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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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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5노재선    
글쓴이 : 노재선    12-07-06 01:53    조회 : 3,636
1865 노 재 선
노재선
중학교 때 부터 여고 졸업 할 때까지 나의 출석번호는 32,29,19,24,12...이다. 물론 키 순서다. 질서는 어디서든 있어야 하는데 그것에 도우미 역할을 해 주는 것은 그때마다 달라지는 번호가 아닐 듯싶다. 공연티켓, 승용차, 아파트홋수, 핸드폰번호 헬스클럽의 옷장열쇠 디지털 방식으로 숫자만 누르면 열리는 우리 집 대문 등. 그것들은 내가 존재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다가, 잊혀지지만 흔적은 남는다. 내가 남기고 또 남겨 두어야할 많은 숫자들. 왠지 숙연해지기도 하면서 기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태어났지만 어김없이 다시 본향으로 간다. 겨울이 가면 새봄이 오고. 다시 초록의 여름이 온다. 지구가 돌고 계절도 순회하지만 인간 모두는 유한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성이 아직 정립되기도 전 교회당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라고 하는 곡을 들으며 이상한 전율을 느꼈다. 무심히 흘려보낸 10여년의 세월 뒤에 운명처럼 내게 그분이 다가 왔다. 내가 돌아 가야할 본향을 가르쳐 주신 분. 그분을 인정하기엔 너무 어렸던 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자신감으로 나는 충실히 살았고, 바른길 만을 갔으며, 누구에게도 손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간간히 고통을 받으며 살았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가 깊어질수록 군중 속의 외로움. 이유 없이 밀려드는 삶의 권태감.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 뻔도 했고, 탐욕의세월 에서 오는 상실감이 가끔 회오리바람처럼 나를 누를 때 껍질을 벗으며 하나씩 닥아 오는 번민은 내가 파놓은 우물 속의 그림자였다. 나는 미래의 내 모습에 소스라쳤고, 흑암 같은 어둠 속에서 떨어야만 했다. 내가 계획하고 바라는 것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냉정한 세상이 내 앞에 우뚝 서 있었고, 대책 없는 머릿속은 혼돈이었다. 침몰해 오는 나의 꿈과 이상은 없음(無)으로 각인되어 마른 잎처럼 시들 때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했다. 생명의 근원인 뿌리를, 내가 왜 세상에 있어야 하는지 알고 싶어졌다.
오래 전에 들려오던 교회의 곡조들이 머릿속에 오버랩 되면서 막혔던 장 속의 굳어있던 오물들이 조금씩 눈물로 녹아 나오는 듯했다.
요단강. 스쳐가는 바람을 볼 수 없고,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공기도 만질 수는 없지만,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해 주시는 그분. 내가 아무리 계획 하여도 때에 맞게 이루게 해 주시는 분. 의심 많은 나에게 기다림이라는 말로 인내하게 해주시고, 과학으로 발달된 세상의 이치도 천재지변 그 앞에선 누구라도 무능하게 만드시는 분. 나는 그분을 확실히 만났다. 그리고 사랑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용기이고, 지혜롭다는 것에 스스로 대견해 하면서.
그렇게 나는 선택 받아 살아 올 수가 있었음에 감사한다. 그분을 만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중년의 세월이지만 이젠 애써 비껴 가야할 필요도 없다. 받은 것이 너무 많아 행복한 나는 그 분을 위해서 이제는 남은 삶을 드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고 나누고 봉사 할 수 있는 기회를 알차게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1865번 노재선. 이것은 군번도, 학번도, 그렇다고 죄수복에 새겨진 가슴 아픈 뜻도 없다. 그분이 내게 주시며 지경(地境)을 넓히라고 하신 영광스러운 번호이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는 수많은 교우들이 있다. 영혼의 갈급함. 내적인 상처를 치유 받아야 될 사람들. 집단적 이기주의로 피폐 되어 가고 있는 무리들. 물질의 풍요로움 뒤에 남는 허망함. 움켜잡고 있는 욕심. 내려놓아야 될 체념.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욕망의 늪. 마음하나 바꾸어 먹으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을.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그들을 위해 나 자신부터 나를 사랑하라 하시며 마음 깊은 곳에 잠재된 쓴 뿌리의 고통을 내려놓으라 하셨다. 용서란 말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만의 특권이다. 그분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그렇게 하라시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 용서 할 줄 모른다. 그 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나는 약속된 미래를 확인 할 수 있었고, 평안을 얻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야할 이유를 알았다. ‘권사’라는 직분을 받은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번호. 얼굴 보다 숫자로 기억될 나만의 고유번호. 나를 택하시어 나로 하여금 이웃에게도 함께 공유하라신다. 이렇게 질서있게 명령 하시는 분. 그분을 다시 만나게 될 그 때에 나는 뭐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내게만 주신1865번으로 살았던 세상 살만했었고 행복했었노라고 그렇게 말하며 포근히 보듬을 수 있게 되리라 믿으며 오늘도 해와 달의 비췸이 쓸데없는 오직 그분의 영광만으로도 밝은 그곳으로 가신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하얀 국화 꽃 속에서 환하게 웃으시는 님들의 영정들 앞에서 나도 조용히 미소를 띄운다. 1865 노 재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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