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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미 두 자루    
글쓴이 : 송경미    12-08-01 06:28    조회 : 4,504
호미 두 자루
 
 서너 평이나 될까. 방 한 가운데에 널찍한 앉은뱅이 책상과 귀퉁이에 자리한 반닫이, 벽에 걸린 파란색 두루마기가 전부다. 바닥에서부터 쌓아 올려진 <<토지>>를 빼면 영락없는 시골 할머니의 방, 현대적인 문명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이라고는 없다. 통영의 박경리문학관에 재현되어 있는 그녀의 원주서실(原州書室)이다.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윗목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투박하고 펑퍼짐한 오지항아리인데 호미 한 자루가 걸려있는 항아리 입구는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얹어 덮어두었다. 옆에 놓인 여분의 호미 한 자루와 함께 주인의 삶을 대변하는 서실의 표정을 완성하는 중요한 소품이다. 그녀는 글을 쓰다가 막히면 밭에 나가 밭일을 했다고 한다. 탐스런 고추가 주렁주렁 달린 밭에서 활짝 웃고 있는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진지한 모습과 함께 가장 잘 알려진 모습이다. 그녀의 서실 앞에 한참이나 서 있었다.
 
 어릴 적 나는 매일 아침저녁 할머니를 찾으러 밭으로 나갔다. 내가 밭 귀퉁이에서 손을 나팔처럼 하고 “할머니이~~!”하면 밭을 매던 할머니는 주춤주춤 허리를 펴고는 흙 묻은 손을 치마에 닦고 내 손을 잡고 집으로 왔다. 박경리도 외손주들이 밭으로 와서 할머니를 찾으면 활짝 웃는 얼굴로 “아이구, 내 강아지!”하며 반겼겠지... 그녀가 흙 묻은 손을 몸빼바지에 닦고 고사리 같은 손주들 손을 잡고 소박한 서실로 돌아오는 모습에 할머니와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할머니는 1919년 나주 임(任)씨 집안에서 나고 자라 열여섯 살에 시집을 왔다. 일제시대였고 할아버지는 공무원이어서 다른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 시어른들을 봉양하며 본댁을 지켜야만 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스물일곱 살에 아들 둘을 둔 과부가 되었다. 세 번째로 태어난 딸은 낳자마자 죽었다고 한다.
 박경리는 1926년에 태어나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곧 결혼하였다. 1950년에 남편은 좌익으로 몰려 총살을 당하고 스물다섯 살에 과부가 되었다. 이어 어린 아들마저 죽었으니 당시의 고통과 불행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깊은 것이었겠지만 작가로서의 그녀를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글을 쓰다가 막힐 때면 바느질과 농사일을 즐겼고 사람은 직접 손을 놀려 다양한 일을 해야 창의성이 생긴다고 말해왔다. 그녀는 또, “생각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또 배제합니다.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세요. 자기 자신과 마주앉아 보세요. 내게 누군가 고독해서 어찌 혼자 사냐고 묻습니다. 그럴 때 나는 대답할 바를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밭매기와 바느질은 일이 아니라 생각하기 위한 시간이었으며 자신의 문학적 천착이었다.
 황진이는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잘라 이불 밑에 넣었다가 고운님과 보내고 싶다고 읊었지만 할머니에게는 그런 님도 없었다. 박경리에게는 문학이 있었지만 할머니는 겨우 보통학교 문턱을 밟은 시골 아낙이었다. 그러나 내 할머니에게도 생각이 있었고 책으로 쓰면 몇 권이나 될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펜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와도 나누기 어려웠던 속마음을 땅에다 털어 놓고 거짓 없는 땅의 소출을 그의 응답으로 삼지 않았을까. 할머니가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은 땅이었다. 할머니가 가꾸는 너른 밭은 동네의 어느 밭과도 비교할 수 없이 기름지고 윤기 나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언제 주무시는지 궁금했다. 할머니는 내가 잠들 때도 일하고 깨어났을 때도 벌써 일을 하고 있었다. 겨울이면 초저녁에 일꾼은 밤새 할머니가 새끼줄을 꼴 수 있도록 짚을 잘 다듬어 할머니 방에 들여놓아야 했다. 밤새 ‘싸악싸악’ 손바닥을 비비며 새끼줄을 꼬기도 하고 콩이나 녹두 같은 곡식들을 한 줌씩 널찍한 상 위에 올려놓고 잘 여물지 않은 것들을 고르기도 했다. 내게는 그 소리가 자장가였다.
 젊었을 적에 할머니가 필사했다는 <츈향뎐>이나 <심쳥뎐>같은 소설책들이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오십 대의 할머니는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다. 내게는 책을 소리 내어 읽으라거나 군대 간 삼촌에게 편지를 쓰게 하면서 그저 밤잠도 밀어두고 무엇인가를 손으로 만지고 다듬다가 새벽녘에 희끄무레한 빛이 비치면 밭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 많은 밤들을 지새우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면벽 수도하는 스님처럼 무념무상을 꿈꾸었을까. 말이 적고 웃는 모습이 예뻤던 단아한 할머니는 머리만 깎으면 승복이 아니어도 진짜 비구니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수도복을 입지 않은 수도자.
 어릴 적 친정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나이가 겨우 한 살 많은 처녀를 새어머니로 맞아 시집을 올 때까지 동생들을 돌보면 지냈으니 결혼생활만은 평탄하고 행복했어야 했다. 아내를 애지중지하였으며 신학문을 접하여 첼로를 연주하던 멋쟁이 남편과의 신혼시절도 시어른들 봉양하느라 떨어져 지내는 날이 많았다. 너무 일찍 떠나버린 남편과 림보(죄 없는 영혼이 머무는 곳)에 갔을 낳자마자 잃은 딸, 더 엄하게 다루면서 남부끄럽지 않게 키워야 했던 아들 둘, 밤낮을 바꿔가며 국군과 공산군에게 집과 먹을 것을 제공해야 했던 일 등, 할머니의 삶은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이 딱 맞을 일들로 점철되어 있다.
 
 박경리문학관에서 만난 호미 두 자루는 즉각적으로 내 할머니의 삶을 떠올려 주었다. 만년의 할머니는 참 복 많은 노인이라고 부러움을 샀고 잘 차려입고 외출하는 날도 많았었다. 그런데도 할머니의 다른 모습은 떠오르지 않고 바구니에 호미 두 자루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밭을 매던 모습만 생생하다. 그 모습이 가장 할머니답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던가 보다.
 나도 호미 두 자루를 가지고 있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서 손에 잡히지도 않는 작은 풀들을 뽑아내며 할머니와 박경리가 느꼈을 그 몰아의 평화를 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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