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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주팔자    
글쓴이 : 장정옥    13-01-11 20:25    조회 : 5,341
사주팔자
 
 
 
                                                                                                                 장정옥
 
  개 팔자가 상팔자요, 무자식이 상팔자라 했다. 그러면 좋은 팔자란 자식 없이 개처럼 아무 곳이나 떠돌면서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무념무상이 팔자에 속한다면 역시 방랑자 김삿갓의 사주가 최고라 할만하다.
  사주란 태어난 년,월,일,시를 통해 풀어낸 운명을 말한다. 그렇다면 나를 왜 이렇게 낳았냐며 부모 원망하는 자식을 나쁘다고 할 수도 없겠다. 좋은 달과 좋은 날에 태어나도록 합방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부모에게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또한 어쩌랴 그것이 운명인 것을.
 
  사주는 운명론과 맥을 같이한다. 신의 섭리에 의해 이생에 태어나 그의 계획에 의해서 살고 죽는다는 운명론. 그러나 사주를 믿기는커녕 관심조차 없었다. 그건 내가 가진 신앙의 범주를 벗어난, 이미 예정 되어진 삶의 여정을 알아내려는 행위는 신에 대한 월권이기 때문이다.
  개혁(protestant)신앙에는 사주와 비슷한 ‘예정론’이 있다. 태어나기 전부터 내 인생은 이미 예정되어진 것으로 살아가면서 만나는 고통과 짐들은 내가 지나야 할 길이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둘러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로 귀결된다. 이를 믿고 담대히 나가는 자와 믿지 못하고 포기하는 자의 결과만 있을 뿐이다. 종교적 논쟁이 심한 부분이기에 더 이상은 신학적 해석에만 집중해야 한다.
  이에 대해 무신론자들은 무모하다 하고 염세주의자들은 신은 죽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광신자들은 신비주의에 빠지게 된다.
 
  한 여인이 있었다. 맑고 조용한 고장 청주의 유복한 선비집안에서 태어났다. 출생이 말해주듯 너저분함과 찌꺼기는 본 적도 없이 자랐다. 대학에서는 캠퍼스 커플로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모자람이 없고 부러울 것이 없는 두 남녀는 바람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지나가듯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다. 더할 나위 없는 평안과 행복이 그녀 인생에, 아니 팔자에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태가 지났다.
 남편의 사업이 기울면서 설상가상으로 갑부였던 시댁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몇 년 후 재취였던 시어머니는 집안의 모든 재산을 정리해 시아버지와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 통에 형제자매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그녀도 남편과 열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살 곳을 찾아 떠났다. 6.25전쟁 때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1995년 밀레니엄의 싹이 피어나던 풍요의 시대에 치러내야 했다. 하지만 마치 꿈처럼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원래의 생활이 다시 나타날 것으로 믿었다. 자신의 사주가 평생 돈 속에서 헤엄치는 사주인데 이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힘든 삶이 시작됐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이 언제까지인지, 얼마나 힘든지에 관하여 알고자 사주풀이 하는 사람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돈 밖에 없는 사주이니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꼭 듣던 말은 ‘남편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사주가 그녀의 사주를 가로막고 있어서 그녀의 삶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애정보다(부부 일은 두 사람만이 안다.)는 아들의 장래를 감안해 헤어지지 못했다. 또한 이혼이라는 허물로 세간에서 떠들기 좋아하는 ‘팔자 센 여자’가 되는 것은 더욱 싫었다. 어떤 위로도 받아들이지 못하던 그녀에게 나는 그저 침묵의 기도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십 수 년을 살아냈고 성인이 된 아들은 이제 어머니의 인생을 찾으라며 간곡히 권유했다.
 
  2011년 봄, 벚꽃이 만개한 날 꽃비를 맞으며 그녀는 달콤한 복숭아 빛 얼굴로 내게 왔다.
  “나 결혼해”
  나는 잠시 혼미한 상태가 되었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고생 속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녀의 고백 때문이었다. 자산이 육백 억이 넘는다고 했다.
  내 생애 너무 놀라면 말이 안 나온다는 체험을 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갓난아이가 토해낸 젖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처럼 매슥거렸다. 친구의 사주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주라는 게 정말 있는 것일까. 평생 돈 속에서 헤엄친다는 그녀의 사주가 정말 맞는 건가.
  뒤이어 나의 사주는 어떨까 가슴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잠시 내가 믿는 신의 존재를 망각 할 뻔 했다.
 
  사주와 풀이에 대해서만큼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싶다. 그러나 좋지 않은 사주를 다른 방법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사주풀이 전문가들도 말한다. 어찌 운명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사주대로 되나 안 되나 살아보라고.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좋지 않은 사주를 피할 수 있다며 요구하는 것에 이끌려 다닌다. 백만, 천만 원짜리 사주 액땜이 진정한 효과가 있다면 우리 인생에 나쁜 일은 왜 일어나겠는가. 인위적으로 사주를 바꾼다 한들 운명에 속한 사주가 진정 바뀌겠는가.
  그래서 힘이 들수록, 어려운 일이 생길수록 덕을 쌓으라고 말한다. 모든 이에게 선하게 대하며 베풀고 성실하게 살라고. 바꿔 말하면 좋은 심성으로 살라는 말이다. 그것이 좋지 않은 사주라 해도 의로운 행실로 팔자는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세간에 남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그녀를 보며 ‘그 여자 팔자 고쳤다’고 수군거리기도 한다. 물론 배가 아프니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심보겠으나 그녀의 팔자가 달라진 것은 좋은 사주 때문이라는데 어쩌겠는가. 약 올라 하기 전 자신의 사주나 알아볼 일이다.
  그녀가 떠나고 나자 힘든 와중에서도 언제나 밝고 어질게 살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녀가 받은 복은 바른 심성으로 베풀며 살았던 시간의 보상, 즉 고진감래의 결과가 아닐까.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 친구를 보면서 진심으로 그녀의 평안을 빌었다.
 
  인생이란 다른 많은 것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사주에 돈이 많지 않다 해서 삶이 힘든 건 아니다. 부자들이라고 고통과 고민이 없겠는가.
  나아가 믿기 힘든 이 모든 일이 믿음의 시선으로 보면 이미 예정되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자 내 자신의 사주를 알아 볼 만큼의 절박성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주에 대한 나의 견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 미래를 미리 알고 있은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 하나는 장래 일을 모르게 한 것이다. 인간이 두려움을 가지고 세상을 겸허히 살아야 하는 이유다.
  사주가 어떻든 이웃을 존중하고 자신을 돌아본다면 사주는 몰라도 팔자라는 삶의 색깔은 분명 달라질 것으로 믿는다.
 
 
 
2012.  계간문예  NO.30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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