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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를 파낸 그 자리에    
글쓴이 : 김데보라    12-06-04 08:00    조회 : 4,370

분노를 파낸 그 자리에
 
<<책과 인생>> 발표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처럼 어려운 건 없다. 욕망을 버리고 악한 본성을 죽이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 이긴 자만이 내면의 평화를 얻게 된다.

김기덕이 각본과 감독 그리고 편집과 출연을 겸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인터넷을 통해 감상할 수 있었다. 한국영화를 타국에서 인터넷으로 볼 수 있으니 세상이 많이 발달된 게다. 동자승이 노승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사계절로 비유한 이 영화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만난다.

산사에 봄이 찾아왔다. 동자승은 숲에서 잡은 개구리와 뱀, 물고기에게 돌을 매달아 괴롭히며 놀이에 빠져든다. 그것을 멀찍이 지켜보던 노승은 잠이 든 아이의 등에 돌을 묶어두었다.

"스님, 왜 등에 돌을 붙였어요?" 하며 잠이 깬 아이는 울먹인다. 노승은 개구리, 물고기, 뱀에게 그리하였으니 "하나라도 죽어있으면 평생동안 그 돌을 마음에 지니고 살 것"이라 말한다. 그 뜻이 무엇인지 아는 듯 죽어 있는 뱀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울어대는 동자승. 살생의 업이란다. 어린 날엔 아무생각도 없이 벌레를 잡아서 죽이는 것이 재미있었다. 메뚜기, 개구리를 잡으면 구워서 먹었고, 무심코 살생을 저질렀던 놀이들이 그토록 큰 죄이던가.

태양이 뜨거운 여름이다. 동자승은 17세 소년이 되었고 암자로 요양을 온 소녀와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암자를 떠난 소녀. 그녀를 따라간 소년은 십 여년이 지난 가을 어느 날, 아내를 살해하고 암자로 도망쳐온다. 배신한 아내를 죽이고도 분을 풀지 못하는 사내! 울분을 견디다 못해 불상 앞에서 자살을 시도, 애증과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를 노승은 모질게도 때린다. 그런 후 '반야심경'을 바닥에 써놓고 "글자를 한자씩 파면서 분노를 마음에서 지워라!" 한다. 글자를 열심히 파고 있는 사내를 잡으려고 형사 둘이 찾아왔다. 그들의 감시를 받으며 '심경'(心經)을 다 파내고 난 사내는 곤한 잠에 빠져든다.

 
분노를 뽑아내고 나니 기진맥진해진 걸까. 날이 밝자 사내를 깨운 노승은 형사들과 함께 그를 떠나보낸 뒤 고요한 산사에서 다비식을 치른다. 불교의 이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끝내는 것도 일종의 살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김기덕이 직접 열연한 중년의 사내가 폐허가 된 암자로 돌아왔다. 노승의 사리를 수습해 얼음불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날을 심신수련으로 내면의 평화를 구하며 보낸다. 그런 어느 날이다. 이름 모를 여인이 찾아와 사내아이를 남겨두고 떠난다.

다시 봄이 돌아왔다. 산사에 기거하는 노인은 평화롭다. 개구리와 뱀의 입속에 돌맹이를 집어넣고 웃음을 터트리는 동자승! 새로운 인생의 사계가 펼쳐진다.
사계절이 순환하는 고요한 호수 위의 암자다. 노승과 동자승을 주인공으로 하여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린, 사물을 단순하게 바라본 김기덕 감독의 영상예술의 극치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를 눈으로 보는 듯 했다.

노승의 말은 곱씹어 볼만큼 의미심장하다.

"사람을 죽이는 풀이 있고 사람을 살리는 풀이 있어!"
"사랑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인을 낳아!"
"속세가 많이 괴로웠나 보다."
"가진 것을 놓아야 하는 때가 있느니라."
"쉽게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쉽게 죽일 수는 없어!"

인간은 누구나 악한 본성을 버리고 파내고 비우는 자기훈련이 필요하다. 옥이나 돌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칼과 줄로 자르고 다듬어야 그 가치를 빛낸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의 성격과 정신의 모난 부분들이 있다. 그 인격을 절차탁마하면 누구든 쓸만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의 글자를 파내며 분노를 지우는 사내의 모습이 나라 여겨졌다. 가슴 밑바닥 앙금처럼 가라앉은 분노, 원한, 미움이 내게 남아있던가! 실핏줄처럼 온몸에 퍼진 그 뿌리 끝까지 파내야 하리라. 그리고 패인 그 자리에 아름다운 색채를 입히고 싶다. 노랑, 파랑, 연두, 보라, 분홍, 녹두, 하늘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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