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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유적지    
글쓴이 : 문영휘    12-07-14 11:41    조회 : 4,047
 공자의 유적지 
                                                         문  영  휘
   조용히 비행기 창가에 몸을 담고 하늘 길 따라 한시간 정도 새들의 깃 하나 달지 않고
날아가서 4박5일간의 주요 역사문화의 흔적을 찾아 첫 발길이 닿은 곳은 중국 산동성 청도
(靑島: 칭다오) 공항이었다. 오전 10:30분 경 우리 일행 부부가족 10명은 비즈니스용 15인승
승합차를 타고 시내에 들려서 청도의 해안 관광을 마치고 바로 공자의 유적지를 찾았다. 
 
  공자의 가족관계
  공자의 조상은 송나라 왕실의 후손이지만 가족은 행복하지 못했다. 아버지 숙량흘은 첫
번째 부인은 아들이 없었고 둘째 부인에게는 아들은 얻었으나 다리 불구에다 일찍 죽었다.
세 번째 부인은 나이 60세에 16세의 소녀 안(顔)씨 징재(徵在)를 맞이하여 겨우 아들 공자
를 얻었다. 그러나  공자가 3살 때 그만 세상을 떠났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모자간에 간
신히 뜻을 맞추어 공부를 하는 공자는 17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19
세 때 노나라의 위리(委吏)란 창고직 말단공무원이 되었다. 그해에 다행이 변관(辨官)씨의
따님을 만나 장가를 들었고 1년만에 옥동자를 낳았다. 이후 학문에 뜻을 두고 공인으로 덕
(德)과 도(道)를 통해서 성실을 다하면서 윗사람의 인정을 받고 승승장구하여 50세가 넘을
무렵 대사구(大司寇: 법무부 장관급)가 되어 재상의 직무도 맡아서 세사(世事)에 임하며 지도
자의 길을 걸었다.
 
 공자의 유적보기
 산동성 소재 제남에서 다음날 아침 2시간 30분을 달려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 취푸)를 찾
았다. 이곳은 주(周)나라 후반기 춘추시대 제후국 노(魯)나라의 수도로 번영을 누리던 곳이
기도 했지만 위대한 유가 학설의 창시자인 공자의 고향이며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
하다.‘1987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
린다. 인구 60만을 조금 넘기고 있는 그곳에 들어가는 톨게이트 입구에 우리 일행을 보고는
어서 오라고 맞이하는 글귀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내용은‘벗이 있어 스스로 멀리서 찾아오
니 역시 즐겁지 않겠느냐!’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란 것이다. 유적지는 크게 3곳으로 나누어
져 있는데 공묘와 공부와 공림이다.
 공묘(孔廟)는 역대 왕이 공자에게 제사지내던 첫 번째 사당(祠堂)이다. 기원전 478년에 처
음 3간 짜리 소박한 작은집을 세워서 공자가 살던 집을 크게 사당으로 고쳤다. 노(魯)나라의
애공이 세운 것이다. 공자가 사망한 1년 뒤에 세워졌으니 그 역사는 마치 2500여 년에 이른
다. 그후 중국 역대 통치자 황제들마다 제사를 지내며 공묘 치장하기에 덕(德)을 쌓아가며
수십 차례의 증축을 거쳐 당나라 때 기본적인 규모를 형성했고 명, 청 대에 이르러 현대의
규모 466간을 갖추게 되었다. 남북방향의 길이가 1km. 정도다. 지금은 중국의 3대 고대건물
중 하나다.
  공묘 내에서 제일 큰 대성전(大成殿)은 경내에서 대표적인 건축물로 왕이 직접 공자에게
제사를 드리던 곳이다. 높이 25m. 폭 46m. 면적 1.200m2 (350평)에 이른다. 대성전 내부에
는 거대한 공자 상이 모셔져 있으며 좌우로 사배(四配: 쓰페이)라고 불리는 4명의 현인 즉 안

자, 증자, 자사, 맹자의 상이 함께 놓여 있었다. 대성전 앞에 용이 구비치며 하늘에 오르는
조각(彫刻) 석재기둥은 다른 고대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드물고 희귀한 것이었다. 기타
볼거리로는 규문각(糾問閣: 죄를 엄하게 묻는곳). 성적전(聖蹟殿). 13비석, 정자, 행단(杏壇),  등
이 있다. 그리고 이 공묘는 세계에서 건축된 2000여개 공묘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역사
가 오래된 곳이기에 키네스북에도 등재되어있다. 이곳에서 한국 퇴계학의 계승자 모임인 박
약회(博約會) 등 유림들도 공자탄생 기념일에 제식(祭式=치전(致奠)에 제물과 제문을 가지고
의식을 올렸고 우리도 이번 방문에서 함께 몸을 가다듬고 예를 갖추었다.
  공부(孔府)는 공자가문의 직계 적 장손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명, 청 시기의 황실 외에 가
장 큰 저택으로 공무를 겸하는 곳이며 공자의 46대손 공종원을 연성공으로 봉하면서 연성공
부(衍聖公府)라고 하였는데 내부에는 동, 서, 중로로 건물 군(群)을 이루는데 동로에는 가족
사당이 있고, 서로에는 연성공의 서재와 손님 응접하는 사랑방이, 중로는 공부의 중심건축물
로서 앞부분은 연성공이 공무를 보던 3당 6청이 있었으며 뒤쪽은 화원으로 구성되어있다.
  공자의 족보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라는 별칭을 가지고 
현재는 직계 93-94세손까지 이어져 오고있다고 한다.
 
  공림(孔林)은 1,5km 정도 떨어져있는 공자묘(墓) 중심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씨족 묘라고
하지만 가까운 제자들의 묘도 함께 있었으며 송백, 측백나무 등 고목이 하늘을 찌를 듯 높
이 솟아있었고 주위를 애워사고 있는 담벽의 총 길이는 7.3km로 둘러 싸여있었다. 우리는
전동차를 타고 깊숙이 들어가서 간신히 공자묘(墓)를 보았다. 높이 6.2m의 봉분에 낙타 등
모양으로 돌기해 있다고 하나 유관으로는 크기와 형태가 그렇게 분별이 되지 않았다.
  공자묘 바로 앞에는 비석이 있었는데 표제에는 대성지성문선왕묘(大成至聖文宣王墓) 라고
세겨져 있었다. 그 내용은 선인들의 다양한 학문을 집대성하여 가장 성스러운 새로운 학문
을 널리 편 왕의 묘라는 뜻이며 왕이 내린 시호(諡號)라고 한다. 명나라 때 세워진 것이다. 
  
  공자묘 바로 앞 동쪽 에 있는 묘는 아들 공리(孔鯉)의 묘이다. 죽어서도 옆에서 부모를 모
시는 효자로 인식되었다. 공자를 추모하는 이벤트행사로는 매년 9월 28일(양력) 탄생일에 맞
추어 9월 26일부터 10월 10일까지 열리는 문화제는 제례 의식과 함께 문화 교류와 예술공연
등이 열리고 국제 공자문화제로 발돋움하여 추모하고 있다고 한다.
  일정을 마치고 이곳 묘 앞에서 우리 일행은 함께 고개 숙여 묵념을 하였다. 공자의 유지
를 되새겨 보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되돌아오는 순간 뒤에서 등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자네들은 나의 짱이야’ 라고 공자는 말하며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해 하며 당부하는 말
씀은‘너희들은 무슨 일을 하면서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성내지 말라’는 이야기 었
다. 즉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성내지 않는다면 역시 군자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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