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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 싸움에 얄미운 새우 등    
글쓴이 : 장은경    13-08-13 21:21    조회 : 4,649
 
 
                               고래 싸움에 얄미운 새우 등
 
 
TV에서 부부들이 권태기로 인해 서로에게 심드렁한 표현을 하기도 하고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괜한 심통으로 상대방을 괴롭히기도 하는 그런 상황들이 드라마니까 그러려니 했었다. 친구가 부부싸움을 하고 남편이 미워진다며 자기 마음은 비단결인데 남편한테 말을 할 땐 혀가 송곳이라며 상처를 주는 말을 한 것을 후회하는 하소연을 들었을 때도 그때는 정말로 남의 일인 줄 알았다.
아홉 살의 나이차와 6년간의 싱거운 연애를 하고 더 이상 재볼 것도, 따질 것도 없는 성실하고 듬직한 그 사람과의 결혼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결혼 후에 남편은 가끔씩 힘 있게 난을 쳐주기도 하고, 매일 아침 식사시간에 먼저 읽은 신문 내용과 날씨 등을 이야기하며 가족들의 하루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챙겨주었다. 언제나 남편을 돌아 볼 땐 익숙한 편안함과 견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 흔한 부부싸움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두 아이를 키웠다. 아니, 나 또한 아이들과 함께 남편한테 응석부리며 철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슨 일이든 양보해주고 배려해주며 혹시 맘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분상하지 않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던 남편이 중학생 딸아이와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작은 일에도 삐쳐서 방문을 닫는 일이 잦아졌다. 생각해보니 보약을 지어줘도 안 먹던 사람이 무슨 약인지 모를 약을 몸에 좋다며 혼자 먹기도 하고, 토요일이면 약초공부를 한다며 휴일을 반납하고 매주 모임에 나가고, 운동도 꽤나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건강을 생각해서 한다고 하기엔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50이라는 물리적 숫자에 굴복하는 듯한 그의 이상 징후들은 내게 흔히 말하는 권태기와 함께 찾아왔다.
 
그리고 남편이 변한 것인지 아님 남편을 바라보는 내가 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서로에게 적당한 무관심이 사랑의 다른 표현이란 말로 그의 행동에 대한 나의 반응을 합리화시킬 때가 가끔씩 필요해지는 상황들이 생겼다. 덤덤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서로에게 꽁한 마음들이 그 크기를 부풀려서 정서적 거리를 만들었고 그 거리는 아무리 큰소리로 얘기를 해도 들리지 않는 먼 거리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아무런 이유 없이 곁에 있기만 해도 갑갑해지고 미운 마음이 오래갈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부부가 살면서 거치는 예방주사쯤으로 생각한 권태기가 남긴 후유증치곤 좀 심각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마음의 무게를 지고 생각만하고 있느니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그 문제에 적극적으로 직면하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었던 경험을 살려서 먼저 손을 내밀기로 마음먹었다.
 
