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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노년을 꿈꾸며    
글쓴이 : 공인영    13-03-29 11:33    조회 : 5,856
 
아름다운 노년을 꿈꾸며
 
 
 
  화장실을 나온 시아버님이 바로 곁의 방을 놔두고 또 둘째의 방으로 가 벌컥 문을 열었다. 자다 놀란 손녀, 그날 이후로 밤만 되면 슬그머니 방문을 잠그기 시작했다. 두서없는 행동과 함께 아버님의 낮밤이 자주 바뀌고 밤새 몰래 치워버린 잡동사니들을 아침이면 도로 찾아다니는 일도 많아졌다.나이 듦을 어쩌랴 싶어 담담하려 해도 내 부모의 일이어선지 심정이 복잡해진다. 당신도 불안한지 예전엔 피하던 검사를 마다않고 받으신다. 서랍 속은 때를 맞춰 먹을 약으로 가득하고 얼마 전엔 노인성 우울도 보인다며 의사는 알약 하나를 또 추가했었다.
 
  모처럼 통화를 하던 끝에 친정엄마가 아버님의 함자를 물으셨다. 기도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오래 전 시어머님 돌아가신 뒤로 바깥사돈 뵐 일이 없고 보니 깜빡하신 모양이다. 전화 속 목소리야 여전히 곱지만 당신도 이젠 온몸에 약을 달고 사시는데 참을성 없는 큰딸의 한숨이 묵주기도만 보태드리게 생겼다.
  그러면서 두 부모를 생각한다. 한 분은 일찍 남편을 여의고 모진 세파를 헤쳐 오면서도 여전히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건만 다른 한 분은 한량처럼 살고도 노후엔 벗 하나 없이 종일 화투패만 떼는 게 일과였다. 이젠 그마저도 힘들어 종이호랑이로 말라가는 아버님이 안쓰러우면서도, 당신 대신 허리가 휘도록 바느질만 하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직도 그의 아들은 온전한 이해와 용서가 어려운 모양이다.
  집안마다 부득이한 사연들을 며느리가 다 이해할 순 없지만 그래도 혈연이란 '함께 해야 하는' 무엇일 텐데 살아보니 불가항력도 있다. 세상살이 딱히 정답이 없으니 인생 참 어렵기만 하다. 친척들의 안부도 줄고 어쩌다 집안 대소사에도 자식들만 다녀올 뿐 거동마저 불편해 슬그머니 왕래가 멈춰버린 집안의 명절이란 그래서 늘 조용하다.
  자식 키우며 운명과 맞서느라 모든 걸 소진한 엄마보다 한평생 무언가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아버님의 편안했던 육신이 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것들은 몸뚱이를 넘어 정신의 문턱마저 넘나드니 어쩌면 좋을까. 고령과 노후의 문제가 마냥 화두인 요즘, 그때를 위한 정신적, 물질적 준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저 두 분이 어느 쪽으로든 보여주신다.
  어느새 50대가 되어버린 우리가‘부모를 돌보는 마지막 세대고 자식에게 버림 받는 첫 세대’란 유행어엔 조금 서글퍼진다. 허지만 노후 준비가 어디 그리 말처럼 쉬운가. 누군들 탈탈 털어 자식만 받들다가 쓸쓸하고 고달픈 황혼으로 스러지고 싶을까.
  남편과 나는 사회 초년생인 두 딸에게도 미래는 스스로 개척하라고 진즉부터 못 박아두지만 바닥부터 시작할 그들의 앞날이 우리의 젊었던 시절보다 더 암울해 보여 노후를 기대기란 꿈도 꾸지 못하겠다. 게다가 물질만능과 학벌위주의 교육은 인간을 점점 더 이기적으로 만들고 불평등과 불균형의 세상에서 고통스럽게 하니, 왜 이상과 현실은 늘 이렇게 반대방향으로 등 돌리고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껏 혼자 지내면서도 관계와 소통에 적극적인 엄마의 삶과, 자식과 살면서도 그러지 못했던 아버님의 외톨이 같은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배운다. 또한 행복이란 작고 사소한 데서 자주 손짓하고 더불어 사는 삶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러니 노후 준비가 좀 모자라더라도 그 부족을 정신적 풍요로 채우며 즐길 줄만 안다면 삶이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또 게으름도 줄여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삶의 기쁨들을 쪼개고 나누는 연습도 더 해야겠다. 그렇게 인생을 건강하게 마무리해 가며 자식들의 마음의 의지처가 돼 줄 수만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
  그래도 부모님의 안위(安慰)는 갈수록 조바심 나게 한다.'끝'이라는 시간이 개입하기  때문이리라. 누구에게든 닥칠  일이라는  ‘순응’  너머의  ‘죽음’과  마주할  순간이 난 여전히 두렵기만 하다. 아버님의 마른 장작 같은 등줄기를 가만히 훑다가 잠깐 서늘해진다. 오래 전 너무나 일찍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와 시어머님, 그 후로 다시 낯설게 다가오는 쓸쓸한 기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 이 예감을 아직은 외면하고만 싶은데......
  초점을  잃은  퀭한 눈으로 불 꺼진  집안을  기웃거리며  아버님은 조금씩  타인이  되어 가신다. 자신의  말과  행동조차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그 모습을 보며,  식구들 모두  지금껏  너무  익숙해서 소홀했던  ‘가족’ 의  의미와  ‘부모’  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는 것도  같다.
  영양주사를 한 대  맞아서  그런가,  어제보다  아버님의  낯빛이  조금 환해보이는  건  그저  알량한 내 마음의  위안일  것이다.  다시  또  힘겹게  돌아누운  아버님의  가느다란   숨결에서,  젊음을,  인생을 어떤  마음과  태도로 살아냈는가에  따라 노후의  풍경이  훨씬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아프게  깨닫는  중이다
 
 
                                                                                                 <월간문학 2013.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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