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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쪽 마늘    
글쓴이 : 송경미    12-08-01 06:27    조회 : 4,203
육쪽 마늘
 
 반쯤 썩고 쭈글쭈글 말라버린 마늘을 깠다. 이 빠진 할머니 볼처럼 쑥 들어간 마늘 목에 벌써 새싹이 나왔으니 이제 마늘이랄 수도 없다. 설날 가져온 박스 안에 두어 달이나 방치했다가 봄맞이 대청소를 한답시고 열어보니 그 모양이다. 동분서주 나돌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또 이럴 줄 알았다.
 한 번 빠진 이가 새로 나지 않고 진액이 말라 채워지지 않는 노인네 근육처럼 된 마늘이라도 아래쪽만은 유독 단단하고 불룩하다. 그것은 엄마의 자궁을 점령한 아기라도 되는 냥 당당하게 마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새싹의 몸체다. 처음엔 작아서 있는지도 모르고 보이지도 않던 녀석이 엄마 몸을 자기 천지처럼 야금야금 점령해서는 이내 자기 방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다가 자기 몸이 있게 한 마늘쪽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새로운 육쪽 마늘이 된다. 껍데기는 사라져 간다. 하긴 그래야만 산다.
 이미 진이 빠져 수분과 영양분이 날아가고 싹이 나버린 마늘의 스펀지 같은 속살은 찧기도 힘들고 애써 찧어봐야 먹을 것도 별로 없다. 모든 것을 다 내주어 푸석해진 피부와 쭈그러진 마늘의 살은 친정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엄마 생각을 하며 뿌리 쪽을 잘라 알뜰살뜰 살을 발라 모은다.
 
 우리는 육남매다. 육쪽 마늘처럼 쪽 고르게 나서 자랐고 고만고만하게 산다. 누가 누구를 걱정할 것도 없이 자기 분수대로 열심히 산다. 명절이면 엄마는 현관에 여섯 개의 커다란 박스를 늘어놓고 계속 무엇인가를 던져 넣는다. 참기름, 볶은 깨, 양파, 마늘, 꾸들꾸들 말린 생선, 김, 미역, 멸치, 마른나물, 고추 가루 등등.
 기본은 같아도 박스안의 내용물이 다 같지는 않다. 큰사위는 홍어, 둘째사위는 참 꼬막, 큰아들은 육회, 식성 따라 골고루 준비하듯이 박스는 자식들의 조금씩 다른 취향을 반영한다. 내 박스 안에는 특별히 모시 개떡과 올벼쌀이 들어있다. 우리는 으레 맡겨둔 짐을 찾아가는 손님처럼 차에 박스를 싣고 온다. 매번 가져오지만 끝까지 잘 먹지 못하고 반은 버리는 게 다반사다.
 사시사철 택배로 날아오는 고구마, 감자, 각종 과일, 늙은 호박, 심지어 갖가지 푸성귀와 깐 마늘, 찧어서 냉동시킨 마늘까지 끝까지 알뜰하게 먹어본 적이 없는 나는 자꾸 엄마에게 보내지 말라고만 한다. 그리고 동생들에게도 미리 보내지 말고 필요하다고 할 때 보내주라고 한다. 바삐 지내다가 썩고 말라 비틀어져 내버리기 일쑤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 꼭두새벽에 걸려온 전화에 소스라쳤다. 친정아버지께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간다는 막내의 전화였다. 소파에 주저앉아 마음을 진정시키지도 못 한 사이 또 전화벨이 울린다. 유난히 크게 울리는 벨 소리에 떨리는 손으로 받으니 엄마다. 아버지가 정신이 드시는 것 같으니 내려올 것 없다고 하신다. 응급실로 실려 가는 구급차 안에서도 딸이 먼 길 나서기 전에 말리느라고 전화를 한 것이다.
 3년 전 친구 분들과 등산하고 내려오시는 길에 심근경색이 왔던 아버지는 스텐트라는 시술을 받고 건강하게 지내오셨다. 그런데 ‘4분이 생사를 가른다.’는 심장이 또 문제라니 나는 정신이 아뜩하기만 한데 그 상황에도 딸에게 오지 말라는 전화를 하고 있다니...
 응급조치를 받고 이번에는 아버지가 전화를 했다.
“아빠 인제 암시랑토 않다. 괜찮해. 내려오지 말어.”
평소와 같은 씩씩하고 다정한 목소리에 다소 안심이 되어 천천히 내려가기로 하고 쿵쾅대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막상 내려가니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놓을 줄을 모른다. 아직도 손끝에선 놀란 마음이 전해오는데 내려오지 말라고만 한 엄마의 마음이 더 시리고 아프다. 내가 내려가지 않았어도 하나도 서운해 하지 않았을 엄마 마음이다. 그저 자식이 불편할까봐 지척에 부부가 의사인 작은 아들을 두고도 출근 시간인데 복잡하다고 덜 바쁜 막내에게 연락을 하셨다고 한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의사 아들은 뒀다 어디 쓰려고 그러느냐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다음 날 정밀 검사를 마치고 의사선생님의 괜찮다는 확인이 끝나고서야 엄마랑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좋아하시는 생선회에 매운탕을 사드리니 맛있게 드신다. 이렇게 맘 편히 밥 한 그릇 드시는 걸 보려고 내려온 것이다.
 
 엄마는 첫째인 내게 유난히 독한 마늘 맛이었다. 엄마의 매운 잔소리는 타이름이 아니라 비수처럼 아프고 강해 마음에 상처가 되기도 했다. 이제 나는 마늘이 몸에 좋은 것을 알고 썩은 곳을 도려내며 아까워하는데 엄마는 쭈그러진 마늘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썩어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육쪽 마늘의 여섯 쪽처럼 자란 우리 남매들은 엄마 마음을 얼마나 받아 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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