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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다는 것은    
글쓴이 : 공인영    12-11-04 17:45    조회 : 4,197
사라진다는 것은
 
 
 
 
   꽝꽝, 우지끈, 쨍그랑, 와장창 ...
제법 오랜 날을 예고하더니 마침내 철거를 시작했다. 원 주민들은 턱없는 보상에도 한숨만 지으며 떠나갔고 오히려 몇 몇 세입자들만 남아 악착같이 요구를 보태는 중이라고 그곳을 떠나 큰길가에 운 좋게 가게를 연 미용실 여주인이 말했다. 길은 뭉개지고 주저앉다 만 담벼락엔 붉은 글씨들로 어지럽지만 그들의 항변이란 어디까지나 쓸데없는 짓에 불과한 거라고들 했다.
  도대체 보상이란 무엇을 잣대로 값을 쳐주는 걸까.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는 일은 변화와 발전의 당연한 순서겠지만 떠난 이들이 새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받아든 돈에다 턱없는 만큼을 더 보태야 한다고 했다. 건물 한 동을 막아 끝까지 대처하던 사람들의 외침은 펄럭이는 깃발을 닮아 있었다.
   온종일 틀어놓은 투쟁가는 적지 않은 소음이었다. 두통처럼 괴로우면서도 그렇다고 외면도 못하는 반 푼짜리 양심 탓에 자꾸 열어놓은 창문이나 닫으며 찡그리고 돌아서는 게 고작이었다. 누군가 힘겹게 외치는 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는 미덕이 과연 이 사회에 얼마나 남아 있을까. 못 참겠던 어느 날 동사무소에 항의라도 할 듯 전화기까지 들었다 놨다 한 걸 보면 나 역시도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저들 것보다 더 쑤시는 모양이었다.
  오래 된 집들이 따개비마냥 붙은 그 동네를 지금껏 다닌 유일한 이유는 근처에 은행이 거기뿐이기 때문이었다. 기찻길에 시골 풍경까지 남아있어 좋다고 이사를 오고 보니 근린 시설도 그렇고 은행도 변변치 못했다. 그렇다고 차를 타고 먼저 살던 곳까지 나가자니 번거로워 마지못해 낯선 동네라도 가로지르며 다니는 중이었다.
  늘 가던 길인데도 이날은 왠지 발목도 삐끗거리고 걸음도 우스꽝스러웠다. 이름만 남은 동네 안엔 기계 차와 몇 몇 인부들만 눈에 띄었다. 온기가 사라진 집들이 뒤통수를 얻어맞으며 맥없이 엎어졌고 뻥 뚫린 집터 위로는 오랫동안 숨었던 하늘이 거대한 몸짓으로 팔을 벌리고 있었다. 그 푸른 공간 위로 불쑥 어릴 적 살던 동네 하나가 덩달아 고개를 들었다. 거기도 그랬겠지.......
  세월의 무게로 납작하게 들러붙은 곳.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서도 기꺼이 추억으로 손짓하던 곳. 갈 때마다 자꾸 가늘어지는 골목길이 신기해 웃으면서도 보물지도처럼 늘 궁금하던 곳. 아이들 키우느라 한동안 접었다가 못 견딘 어느 날 남편을 졸라 찾아간 거기에 아, 더 이상 남은 건 없었다.
  재주도 좋지, 그 높은 언덕들을 몽땅 깎으며 동네 몇 개를 푹 퍼내버렸다. 그 자리에 미끈하게 빠진 아파트를 맞춤형으로 앉히면서 기억 속의 입구조차 막아버렸다. 무언가 통째로 도려낸 듯 뻥 뚫린 가슴 속으로 눈물이 차오르던 그날, 나라는 존재의 밑바닥에 다시는 닿을 수 없을 것같은 서글픔으로 한동안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도 시간은 냉정하게 흘러 그 슬픔과 원망마저 또 잊어간다. 그뿐이냐 오히려 번듯한 아파트 족이 되어 다시 그렇게 사라지는 곳과 마주하고 있는 걸.
 
  동네 하나가 사라진다. 한 세월을 증명해 온 풍경들이 흙먼지로 날린다. 기둥만 남은 빈터엔 이삿짐에 딸려가지 못한 살림과 볼 것 못 볼 것 다 섞인 쓰레기들로 어지럽다. 도대체 우리 삶의 어디서부터 저렇게 많은 것들이 매달린 걸까. 못 견디면 다시 또 버릴 욕심으로나 남는 것들을.
  하기야 지난날의 가난과 불행을 죄다 버리고 몽땅 새 것들로 채우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겐들 없으랴. 누군가는 그걸 꿈과 희망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욕심이라고도 했다. 이 거리를 활보하며 아침을 열던 골목 안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생성과 소멸이야 우주의 법칙이다. 그 안의 한낱 점으로도 보이지 않을 아주 작은 동네에서 벌어지는 흔해빠진 일들은 관심꺼리도 못된다. 그런데도 이 사라진다는 느낌이 생각보다 간단하질 않다. 소중했던 어린 시절이 송두리째 잘려나간 그날의 쓸쓸함처럼, 여기 살던 사람들의 오래된 삶의 이야기들이 흙 속에 영원히 묻혀버린다는 게 슬그머니 허무해지는 것이다.
  혹 우리가 삶에 그렇게 애착하는 진짜 이유를 저 ‘유한(有限)’에서 건져낼 수만 있다면 생의 끝에 남을 쓰레기라도 좀 더 줄이고 갈 수는 있을까.
 
 
                                                                                     수필과 비평 <2009. 3/4월호> , <선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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