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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공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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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유희    
글쓴이 : 공인영    12-06-23 15:13    조회 : 3,957



 슬픈 유희
 
                                                                  

  열대 나무가 손 흔드는 형편없는 도로를 몇 시간씩 달려 이국의 바다를 만났다. 그리고 심해의 용이 흰 포말로 달겨드는 물살을 가르며 섬들을 돌아다녔다. 물길이 너무 깊어 물고기들이 수면 가까이 올라오지 못한다는 곳엔 지나가는 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텅 빈 바다 위로 어디선가 길 잃은 나비 한마리가 날아들었다. 곧 태양 속으로 빨려들 것 같은 기운 없는 날갯짓을 보며 출렁이는 한쪽 어깨를 내어주고 싶은 마음 참 간절했다.
  전쟁의 부산물 같은 심야의 유흥가도 기웃거리고 도시마다 녹아있는 삶의 표정들을 구경하며 이제는 부조화의 조화처럼 물질적 빈곤과 정신적 여유가 쓸쓸하게 어울리는 나라, 태국을 돌아다녔다. 일년 내내 습하고 더운 나라에서 재밌고도 눅눅한 추억이 늘어간 대신 가방 속의 쓸데없는 몇 가지는 버려야 했다.
  여행은 돈만 드는 게 아니라 힘도 든다. 며칠간의 빡빡한 일정으로 그 피곤을 짐작한 가이드가 미리 예약했다며 데려간 곳은 뜻밖에 마사지를 받는 곳이었다.
  여행지가 어디든 그곳의 문화는 가능한 한 체험해 보라기에 따라나섰지만 어색한 우리 표정은 말하지 않아도 알 만했으니, 어쩌면 그게 우리가 지닌 인식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2층은 깨끗한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자리마다 흰 가운이 놓여 있었다. 쭈뼛거리며 일행이 옷을 갈아입자 주름 진 커튼을 젖히고 안마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조용히 무릎을 꿇어 코앞까지 바짝 당겨 앉는데 순간 부끄러움이 몸속으로 좌악 퍼져나간다. 아, 이제는 물릴 수도 없고 이를 어쩐담.
  내 쪽으로는 나이가 좀 들어 뵈는 아주머니가 오고, 남편 앞엔 젊은 아가씨가 마주하니 슬쩍 훔쳐보는 그의 표정이 잠깐 당황스러운 듯 했다.
  발끝부터 문지르며 시작된 마사지는 몸의 길을 따라 조금씩 천천히 옮겨 다녔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뭉치고 지친 곳을 찾아내는 손길이 섬세하고 한결같았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마사지인 만큼 절대 친절과 서비스로 준비된 자리다. 안마사의 숙련된 기술이 슬슬 효력을 나타내는 걸까. 처음엔 마음이 하나도 열리지 않아 아프기만 하던 몸이 어느 새 기막힌 손놀림에 긴장도 풀리고 다시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만 목이 메어왔다.
‘세상에! 누군가는 또 이렇게도 사는구나.' 

  자꾸 눈앞이 뿌예지는 통에 화장실을 핑계 대고 나와 거울 앞에서 눈물 콧물을 찍어냈다. 아직도 손님을 기다릴 수십 명의 안마사들, 혹시 그들과 처음 닿던 시선에 짧게라도 업신여김은 없었는지.
  월급이 있다지만 관광객에게 따로 받는 팁은 정해진 단돈 3달러. 3달러에 이렇게 왕처럼 대접받는 경우가 그리 흔할까. 그보다 훨씬 많은 남편의 월급을 고스란히 받아쓰면서도 난 얼마나 귀하게 받들며 감사해 보았던가. 아이들에겐 존경과 사랑을 넘치도록 강요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그 이상을 베풀었던가. 거울 속의 여자는 한참이나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와 또 한참.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몸 위로 기대게 하더니 두 팔을 뒤로 틀어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으로 긴 시간을 마무리했다. 땀을 닦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자 또 한번 후회로 울컥거렸다.
 '힘드셨죠? ' 하고 묻자 얼굴마저 빨갛게 달아오른 채 아직도 숨을 고르며 '네, 쪼큼 ' 하고 서툰 우리말로 대답했다. 그 말에 주저 없이 뒤 돌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어리둥절해 하는 그녀를 강제로 돌려 앉히다시피 한 후, 아이들만도 못한 손힘이지만 정성껏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손끝에 닿아있는 몸이 놀란 듯 움찔거렸다. 어깨를 토닥이며 ‘잠시 만요' 하고는 좀더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하지만 그래선 안될 것처럼 그녀는 얼른 돌아앉아 붉어진 눈시울로 조용히 웃어주었다. 그리고 잠깐 동안, 고개 숙여 인사하던 우리 사이에 무언가 말없이 흘러가고 흘러온 듯했다.
  작은 감사의 표시라도 하고 싶어 서둘러 지갑을 열었지만 3달러 말고는 좀 전에 풀었던 손때 묻은 액세서리만 달그락거렸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결국 그것조차도 건네지 못했다. 달랑 3달러만 챙겨 들고 나온 지갑이 그 순간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사람이 이 세상 어느 곳에 태어나든 소중하고 귀한 존재임엔 틀림없다. 다만 그 나라마다의 형편 탓에, 어쩌면 운명 같은 팔자 탓에 누구는 온몸으로 서비스를 하고 누구는 그 서비스를 한껏 누렸다. 그저 두 번도 다시 못할 관광 상품 하나쯤으로 기억 속에 묻히겠지만 왠지 마음이 아려왔다.
  어디, 사는 일이 여기만 그러겠는가. 내 사는 곳으로 돌아가도 다르지 않겠지.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지고 이기심도 끝을 모르는 세상에 와 있질 않은가.
  이 시대의 그림자로 지하철 계단에 엎드린 이들에게 동전 몇 닢 놓는 일. 전철 안을 오가는 장애인들의 허룸한 물건 몇 개 사주는 일로 어설픈 양심을 위안하며 살기 일쑤다. 그런데 여행 중 이 뜻밖의 경험이 삶의 부끄럽고 습관적인 것들을 하나씩 꺼내보게 했다. 그리고 마음 안의 헛된 것들을 경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이름도 묻지 못한 그 초로의 안마사. 아기처럼 맑던 태국 여인의 구릿빛 미소는 그 눈부신 손길과 함께 내 몸에서 오래도록 그러나 조금은 슬픈 유희로 기억될 것이다. 산다는 것은 어디서든 눈물겹다./          
                                           < 범우사 '책과 인생'2005/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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