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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면 눈물 먼저 나는 이름의    
글쓴이 : 공인영    13-01-08 23:10    조회 : 5,171
부르면 눈물 먼저 나는 이름의
 
 
 
 
여름은 기쁨이나 슬픔에 더 예민해지는 계절 같다.
요즘, 더위에 익어가는 삶을 껴안느라 뒷전이던 한 사람이 자꾸 생각난다.
어머니는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 베란다 화초의 마른 잎들을 떼 내고 시원하게 물이라도
뿌려주고 계실까. 아니면 또 어느 자식의 고달픔 때문에 새벽부터 닳고 닳은 묵주 알을 굴리고 계실까.
 꽃들을 유난히 좋아하고 또 키우는 재주가 놀라운 당신. 손만 닿으면 시름시름하던 것들도 다시 곳곳하게 허리를 펴니 결코 재주만으로 되는 게 아니지 싶어 항상 부러운 것 중의 하나다.
 어머니라는 주름진 이름 앞에 자주 생각이 고이는 걸 보면 이제 나도 나이를 먹는가 보다. 마냥 젊고 곱던 내 어머니가 칠순을 넘기고서야 무언가 곧 놓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지나간 기억들을 뒤지고 다닌다.
 
 어린 날의 정서란 얼마나 소중하던가. 비록 넉넉하진 않아도 어머니는 평화롭고 따뜻한 기운으로 늘 집안을 채우셨다. 당신의 헤진 옷 팔꿈치에 털실로 뱅뱅 똬리를 틀고 깁고 꿰맨 자리가 늘어간 만큼 우리들의 어린 시절은 편안하고 행복했다.
가정방문을 다녀간 담임선생님 편지에도 모양새 좋고 당당해서 있는 집 아이인 줄 착각했다며 잠시라도 그러그러한 생각을 한 게 부끄럽다고 했다. 그리고 직접 키워서 주신 달걀 한 줄 눈물겹게 받고 감사히 먹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엄마의 소박한 사랑 표현은 모르는 사이에 물들도록 언제나 우리 곁을 맴돌았다.
 놀다가도 반듯한 돌만 보면 집어오라던 초등학교 때의 어느 날들. 그저 재미삼아 주워다 드린 납작한 돌들이 어느 새 귀퉁이에 수북이 쌓였다가 손수 개어 바른 시멘트 밑에 하나씩 깔렸다. 비가와도 질척거리지 않는 근사해진 마당에서 아이들은 즐거워라 신이 났지만 그 바닥에 함께 채운 어머니의 주린 허기는 까맣게 몰랐던 아, 그때 우린 너무 어렸었다.
 
 어머니는 가난이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임을 삶으로 보여주셨다. 굶주렸던 부모 사랑을 당신에게서 채우며 그 품에서 더없이 행복하셨던 내 아버지. 살 만해질 즈음 혈압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는 대장부보다 더한 여장부가 돼야 했다.
 나아지는 듯 재발하고 그 치료를 감당하느라 집안 형편도 끝 모르게 휘청거렸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 앞에서 살림만 하던 어머니가 무얼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어머니의 지혜는 어려울 때마다 더욱 빛나 당신의 두려움이 자식들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애를 쓰셨다. 치아 제작 일을 했던 아버지에게 열심히 묻고 배우며 뛰어난 눈썰미로 기술을 익혀 바닥난 살림을 다시 일구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술 면허증이 그대로 어머니의 면허가 될 수는 없었다. 피땀 흘려 마련한 기공소의 간판도 내린 채 일을 떠맡은 어머니에겐 시작하는 모든 게 달라져야 했다.
 누군가 집 근처를 서성거리면 어머니의 하얀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서둘러 하던 일들을 접고 감추었다. 때로는 그저 지나치는 기척에도 놀라 그림자가 골목에서 다 사라지고야 안심하던 당신 모습엔 피 말리는 불안이 식은땀으로 매달렸다.
 누구보다 총명하고 재주가 많았지만 어려운 시절 탓에 꿈을 접었던 내 어머니. 양보했던 만큼 자식들은 더 훌륭하게 키울 일념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을 두말 않고 껴안으셨다.
 드러내 떳떳할 수도 없거니와 잘못되면 책임도 감당해야 할 불안한 날들. 그 기술 덕분에 살게 됨을 감사하면서도 어머니의 마음 한쪽은 그렇게 늘 괴로우셨으리라.
 그래서 틈틈이 어려운 이웃과 친지들에게 재료비만으로 치아를 만들어 봉사함으로써 당신 삶의 타당함만이라도 이해받고 싶으셨는지 모른다. 그것은 또 모자람 속에서도 베풀며 살도록 몸소 보여준 어머니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하신 일은 비록 무면허였지만 그 기술만큼은 누워계신 아버지도 감탄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의치를 보면 그저 징그럽다고들 한다. 그러나 끼니도 거른 채 밤늦도록 뽀얀 가루를 뒤집어쓰며 만들던 당신을 생각하면, 그것은 내게 세상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작품이다.
 도움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고마운 인사를 할 때마다 어린 마음에도 흐뭇하고 왠지 어머니가 대단해 보였다. 당신의 삶은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그 시련을 헤쳐 나온 유일한 길이었다.
 
