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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조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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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합 미역국    
글쓴이 : 조헌    12-11-04 10:48    조회 : 4,862
 
홍합 미역국

                                                                      조      헌

 통영(統營)의 쪽빛바다는 눈부셨고, 사정없이 내려 쪼이는 여름햇살은 등줄기를 훅훅 볶았다. 항구 전체를 다 뒤져 어렵사리 찾아 낸 꽃집에는 생화(生花)라곤 국화 두 다발이 전부였다. 그나마 감지덕지 얼른 값을 치르고 받아 든 꽃묶음에선 때 이른 국화향이 진동했다.
 대개의 항구가 그렇듯 호리병같이 잘록하게 들어와 둥글게 펼쳐진 통영항은 활기가 넘쳤다. 통통거리며 들고나는 고깃배의 엔진소리와 ‘사이소! 사가이소!’를 외치는 어시장 아낙의 쉰 목소리엔 비릿한 갯내음이 물씬 풍겼고, 언덕을 향해 그물처럼 뒤엉킨 골목길마다 힘겹지만 끈덕진 바닷가 삶이 물감처럼 번져있었다.
 제법 큰 어선 몇 척이 출항을 준비하는지 뭉게구름 사이로 흰 연기를 내 뿜었다. 축축 쳐지는 무더위 속에서도 펄펄 살아 숨 쉬는 항구를 뒤로한 채, 나는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묘소를 찾아 미륵도로 향했다.

 내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981년 늦봄이었다. 「토지」3부를 완성하고 강원도 원주로 자리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단구동 댁으로 찾아 간 적이 있었다.
 대학 시절 수강했던 과목 중, 생존 작가 한사람을 스스로 선택해 작품을 모두 읽고 작가론을 써 발표하는 강좌가 있었다. 발표가 끝나면 담당교수께선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는데, 만난 후 그 면담후기(面談後記)까지 제출해야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선택한 작가가 박경리 선생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힘겨운 개인사 ― 부모의 이혼, 6?25 동란 속 남편의 죽음, 어린 아들의 돌연사, 사위 김지하의 수감생활 그리고 유신시대의 핍박까지 주어진 시대 속에서 겪어야했던 수많은 고통들을 단 한 번도 순순히 비켜가지 못하고 질풍 같던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모질게 견디며 살았던 선생께선 덩그러니 빈 집에 혼자 계셨다.
 이미 예고된 방문이어선지 저녁때가 다 되어 도착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토지 4, 5부를 쓰기 위해 거의 외부와 단절하고 지내던 시절이었지만, 사람이 그리우셨던 겐지 조용조용 길게 이어지는 말씀은 마냥 정겨웠고 외갓집에나 온 듯 푸근함마저 느껴졌다.
 “마른 홍합이 조금 남았을 텐데....... 소고기 미역국은 서울 와서 처음 알았지. 내 고향 통영선 홍합을 넣고 미역국을 끓여요. 조갯살을 넣기도 하지만, 국물 맛이 시원하고 갯내가 일품인 것은 홍합이 제격이지.” 날이 저물자 하룻밤 묵어 갈 것을 권하며 식사를 준비하는 선생님의 눈빛엔 고향의 푸른 바다가 당장이라도 보이는 듯 그윽함이 가득했다.

 “혹시 대한민국에서 잘 사는 방법 알아요?” 손수 지은 밥과 국으로 저녁식사를 마칠 때쯤 선생님은 느닷없이 내게 물었고, 바로 이어 “나라에서 하지 말란 일만 골라서 엇나가면 잘 살 수 있어요. 소를 기르라고 야단이 나면 돼지를 치고, 콩 심으라고 법석을 떨면 팥을 뿌리면 돼요! 다 지난 얘기지만 6?25사변 당시 한강다리만은 절대 끊지 않을 거라는 라디오방송이 나오고 있는데도 다리를 끊어버린 나라가 이 나란데 말해 뭐 해요.” 뜬금없는 물음과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입안엣 소리로 중얼거리며 깜깜한 창밖을 내다보셨다.

