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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장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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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그 후    
글쓴이 : 장정옥    13-01-11 20:37    조회 : 5,171
1984년 그 후
 
 
 
                                                                                                                         장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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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공항 터미널 주차장에 세워둔 차의 범퍼 측면 부분이 긁혀있다. 몰딩부분이 떨어진 모양으로 보아 다른 차가 후진하다 건드린 것 같다. 차를 저렇게 해놓고 메모도 남기지 않다니 괘씸한 생각이 울컥 들었다. 즉시 관리소에 연락해 확인을 요청했다.
  “제가 오전 10시쯤 들어와서 오후 1시 반쯤 나갔거든요.”
나는 염치없는 뺑소니를 잡아서 어찌해야할까 생각중이다. 주차장 안전요원은 즉시 컴퓨터에 몇 가지를 입력한 후 녹화된 부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화면은 내가 들어와 주차하고 총총히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옆 화면에서는 내가 엘리베이터를 탄 후 바지를 추켜 입는 모습까지 친절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정작 내 차 앞부분을 지켜보는 카메라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다. 많은 차들이 지루하게 들락거리고 기둥 옆 차가 주차를 했다 나가고 다른 차가 들어왔다 나갔다. 얼마 후 가방을 든 내가 차 쪽으로 오다가 종이컵을 떨어뜨렸으나 줍지 않는 비신사적 모습이 비쳤다. 얼굴에 살짝 열이 오른다. 범인은 잡지도 못하고 부끄러운 모습만 확인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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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좋아서 날뛰는 놈을 안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검은색의 동그란 원형 카메라가 천정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강아지를 애기만큼이나 소중히 안고 있는 내 모양을 눈 감아 주겠다는 표정으로. 아파트 정문 앞 전신주에는 보안용이라는 이름표를 단 카메라가 대롱거리고 있다. 너를 주시하고 있으니 잘 알아서 행동하라는 암묵적 묵시(?視)다.
  “저 놈의 카메라 때문에 내 인권이 유린당하는 기분이야.” 나는 강아지가 다리를 들어 올리자 안 된다는 듯 살짝 제지하는 모습을 연출했지만 내심 유쾌했다.
  산책로로 올라가는 길 옆집 담벼락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개똥녀 개똥남, CCTV가 지켜보고 있으니 안치우면 인터넷에 올려 망신을 주겠음.”
  “쓰레기나 치우시지. 담장 밑이 더러우니 개들이 화장실인 줄 알지.”
  기분 완전 똥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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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에서 앞으로 교통사고 수습에 억울한 일이 줄어들 것이라 말한다. 차량용 블랙박스 덕분에 시시비비를 확실히 가릴 수 있다고 한다. 이젠 목소리 큰놈이 이긴다는 말도 옛말이 되어버렸다고도 했다.
  “우리도 블랙박스 달아야하는 거 아냐? 나쁜 놈을 잡아야지.”
  억울한 일이 처리되는 상상을 하는 순간 개인 인권침해 어쩌고저쩌고 한다. 그리고 다른 각도로 차 앞뒤의 모든 부분을 영화처럼 보여준다.
  술에 취해 차바퀴에 실례하는 사람, 차 뒤에 숨었다고 믿는 젊은 연인들의 행각, 삶의 무게에 비틀거리는 한 남자의 무거운 발걸음,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 등등.
  “처음부터 도망갈 생각이었는데 잡으면 싸울 수밖에 없고 그러면 기분만 더 상할지도 몰라.”
  아량(雅量)이 넘치는 분의 한마디. 속 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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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영화 <<본 얼티메이텀>>
  억울한 주인공이 달아나는 쪽의 카메라를 사무실 안에 있는 대형 화면에 띄운다.
  “지금 이 길을 통과했으니 3시, 10시 방향의 카메라를 주시해라.”
  어김없이 5초 쯤 후 뛰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포착된다.
  “카메라를 12시 방향으로 돌려.” “왼쪽으로 꺾었는데 그쪽은 카메라가 없습니다.”
  “그럼 위성을 작동시켜. 그리고 그 구역 담당자에게 따라 붙으라고 해.”
  주인공은 혼잡한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몸을 숙여 운동화 끈을 조이며 달아날 곳을 찾는다. 3분도 체 지나지 않아 광장에서 점처럼 보이던 그의 머리를 화면이 확대한다. 주인공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주인공은 잠시 시간을 벌었다. 추적자들은 주인공이 들어 간 건물 화장실에서 찢어진 종이에 낙서된 이름 하나를 발견한다. 백만 명이 넘는 이름을 조회해 관련자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가 어느 공항을 통해 어디로 나갔는지 알아내고 그를 찾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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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연일 무서운 뉴스가 터진다. 대낮인데도 혼자 걷는 길이 무섭다. 전신주나 담벼락에 붙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가능한 그쪽으로 붙어 걷는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일일이 보고하는 행동이다.
  스마트 폰의 위치 찾기를 연결하면 내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이 훤히 드러난다. 실시간 검색을 연결하면 위성을 통해 서울에서 시골집의 안마당까지 볼 수 있다.
  조카딸이 있는 미국 일리노이주 대학 기숙사. 컴퓨터에 캠을 연결하면 같은 자리에서 마주앉아 대화하는 착각도 한다. 화면을 빙 돌리면 집안이 더러운지 누가 있는지 확인 할 수도 있다.
  G. 오웰은 미래에는 텔레스크린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예고했다.
  그의 소설 <<1984년>>의 주제는 감정 없는 기계적 인간을 만들고 통제하며 감시당하는 비인간적 미래 사회를 그린 것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우리는 그의 꾸며낸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소설보다 더한 감시를 받는 우리는 이제 살아 있는 한 지켜보는 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한때는 인권침해의 폐해가 더 크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감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렇다.
  내 일거수일투족이 기록으로 남는다 해도 한사람을 위험에서 구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양보하겠다. 광화문 네거리의 건물위에 있는 대형광고판만한 사이즈라도 필요하다면 말이다.
  바로 텔레스크린이다.
 
 
 
 
2013.  에세이스트.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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