 사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보내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손끝에서 갈려나간 수십 년의 세월이 먼지처럼 뿌옇고 아득하다. 그러면서도 십 수 년을 앓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몸에 작은 부스럼 하나 용납하지 않았으니, 오랜 우환 중에 그렇게 환하고 그늘 없는 가족은 처음 봤다며 사람들은 또 한번 당신 삶의 의지에 고개를 숙였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어찌 힘들지 않았을까. 한창 커가던 자식들도 왜 서로 상처가 없었을까. 그러나 가족이라는 더 크고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었던 건 그 고통의 중심에 서 계신 어머니의 모습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사 남매 기죽지 않도록 밤낮으로 지켜준 어머니는 당신을 태워 우리 앞을 밝혀준 등불이고 파수꾼이었다.
 여자로서의 행복도 일찌감치 접고 세월이 다 닳도록 고단했던 인생이 이제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있다. 그때의 외로움과 두려움들이 어머니의 고된 몸을 조금씩 더 상하게 했을 것이다. 하얗게 세어 버린 머리카락만큼이나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고 소진(消盡)이었으므로.
 결혼을 하고 또 자식을 낳아 이만큼 살았는데도 알량한 내 인내로는 아직 어머니 반도 흉내 내지 못한다. 한동안 가위에 눌려 울다 깨는 밤이면 어머니에게 어김없이 야단을 맞는 꿈이었다. 숨 막히는 가슴을 턱턱 치며 버둥거렸던 날들의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식을 너무나 사랑한 당신이고 그렇게 의지하던 어머니인데 왜 그런 꿈에 시달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꿈조차 죄스러워 견딜 수 없었으니 내 안에 나도 모를 깊은 병이 자랐던 모양이다.
 어머니의 고생은 어느 새 부담과 연민이 되고 내 생각은 간데없이 조금씩 힘겨워지더니 그 사이 잃고 놓친 것들이 슬그머니 서운해졌다. 결코 어머니가 될 수 없던 그때의 나는 그저 힘에 부치는 꿈 많은 딸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가족이란 가장 커다란 애증의 대상이다.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그만큼 상처가 되기도 하는. 그러면서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질긴 혈연의 의미를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으니, 어머니의 저 한결같은 사랑을 통해서였다.
 놀랍게도 그때부턴 두 번 다시 아픈 꿈을 꾸지 않는다. 비로소 관계 속에서도 자유롭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전부를 온전히 껴안고 이해하고 싶어진 것이리라.
 분별도 흐려진 아버지를 모시고 집안의 첫 혼사이자 큰딸의 결혼식에 섰던 당신의 뜨거운 눈물을 잊지 못한다. 사 남매의 결혼사진 중 가장 여위고 지쳐있던 어머니의 모습을 들여다 볼 때마다 지금도 여기가 헤진 듯 아프다.
 지난해를 넘기며 위로 두 분, 큰언니와 오라버니를 여의고 이제 당신의 남은 삶을 가늠하시는지 자꾸 쓸쓸한 표정이 기웃거린다.
 그래서 시작한 게 한달에 한번쯤은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를 뵈러 가는 일이다. 아이들과 남편의 고마운 이해 속에 오직 당신의 딸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그 어려웠던 날들, 곁에서 조금이나마 느끼고 아프고 감사했던 딸이기에 밥 한 끼 맛나게 먹으며 회한처럼 꺼내는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싶다.
 ‘다시 한번 내게 그런 인생을 살라면 이젠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하며 그 시절이 되살아나듯 목 메이는 어머니에게서 깊고 뜨거운 인생을 또 한번 확인한다. 단 한번뿐인 인생의 의미도 새롭게 깨닫는다.
 때로는 한 이야기가 또 나오고 그리고도 한 번 더 나올 때 있지만 그것이 당신께 뒤늦은 위로라도 된다면 열 번 아니라 스무 번이라도 기꺼이 맞장구치며 고개 끄덕여 드리리.
 나팔꽃이 새벽을 열면 분꽃과 봉숭아도 기지개를 켜고 앙증맞은 채송화까지 발밑에서 까불대던 내 마음의 고향이여. 환하게 웃어주던 당신이란 울타리 안에서 그것들과 같이 자란 슬픔과 기쁨들이야말로 지금껏 나를 살게 하는 가장 큰 힘이고 보물이다.
 그 보물들을 조금이라도 더 되찾기 위해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날들이 이제 내게 얼마나 남은 걸까.
 사랑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 수필과 비평.2004. 11/12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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