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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힐링(Healing)할 때    
글쓴이 : 공인영    13-03-18 20:30    조회 : 5,291
 
 
지금은 힐링(Healing)할 때
 
 
 
  멈췄던 열차가 다시 원당역을 출발하자 창밖 겨울 숲이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처럼 다가왔다. 텅 비고도 여유로운 숲 언덕과 골짜기, 그리고 잔설이 얹힌 나목(裸木)들 사이로 감도는 뿌연 것들이 마치 생명력인 냥 어리어리한 게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그 풍경에 취하고 있었다.
  “야, 이 자식들아!” 
  감상에 젖던 날 깨운 건 전철 안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였다. 상황을 보니, 남학생 몇 명이 몰려서 소란을 떨었고 보다 못해 아저씨 한 분이 주의를 준 모양이었다. 그런데 들은 체도 않고 더 건들거리는 통에 한 아이의 멱살을 잡고 야단까지 치게 된 것이다.
  씩씩거리는 학생을 누군가 건너편 자리에다 붙들어 앉히고 진정시켜보지만 아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지 휴대폰만 신경질적으로 문질러댔다. 그러다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입을 가린 채 통화를 시작했고 그렇게 전철 안은 다시 고요해지는 듯했다. 나도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그런데 몇 정거장이나 지났을까. 흰 방한복을 입은 경찰 두 명이 전철 안으로 올라탔다. 흔한 일은 아니지 싶더니  세상에! 꾸지람을 들은 학생이 자신을 폭행했다며 그 아저씨를 고발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고 거리를 두고 앉은 내 몸에도 소름이 돋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은 결국 어느 역에선가 그들을 모두 내리게 했다. 체크무늬 빵모자에 검은 뿔테 안경을 추켜 쓰며 뒤따르던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다가 눈을 감아버렸다.
   매스컴에서 터져나오는 어이없는 사건들을 수없이 보면서도 이건 정말 먼 곳의, 매우 희소한 일이라고 믿어왔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게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그 관심에 오히려 화를 당하기 십상인 요즘 같은 때 아저씨의 행동은 차라리 용기였는지 모른다. 아이는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부모에게 꾸지람이라도 들은 걸까. 시험 성적이 떨어져 상심한 걸까. 누구라도 걸려라, 할 만큼 말 못할 불안으로 힘든 순간이었나. 이런 저런 입장으로 헤아려 보지만 그 행동만은 쉽게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밖에선 부모가 상상하는 것과 사뭇 다르니 제 자식들 다 믿지 말라던 친구의 얄궂은 말이 생각났다. 그녀도 부모로서 호되게 당했나 보다. 하긴 나도 한 때는 두 딸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키우려고 안달깨나 했었다. 큰애가 어릴 적에 살림살이 한 수 위인 이웃 아줌마가 놀러와 차 한 잔을 나누다가 슬그머니 던진 말이 생각난다.
  “소영엄마는 참 대단해. 어떻게 애가 하는 질문마다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지? 짜증도 안 나? 그래야 정상인데. 너무 그러면 힘들고 그러다 지치고 말지......”
   뼈 있는 한 마디가 부러움이었는지, 젊은 아낙이 유별난 듯 밉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난 이론만 주워듣고 유연하게 가르칠 내공이 부족한 생 초보엄마였을 테니까.
   결국 고분고분하던 두 딸도 예외가 아닌지 청소년기로 접어들며 그들 식의 불안을 드러냈고 그것들을 받아내는 일은 몹시 괴로웠다. 고민과 갈등으로 지쳐가면서,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사고와 행위의 온전한 독립체임을 인정해야 했고 그쯤에서 내려놓은 욕심 덕분에 두 아이의 학창시절을 생지옥으로 몰고 가는 어리석음만은 피할 수 있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다행한 건, 아이들이 스스로 시행착오를 극복하며 자신의 꿈을 찾아가도록 기다려준 일이다. 믿는 도끼에 여러 번 발등 찍히고도 결국 또 믿어준 거기엔, 무진장한 인내가 필요했음을 이제 마음 살짝 놓이는 두 녀석의 모습과 가끔씩 고백하는 짜릿한 추억담에서 확인중이다. 물론 아직도 그 불안은 도처에서 좀 더 튀어나올 전망이지만 두렵지만은 않다.
   고학력일수록 ‘정직지수’가 현저히 낮다는 최근 조사통계가 심각해 보인다.(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조사) 고등학생 10명중 4명은 10억이 생긴다면 감옥에라도 가겠다’고 했고 인터넷상의 불법다운로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니, 입시의 압박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청소년에게 거짓과 속임수의 가짓수만 늘려주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져가고 있다.
   모두가 1등인 세상은 불가능하거니와 지식만 쌓는다고 훌륭한 인격체가 되는 건 더 더욱 아님을 많은 사건이 증명하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변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시 몇 편 가슴에 새길 여유도 없는 생활이 어떻게 청소년들에게 즐겁고 낭만적인 정서를 만들어주며, 이기적인 아이들로 등 떠밀면서 어떻게 더불어 사는 세상의 따뜻함을 느끼라는 말인가. 학교와 학원과 집이 전부인 세상, 그 길 위에서 마주하는 게 고작 손바닥만 한 휴대폰과 온갖 비속어들의 유희뿐이라면 그런 환경에다 가둬버린 어른들의 꾸지람에, 바짝 고개 들던 아이의 버릇없음만 탓할 일도 아닌 것이다.
  지금도 그 날 일을 생각하면 쓸쓸해진다. 그때 그 아이들은 전철에서의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리고 절망으로 고개 숙이던 아저씨와 멍하니 한숨짓던 승객들은 또 무슨 생각을 하며 그곳을 떠나갔을까.
 
 
 
                                                                                                            <  에세이문학 2013. 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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