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사과
전동차 안을 둘러보면 온통 스마트폰과 열애 중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는 그들 틈새에 앉아 아날로그적인 내 손전화를 누가 볼 새라 쑤셔 넣는다.
나도 이참에 신기술의 혁명에 동참하고 싶다. 우리 가족 네 명 가운데 셋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뚜껑을 열어젖히는 휴대전화를 쓰고 있다. 두 딸과 남편이 ‘카카오 톡’을 하며 갖고 노는 스마트폰은 꽤나 매력적이며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관능의 사과, 지식의 열매를 얻어 자신의 이미지로 변환시킨 창업자의 상상력이 놀랍다.
잡스 신드롬은 얼마나 오래 갈까? 가을바람과 함께 스티브 잡스는 떠났다.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자신의 상징으로 각인시킨 뒤 냉정한 철인의 모습으로,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기 이전 태곳적 시대로 돌아갔다.
그는 강연할 때마다 ‘One More (Little) Thing’이라고 말한 뒤 끝을 맺었다 한다. 그가 이승에서 끝내 토해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 한 가지란 어디에 있는 걸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다음세대가 이어가야 할 ‘애플의 어떤 것’이라고도 하고, 제 상상력이 채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려는 일종의 암시였다고도 말한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스마트폰을 문지르는 작은 딸에게 “너는 스티브 잡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우리나라 기업과 법정싸움을 하는 게 싫어서 그렇단다. 그래야 할 필요가 있으니 그런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더니 부속품은 대개 우리 거 아니냐고 되묻는다. 부속 때문에 싸우는 거 아니지 않느냐 했더니 “상품이란 게 결국 베끼기 전쟁인데 양쪽 모두에게 상처 주는 거잖아.” 하고 말을 끊는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서로 상처뿐인 이익 싸움, 탐욕과 권력에의 의지가 이상을 향하는 인간의 꿈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건 아닐까. 열여덟 살짜리 아이의 대답을 듣고 ‘상처’가 우리에게 뭘 남기는지를 누군가는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
흔히 음식을 만들고 메뉴를 개발하는 사람은 기본에 충실하란 말을 많이 한다. 맛을 내는 일, 낭비하거나 함부로 버리지 않는 일, 재료와 그릇, 사물과 사람간의 상호작용, 손님과 주인이 관계를 잘 맺는 일 등.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초심으로 돌아가는 일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늘 높이 매달린 사과만 눈에 들어오는 건 왜일까.
나는 근래에 밀가루 반죽을 하던 여인이 탁자 위의 전화벨이 울리자 살짝 손바람을 일으켜 전화를 받는 설정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작은 진동에 의한 스마트 터치! 이제 IT세상은 너무나 스마트해서 터치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닥쳐온 것 같다. 이러다간 앞으로 눈 깜빡임만으로, 혹은 상상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닌지. 터치가 필요 없는 세상, 그것은 진정 이상향으로 가는 지름길일까.
잡스는 가고 그가 베어 문 사과 한 알만이 식탁 위에 남았다. 아이폰을 쓰고 있는 큰 애는 오로지 멋 때문에 애플을 샀다고 실토했다. 검정 터틀넥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 형식을 거부하는 옷차림, 키 크고 잘생긴 그와 얼마나 잘 어울리며 편한 복장인가. 상상과 발견,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려는 인간의 기술이 두렵기도 하지만, 자기의 사고만은 절대 바뀌지 않길 열망하던 잡스의 외모를 읽다보면 자유롭다 못해 차라리 슬퍼 보이기까지 한다.
감성과 지식의 열매를 한입 깨물어 먹고 후련했을 잡스의 업적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사과의 왼쪽을 베어 물(아님 다 먹어치우거나) 다른 사람의 잇자국이 나타날 것이란 생각이 드는 건 또 왜일까. 한쪽만 베어 상처를 낸 그 모양이 어째 불안해 보인다.
그는 이제 사랑하는 가족 품에서 떠나갔다. 가장 인간적인 것을 만드는 기술이란 무엇인가. 잡스에게 ‘아이팟’은 진정 자신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기와도 같은 존재였을까. 암과 사투를 벌이면서 그가 계속해서 말하고자 했던 “한 가지 더”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과연 정답은 있는 걸까.
이 거리는 스마트폰을 즐기고 뉴 밸런스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로 넘친다. 기계에 함몰되고 영상에 길든다. 편안함을 디자인하려는 그 유혹의 터치와 손놀림 속에서, 문득 신과 인간의 중간 지점에 서있을 사과나무 한 그루를 떠올린다. 작은 아이의 말처럼 서로에게 상처만 안겨줄 뿐인 그 싸움을 끝내야 한다는 데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온통 ‘내 눈에 사과’뿐인 세상이다.
- <한국 산문> 2012년 2월호 -
*이 글 발표하고 바로 스마트 폰으로 바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