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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이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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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탉처럼    
글쓴이 : 이천호    13-08-12 19:04    조회 : 4,194
내가 어린 애였던 시절 시골에서 서리병아리를 비롯해서 닭을 보통 20여 마리 씩 기르면서 살았으니까 닭 무리들과 어울려 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닭이 더러운 발로 안다니는 곳이 없으니까 지저분했다. 채마전이고 꽃밭이고 가릴 것 없이 파 헤집는 바람에 그 닭 무리들을 쫓아내는 일이 나의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 10여 마리의 암탉과 함께 대장노릇을 하는 수탉의 모습이 참 멋지다고 생각하곤 했다. 어떤 때는 여러 마리의 수탉이 있는 경우에도 서열이 엄정하여 대장 수탉의 세상이었다. 60여 년 전의 일이니 이제는 옛 일이 되었다, 그렇게 형성된 닭의 무리는 그야말로 평화로움, 바로 그것이었다. 암탉사이에 수탉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일도 없고 저를 덜 사랑한다고 앙탈부리는 암탉도 없었으니 말이다.
수탉은 무리의 보호자 였고 무리에 대한 수탉의 사랑은 극진하였다. 새까만 꼬리 깃털이 마치 어사화처럼 멋지게 곡선을 그려 대장으로서 권위를 세우기에 손색이 없었다. 등에서 배 쪽으로 검붉은 색, 주황색, 노란색, 빨간색이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면서 윤기가 반짝반짝 빛나는 깃털의 아름다움, 왕관을 연상하게 하는 붉은 윗 벼슬, 황금색으로 빛나는 귀 밥이며 권위의 상징이라 할 아래 벼슬은 부드러우면서도 탐스러웠다. 위풍당당한 모습에 눈은 언제나 형형하게 빛나고, 개나 거위 오리 따위의 외적으로부터 무리를 보호하여 그들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풍모는 온 몸에 힘이 넘쳤으며, 여러 암탉들이 순종해서 언제나 당당했지 그 권위에 도전해서 바가지를 긁는 암탉은 없었다. 뼈대가 굵고 발톱이 날카로운데다 검붉은 빛을 발하는 발톱, 힘이 넘치는 매섭게 생긴 부리도 상대방에 대하여 기선을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암놈에 대하여 자기의 할 일을 하곤 했는데, 수탉이 먼저 의사표시로 신호를 보내면 거역하는 일 없이 그 때마다 순종하여 자세를 낮춰주곤 했다.
이른 봄에 병아리를 거느린 암탉에 대하여는 특별히 관심을 두어 보호했는데, 지렁이나 굼벵이 같은 영양가 있고 맛있는 특별 식을 발견하면 그 병아리를 거느리고 있는 암탉을 다른 암탉에 우선하여 신호음을 보내서 먹이곤 하였다. 새끼를 거느린 암탉이 없을 때에도 제가 발견한 좋은 먹이를 제가 먹는 일이 없이 언제나 암탉을 불러 먹이곤 했는데, 대장으로서, 리더로서 대접을 받는 것이 공연한 일이 아님은 사람의 사회나 마찬가지임을 보았다. 수탉의 울음소리는 웅장하다. 천기를 불러 모으는 수탉의 울음소리. 새벽 세시, 인시가 되었음을 알리는 수탉은 시계가 없던 시절에 사람들에게 생활인으로서 행동을 개시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닭 우는 소리가 나기 전에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것이니 아마도 귀신이 승천하는 시간이기도 했는가 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도 있듯이, 닭 울음소리는 수탉만의 특권이었고 또 수탉은 이 울음소리로 암탉에게서 권위를 확인하는 무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수탉의 행동에서 멋스러움을 보았듯이 나도 그렇게 멋지게 살리라 했던 것인데 한낱 꿈으로 끝을 맺게 되었으니 아쉬움이 남는다. 수탉은 정력도 대단하다. 여러 마리의 암탉을 상대하면서도 피곤해서 비실거리는 것을 본 일이 없고, 울어야 할 시간에 지각하거나 빼먹는 일도, 늦 잠자는 일도 없었다. 진홍색의 벼슬로 말하는 위풍당당함이며 윤기로 반짝이는 깃털에서 풍기는 강건함, 위압감을 주는 발톱과 부리,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내가 닮고 싶은 수탉이다. 세상에서 나만한 인물이 어디에 있느냐는 듯 거만하고 당당한 태도를 지닌 수탉. 괜히 닮고 싶다고, 내가 그런 태도를 취했다가는 단 하루도 못 버티고 인간세상에서 추방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수탉의 모습은 바로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말 한마디로 가정의 질서가 쫙 잡혔고 애들도 그 앞에서는 입을 뻐끔하는 일이 없었다. 쌀이 떨어져서 혹 며칠 방아를 늦게 찧는 일이 있는 경우 어떻게든 식구들의 식사를 꾸려나가야 하는 문제는 오직 어머니의 애로사항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아내 앞에서 또는 애들 앞에서 권위라는 게 뭔지, 말할 기회도 없을뿐더러 말을 해본들 간접에 불과하니 깃털처럼 허공으로 날라 갈 뿐이다. 그 뿐인가, 가부장의 시대는 거하고 여성상위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아내와의 파워에서 밀린 결과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조금은 씁쓸한 맛을 지울 수가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친구들도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하는 걸 보면 그게 대세임이 틀림없다. 피할 수없는 운명 앞에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웃는 얼굴로 기쁜 듯이. 더구나 나이 들어 쭈글쭈글한 몸에, 푸석푸석한 피부며 엉성한 흰머리는 누가 봐도 볼품없으니 더욱 그렇다. 이제는 수탉 같은 멋이나 당당함은 고사하고 따돌림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이냐? 내게도 한때는 피부와 머리털이 윤기가 자르르하고 뻣뻣할 뿐만 아니라 체력이 넘치던 때는 수탉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멋스러웠고 당당하고 자신만만했었음을 회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뿐 다른 도리가 없다.
수탉은 멋진 일생을 살고 나서 마지막으로 사람에게 닭고기로 봉사함으로써 장렬한 일생을 마친다. 볼수록 아름답고 멋스러운 수탉이다. 그 멋을 쫓아가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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