을 책임지는 듯해 귀가 다 따갑다. 육신의 배만 채운다면 인간이 동물과 그 무엇이 다를까.

숯가마에서 조우한 사나이는 승승장구 일만하며 살았단다. 그 일에 지쳐서 암세포가 몸에 둥지를 튼 건 아닐까? 현대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다는 희귀한 질병이 증가추세 일로다. 그래서 자연요법이나 대체의학이 부상하는가 보다. 웰빙 바람을 타고 부활한 참숯가마는 진정 축복이리라.
 
 삭신이 쑤시면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서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몸을 지지던 전통생활방식. 몸이 탈것만 같은 가마 안에서 "아, 시원하다! 아, 좋구나!" 탄성을 발하는 사람들. 그 민족만의 독특한 습성이 아닌가. 아울러 타오르는 불꽃에 취할 수 있으니 이 맛을 그 무엇에 비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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