 감당하기 힘들만큼 줄줄이 달려드는 아픔과 좌절을 <불신시대>, <암흑시대> 그리고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토지>등에 등장하는 비극적 운명의 여인들로 풀어내며 견딘 작가로서 사회에 대해 이 정도 날선 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내게 글쓰기는 어릴 적엔 외로움을 달래주던 친구였고, 노모와 어린 딸을 부양하며 살았던 시절엔 절실한 밥벌이였어요.”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촌부로 살고 싶었던 소박한 꿈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실상 몸서리쳐지는 불행의 늪에서 위험과 공포를 껴안고 살았다며 이젠 뇌리 저편에 꼬깃꼬깃 접혀져 기억조차 희미하다는 지난 일들을 자정이 넘도록 소상히 들려주었다.
 그리고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다며, 겨울밤 호수에 나가보면 매서운 날씨 탓에 호수전체가 꽁꽁 얼어도 오리가 있는 곳은 얼지 않는데 그건 오리들이 끊임없이 날개를 퍼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밤을 꼬박 새워가며 고된 날개 짓을 멈추지 않는 오리들처럼 우리의 생존도 만만치 않은 거라면서 “그래선지 난 여태껏 ‘글쓴다’는 말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어요. 언제나 ‘일한다’고 했지요.” 가슴은 먹먹했지만 꽤나 진지한 시간이었다.
 “문학공부 열심히 해봐요. 그럴 만한 가치는 분명 있어요.” 다음 날 아침, 떠나는 내 등을 도닥이며 선생께선 거듭 간곡하게 일렀다.

 어느 평론가의 극찬대로 ‘중화학공장 100개보다 더 한국인의 정신적 GNP를 높였다.’는 <토지>의 작가! 아울러 한국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렇듯 아주 사적(私的)이고 따뜻했기에 더욱 더 소중히 기억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물론 그 후, 작품으로밖엔 선생님을 다시 만나진 못했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과 집념, 그리고 끝내 일궈낸 문학적 성과는 지금까지도 내게 감동어린 울림으로 크게 남아있다.

 선생님의 묘소는 단출했다. 깔끔하게 지어진 기념관을 돌아 아기자기 꾸며진 꽃밭 길을 오르면 묘소가 나타났다. 생각보다 소박한 봉분. ‘박경리’ 석자만 새겨진 까만 묘비, 그리고 작은 상석이 전부인 묘소는 따가운 여름 햇살 속에 한껏 고즈넉했다.
 일부러 심은 것 같은 십여 그루의 감나무가 뺑 둘러 묘소를 지키고 있다. 나는 마련해온 국화꽃을 올리며 삶이 문학이 되고 문학이 삶이 되어 보냈던 선생의 일생과 거친 운명 속에서도 단단한 성취를 이룬 그 분의 삶을 되짚어보며 깊은 상념에 빠졌다. 그리고 한동안을 감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혔다.
 이때 문득 좋은 향기가 코를 스쳤다. 둘러보니 꽃길 가득 온통 치자나무였다. 철지난 꽃 몇 송이가 가늘게 부는 바람에 흔들렸다. 달콤한 듯 싱그럽지만 맡고 있으면 알싸한 그리움이 콧마루를 거쳐 가슴에 고이는 치자꽃 향기를 맡으며 기억 속 선생님의 엄정한 모습과 따듯한 음성을 오랫동안 추억했다. 그리고 이젠 그토록 신산(辛酸)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부디 영면(永眠)하시길 간절히 기원했다.

 멀리 산양읍 신전리 앞 남해바다가 햇살에 반짝였다. 불현듯 선생님이 끓여주셨던 홍합 미역국이 생각났다. 그리고 국 냄비를 뒤져 홍합 몇 개를 더 건져 내 국그릇에 얹어주시며 어서 많이 먹으라고 눈을 찡긋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내내 지워지지 않아 하늘의 뭉게구름을 한참이나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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