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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장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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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년운수    
글쓴이 : 장정옥    13-01-03 06:52    조회 : 4,916
신년운수
 
 
 
                                                                                                                    장정옥
 
  다가오는 신년은 운수대길 하리란 염원을 담고 목욕재계沐浴齋戒하러 친구와 사우나를 찾았다. 요즘 사우나는 휴게실과 별별스런 탕, 그리고 종류별 방들이 많다. 소금, 약쑥, 유황, 한증막을 거쳐 우린 황토방에 들어갔다. 이젠 뜨끈뜨끈한 것이 점점 좋아진다며 뜨거운 바닥에 몸을 붙였다. 온 몸이 나른함으로 늘어지고 옆에서는 한 무더기 이야기꽃이 피었다. 남의 얘기 엿듣는 것이 재미중의 하나라 귀를 기울이는데 마침 운세 이야기다.
 
  얼음이 동동 뜬 음료들을 앞에 놓고 있던 한 무리 중 유독 목소리가 걸쭉한 여인이 자기 점괘에 대해 말하며 지난 일을 모두 알아맞히는 어떤 보살이 가장 영험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순서 없이 뒤섞인 경험담을 쏟아낼 때마다 점점 목소리는 커져만 갔고 싫증이 날 즈음 급기야 한쪽 구석에서 “거 조용히 좀 합시다.” 라는 소리에 쏟아지던 추임새와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그리고 그 구석에서 한 여인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바로 청담보살이요”
  친구와 나는 토스터속의 다 구워진 빵처럼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보통 사람과는 약간 다른 특유의 직선적이면서 명령조 같은 음률을 띄고 있었다. 그 여인은 속칭 자기만의 점치는 비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인은 사업과 진학, 진로 등 점괘로 유명세를 떨쳤고 특히 아들 점지해주는 보살로 2010년 초까지 청담동에서 유명했단다. 그녀는 손님이 오면 수첩에 이름과 방문한 연월일시를 간단한 사연과 함께 적어 놓는단다. 그리고 자신이 끼적여(그녀의 표현)주는 부적을 소중히 간수하라며 보낸다고 했다. 물론 복채는 부르는 게 값이었지만 예약 없이는 만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손님이 많았던 이유 아니, 비밀을 말해 주었다.
  그녀 말대로 아들을 낳은 사람은 영험하다고 저절로 소문을 낼 것이니 생각 할 필요도 없다. 단 분명 아들을 낳을 것이라 말했는데 딸을 낳은 사람은 십중팔구 다시 찾아 와 항의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지난번 왔던 일시와 이름이 적힌 수첩을 내 보이면서 이렇게 말한단다. “당신이 왔던 그날(수첩의 적힌 날짜를 말하며) 점괘는 딸인데 도저히 딸을 낳을 것이라 말할 수 없어서 이렇게 적어 놓았소. 다음은 분명 아들인데 지금 맘을 다스리지 못하면 아들 운이 나갈 것이요.”
  운이 달아날 것이라는 말에 항의하려던 손님은 자신이 왔던 날짜까지 기억하며 달래주는 그 보살에게 대꾸는커녕 두둑한 복채를 놓고 돌아간다고 했다.
  다른 문제해결도 거의 동일 수법(?)이라는 말과 함께 이젠 아들 찾는 젊은 사람들이 적어졌고 일도 불황이라 그만 두었다고 했다. 덧붙여 그래도 점집에 가고 싶냐 물었다.
  그 뒤로도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우리는 더 이상 듣지 못했다. 황토방이 너무 더워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인이 진짜 보살인지 또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아득한 심정으로 찾아 간 사람들의 소망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그것. 바로 운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운을 갈망하며 얻고자 한다. 특히 지금처럼 연말이 다가오면 신년 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다. 고단한 한해를 보낸 사람은 벗어날 수 있는 운을, 수월하게 보낸 사람은 더 좋은 운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운을 쫓는다는 건 연약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다.
  그렇다면 운은 언제 찾아오는 것일까.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자유로운 의욕을 잃어서는 안 된다. 운명이 인간 활동의 절반을 주제한다고 해도 적어도 나머지 절반은 우리의 지배에 맡겨있다.”(25장) 이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명언처럼 하늘이 내리는 운이 분명 있지만 동시에 땅위에서의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사업을 시작했다. 신년운세를 보니 새해 들어 사업 운이 좋아 뭘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일을 벌였다. 집을 처분하고 친가는 물론 처가에서도 자금을 빌려다 판을 벌였다. 왜? 운이 좋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급기야 다음 해에 파산이 났다. 억울한 그는 점쟁이를 찾아가 따지고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망해버린 다음인 것을.
  홍성원은 소설 <<남과북>>에서 사업 운이 좋다는 말만 믿고 있다가는 거덜 나기 십상이라며 분주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노력이 없다면 운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아질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운은 바라는 자의 노력이 더해질 때에야 비로소 성취된다는 해석이다.
 
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물질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렇지 돌이켜보면 우리는 모두가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아침이면 따뜻한 이불 속에서 눈을 뜨는 것이 얼마나 큰 대운인가.
  몸이 불편하여 누워만 있다면 백억 로또 일등에 당첨되는 것이 불운이다.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며 오백 원짜리 자판기 커피한잔 마시는 사람이 더 운 좋은 사람 아닐까.
  오늘도 우리는 참 운 좋은 시간을 보냈다. 길을 걷다가 넘어지지 않았고 지인들을 만나 즐거운 담소와 함께 배불리 맛난 음식도 먹었다.
  이 얼마나 황홀한 운의 릴레이인가!
  두 발로 뛰며 열심히 살아도 운이 안 따라 준다고 실망할 일도 아니다. 이미 달릴 수 있는 운을 받았기 때문이다. 운이 조금 늦게 찾아오는 것에 조바심 낼 필요도 없다. 언젠가 운이 찾아 올 것임을 알고만 있으면 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대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이 떠오른다.
  운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고 알고 있다면 내 운이 언제일지는 신들린 점쟁이도 모른다.
  다가오는 신년에 운수대통하려면 오늘 받은 운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노력만 할일이다.
 
 
 
 
 
 
2013년 1월호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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