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루스테스의 안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를 읽던 중 오래 전 수용연대에서 겪었던 황당하고도 씁쓸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수용연대는 입소 전 입영대상자들의 신체검사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난 그곳에서 담당 군속이 만들어준 안경을 쓰고 훈련소로 '팔려' 갔다. 아테네 교외 강가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를 유인하여 철 침대에 눕힌 후 침대 길이에 맞춰 몸을 늘리거나 잘라 죽여 버린 악당이다. 프로크루스테스도 군속이 만들어 준 안경을 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 얼핏 든 것은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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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괴나리봇짐을 옆에 끼고 '집 떠나는 홍길동'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친척집에서 하루를 머물고 K시 공설운동장으로 갔다. 우리 도(道) 입영대상자들은 일차 그곳에 집결해 수용연대와 훈련소가 있는 논산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완행 밤 열차에 오르자 차 안은 벌써 군대분위기였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군가가 흘러나오자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의 장정(壯丁)이면서도 벌써 군인이라도 된 양 노래를 따라 부르는 무리도 있었다. 나는 나누어 준 건빵과 별사탕을 깨어 물며 한탄했다. "아, 봄날은 가고 내 청춘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수용연대에 도착한 우리는 낯선 곳에 방목된 소 떼처럼 이리저리 뒤엉키며 '신검(신체검사)'을 받으러 다녔다. 군대에서는 하루가 새롭다. 수용연대에 체류하는 일수는 군복무 기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신검 완료 표지인 '완(完)'자 도장을 받아 빨리 훈련소로 건너가는 것이 큰 관심사였다. 약삭빠른 자들은 연줄을 찾아 '기름칠(금품 건넴)'을 해서 목적을 이뤘다. 보름여가 지나자 동료들은 모두 떠나갔고 다른 도 장정들이 너 댓 차례 더 거쳐 갔다. 나는 그곳에 계속 남아 왕고참 장정으로 행세하며 그 곳 생활에 길이 들어갔고, 이대로 날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나는 다른 항목에선 통과했으나 안과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짬밥(잔반)'을 먹고 안과로 가면 관계자들은 나를 오전 내내 시멘트 바닥에 쭈그려 앉혀 놓았다가 다른 사람들만 검안하고 내겐 점심 먹고 오라고 했다. 오후에 가 보면 하릴없이 앉혀 놓았다가 또 내일 아침 오라고 했다. 다음날,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안과에는 군의관, 검진을 보조하는 작대기 넷(병장)과 안경을 제조하는 중년의 군속이 있었다. 군의관은 자리를 자주 비웠으며, 그럴 땐 늙수그레한 군속이 업무를 대신했다.
깡마르고 강퍅한 군속은 자기도 안경을 낀 주제에 빨간 불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비쳐보며 "너는 참 눈깔이 나쁘구나!" 비웃고는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바닥에 꿇어앉아 있으라고 했다. 어느 날 '변소(便所)'에서 군속을 만났는데 뒤 곁으로 끌고 가더니, "너 군대 갈래, 집에 갈래?" 웃음을 띠며 물었다. 나는 그때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이 재수 없는 놈아! 너, 수용소 말뚝 박을래?" 침을 뱉고는 그냥 가버렸다. 돈이 떨어진지 이미 오래였다. 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돈이 있었다면 그 군속에게 주었을 것이다.
수용연대에 온지 한 달여가 지났을 때 상부에서 계류 중인 자들의 즉각 처리를 시달했다. 나는 군속이 날림으로 만들어 준 회색 플라스틱 테 안경을 끼고 훈련소로 옮겨갔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세계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에다 억지로 눈을 맞추는 것이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이야말로 장자(莊子)의 비유처럼 "물오리의 짧은 다리를 잇고 학의 긴 다리를 자르는 행위"와 다를 바 무엇이랴. 사격장에선 과녁이 흐릿하여 표적지 천에다 얼추 쏴대 '숙달된 조교' 에게 된통 혼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군대에서는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안경에다 눈을 맞추라고"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다음번엔 꾀가 늘어 목표물을 오조준 사격하여 가뿐하게 통과했다.
두 달 여 기초군사 훈련이 끝나고 자대에 배치될 무렵 눈도 어지간히 안경에 적응하여 불편한대로 내처 쓰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제대 후 복학하고도 한동안 군대안경을 끼도 다녔다. 흠집투성인 데다 칠이 벗겨져나가고 낮은 포복 높은 포복 하느라 먼지 때가 낀 안경을 바꿀까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때는 모두 어려운 시절이었고, 그런대로 쓸 만한 '장신구'를 낡았다는 이유로 바꾸는 것은 사치였다. 그보다, 검안 후 전문 안경사가 권해 주는 교정용 안경은 너무 불편했다. 어지러워 몇 발자국 걸을 수가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도수가 맞지 않았던 군대 안경에 어느덧 길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내 눈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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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에피소드는 아집과 편견을 경계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신화를 다시 읽으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군속이 만들어 준 안경을 결부지어 생각하게 된 연유가 우리를 둘러싼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 입장과 이념 차이로 나뉘고 연령대, 출신지역, 신분과 계층에 따라 정서를 달리하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 보인다. 정치?사회적 현안은 물론 문화 현상을 두고도 관점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필생의 적인 양 대립한다. 곳곳에 땅이 갈라지고 절벽과 단애(斷涯)가 생겨나는 재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위태롭다.
이러한 갈등과 분규의 원인이 무엇일까? 사회구성원인 우리 모두 신화 속 악당 프로크루스테스처럼 군속이 만들어 준 안경을 쓰고 있는 지도 모른다. 선후를 뒤집고 본질을 왜곡하며 미리 만들어 놓은 자기만의 경직된 틀을 통해 세상의 일과 사물을 재단하는 독단의 안경... 몸 담고 있는 공동체의 분열과 혼란은 다른 안경을 쓴 타자의 존재 이유와 개연성(蓋然性)을 인정하지 않음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는지. 상상 속 안경 쓴 프로크루스테스의 괴상한 모습은 우리에게 소통과 화합, 상생의 삶을 향한 역설적 깨우침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