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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글쓴이 : 김창식    13-06-22 15:54    조회 : 7,112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는 라틴 3인조 팝그룹 로스 트레스 디아망테스가 부른 <루나 예나(Luna Llena)>의 우리말 제목이다. '만월(滿月)'이라는 뜻이지만, 우리에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사랑스런 번안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다. 간주 부문의 휘파람과 여우 울음소리(우우우~)가 몽환적인 이 노래는 푸른 달빛 아래 기억의 편린으로만 남은 옛 연인을 회상하는 비가(悲歌)다. 시인이자 독문학 교수인 김광규는 동명의 제목을 따와 쉬운 일상어로 풀어냈다. 다음은 시의 일절이다.
 
 4ㆍ19가 나던 해 세밑/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사는 4.19 세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이 시는 역사의 진행 과정에 대한 투철한 참여 의식을 갖고 있던 세대들이 나이가 들며 현실에 길들여져 가는 안타까운 모습에 대한 회한을 토로한다.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인 화자와 친구들은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묻고,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모두가 그저 "살기 위해 사는" 것이다.
 
 1960년 4.19가 나던 해, 나는 중동중학교 1학년이었다. 학교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다른 것이 어린 마음에도 수상했다. 선생님들이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오갔다. 운동장에는 씨알 굵은 고등학교 형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우리들 중 누군가 중앙청 앞을 지나오는데 탱크가 진을 치고 있고 총을 맨 군인들이 서 있더라고 전해주어 그런가보다 했다. 뒤이어 내려진 휴교령에 철부지들은 멋모르고 신바람이 났다. 그날이 우리 현대사에서 그토록 숭고하고 장엄한 날이었을 줄이야! 어쨌거나 나는 아직 어렸고, 그때 현장에 없었다.
 
 4.19 세대는 언제부터인가 사회의 중심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몇 살 어린 세대인 우리 또한 줄줄이 은퇴한 채 노년의 문턱을 두드리고 있다. 공짜 전철 탑승이 편하더라는 친구도 있긴 하지만, 뿌듯한 마음이라기보다 한숨 섞인 자조일 것이다. 지역 동창모임에라도 가면 전과 달리, 마누라나 자식 자랑은커녕 골프나 주식, 건강에 대해서도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는다. 주변 정세라든가 나라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핏대를 올리기는커녕 심드렁하다. 그런 류의 이야기에 날을 세워봐야 '영양가 없음'을 안다. 아니, 이 모든 것이 그저 귀찮기만 하다.
 
 몇 년 전만해도 1차 모임을 파하면, 왁자지껄 2차로 노래방에 가자느니, 당구 치러 가자는 둥 설왕설래 했지만, 그리고 의견취합 과정에서 우습게도 우정 어린 다툼도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어디에든 가기는 갔다. "어어~" 하다 보니 2,3년 사이 풍속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그런 말 꺼내기라도 하면 개념 없다고 구설수에 오른다. 우리는 동창회야 잠시 들르기로 했던 경유지인양 범죄자들이 접선했다 헤어지듯 서둘러 흩어진다. 한 모금도 안 되는 생맥주 500CC에도 손사래를 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모두 '깨작깨작' 늙어가고 있다. 그것도 단체로, 누가 뭐래도.
 
 사월은 끼인 달, 이도저도 아닌 달이다. 봄의 시작을 반기는 삼월과 계절의 여왕인 오월 사이에 끼어 갈피를 못 잡는 달이다.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읊은 시인도 있지만(T/S 엘리엇), 사월이 오면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무거워 온다. 누구엔가 빚진 것만 같은 부채의식을 좀처럼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다른 한편으로 그 감정이 박제가 된 채 점점 퇴색해가는 듯해 또 그것이 불안하고 두려운 뒤엉킨 마음이 된다.
 
 사월의 끝에서 계절의 순환을 생각한다. 사월은 당연히 오월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은 올 해도 내년에도, 또 그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또 곤혹스러움에 잠길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든 현장부재는 마찬가지니까. 1960년 그해 4월에는 까까머리 중학생이었으니 너무 어렸고, 그해 봄 1980년 오월에는 대기업 주력 회사에서 새내기 과장으로 갓 승진한 직장인이었다. 그것도 결혼을 앞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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