어색함 없이 쉬운 방법으로 택한 것이 가까운 근교에 바람이라도 쐬러가서 분위기를 전환하면 그의 꽁한 마음이 풀릴까하는 생각에 아이들과 함께 강화도로 새우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가는 동안 차안에서 아이들을 통한 웃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분위기는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전등사 구경도 하고 해안도로 따라 잠깐 드라이브를 한 뒤 새우 철에만 문을 연다는 초지대교 밑에 있는 경치 좋은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 식당엔 펄펄뛰는 새우 소금구이가 전부였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주문할 것도 없이 바가지에 담겨진 새우와 소금냄비가 들어왔다. 뚜껑으로 덮은 양은 쟁반이 들썩일 정도로 요동치며 바가지를 탈출하려는 새우를 멀뚱하게 바라보는 남편보다 내가 먼저 바가지를 잡았다. 그리고 펄펄뛰는 새우를 용감하게 두 손으로 덥석 잡고 달궈진 냄비 속으로 집어넣었다. 남편은 소금위의 새우가 먹음직한 붉은 색으로 익어가자 아이들과 똑같이 열심히 새우를 까서 먹으며 내게 눈길 한번 없이 먹는 일에 열심이었다. 옆자리에선 남편인 듯한 사람이 요동치는 새우를 곱디고운 색깔로 구워서 부인에게 초고추장까지 찍어서 입에 쏙쏙 넣어주고 있었다. 줄때마다 맛있게 받아먹는 그 여자는 바가지 속 새우가 움찔거리기만 하면 ‘무서워’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서운데 어찌 그리 잘 먹는지 괜스레 심통이 났다. 난 새우를 까먹는데 어설픈 아이들을 챙기느라 먹지도 못하고 새우그릇이 다 비워지도록 펄펄뛰는 새우가 무섭다는 말도 못해보고 열심히 새우를 구웠다.
무섭다고 했으면 새우하나 입에 넣어줄지 모를 일이었지만, 괜한 자존심에 말도 못하고 새우를 들어 보이며 “정빈아빠 이 새우 등이 꼬부라진 게 무지 얄밉게 생겼죠?” 라는 말로 다 익은 새우처럼 벌게진 마음을 살짝 드러내보였다. 남편이 알아주든 말든 그렇게라도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고 나니 내심 툴툴거리지 않고 잘 참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도 꾹꾹 눌러 참고 인내심 있는 척하다가 아니한 만 못한 결과로 더 서먹해져서 미안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새우 한 바가지 쯤 더 깐다 해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었다.
 
남편에게 콩칼국수를 밀어주기로 맘먹은 이유는 신혼 초에 시어머니께 배운 솜씨로 몇 번 좋은 반응을 얻은 음식이라 뜨끈한 콩칼국수 한 그릇 함께 먹으며 국수가락 풀어지듯 서로에게 맺힌 서운함을 풀어보려는 마음에서였다.
휴일 아침 운동간 틈을 타서 열심히 멸치국물도 만들고 콩가루 적당히 넣은 반죽을 한참을 치대서 밀고 썰고 뚝딱거리며 콩칼국수를 만들었다. 두 시간쯤 지나서 운동을 하고 들어온 그에게 콩칼국수 그릇을 공손하게 대접하고 그 위에 양념장과 더불어 환한 미소까지 선물해 주었다. 예상대로 만족한 표정을 한 남편은 국수그릇을 당겼는데, 문제는 아이들이 일어나지 않은 휴일 아침시간에 그것도 국수가 불을까봐 1인분만 먼저 해준 것이 문제였다. 조용한 집안에 뜨거운 국수를 후루룩 쩝쩝거리며 먹는 소리는 전에 듣던 그 소리가 아니었다. 갑자기 두 시간 넘게 남편을 위해 준비했던 정성스런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짜증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정말 참아보려고 나름 최대한의 정제된 언어를 선택해서 “조용히 좀 먹어요.”라는 말을 했는데 말투는 대포알처럼 툭 튀어나와 버렸다. 순간 ‘앗! 실수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남편은 먹는데 왜 뭐라고 하냐며 먹던 젓가락을 소심하게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콩칼국수 사건은 우리부부의 권태기를 확인시켜주는 계기로 작용했고 전보다 더 머쓱해져버렸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식당에 들어서며 느꼈던 허기는 사라지고 괜한 새우만 요리조리 뒤집으며 자세하게 들여다보니 등을 펴고 있는 새우는 한 마리도 없었고, 짧고 귀여운 다리가 10개나 있었다. 그동안 작은 눈, 또는 흘겨보는 눈을 보며 왜 새우 눈이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가 구부러진 새우의 모양이지 정말 새우 눈이 아니라는 것에 피식 웃음이 났다. 까맣고 동그랗게 툭 불거진 새우 눈을 바라보며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를 생각하니 억울할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남은 새우 몇 개 먹어보려고 무심하게 새우 껍질을 까는데 정말로 구부러진 새우등이 얄밉게 생기긴 한 것 같았다.
 
201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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