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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장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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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해를 낳다.    
글쓴이 : 장은경    13-08-13 21:37    조회 : 4,651
 
                                                             푸른 해를 낳다.
 
 
제주공항 앞 도로변에 늘어서 있는 열대 수종의 나무들과 국적을 달리한 사람들의 웅성거림, 광광안내 표지판을 뒤로하고 조금 전 공항에 내린 나는 익숙하게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대합실은 비교적 한산하다. 동회일주노선은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도는 시외버스 노선이다. 비릿한 바다 내음이 풍기는 낡은 버스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에 있었으면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찾아 음악을 듣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있을 테지만 여기서는 그저 한 가지만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가슴이 뛴다.
한 뼘 정도 열려진 창문사이로 바닷바람에 몸을 맡긴 물방울들이 날아 들어온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청록 빛 바다를 머금은 햇살이 열려진 창문 틈으로 길게 들어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었다. 비가 거세게 들이친다. 소금기를 머금어서 뻑뻑해진 창틀은 이방인의 손길엔 꿈쩍하지를 않는다. 보다 못한 버스기사는 차를 멈추고 창문을 닫고 다닌다. 고집스레 버티던 창문들은 잠깐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입을 꼭 다문다. 변덕스런 날씨 덕에 더 이상 바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기는 힘들 것 같다. 앞자리에 비슷비슷한 머리 모양을 한 아주머니들이 투박한 제주사투리로 주고받는 대화가 무감각하게 들려온다.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우리말은 그저 내가 아주 멀리 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가 그쳤다. 물기 가시지 않은 창문 너머로 어렴풋하게 성산일출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릴 적 내게 ‘엄마’라는 이름은 입으로 부르지 못하는 단어였다. 소리 없이 숨죽여 부를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는 단어. 떠오를 때마다 자꾸 허기가 느껴졌었다.
내 기억의 한 모퉁이엔 소사에 있는 복숭아 과수원의 풍경들이 곳곳에 얼룩져 있다. 여섯 살쯤이었던 것 같다. 농익은 복숭아를 하나 들고 개울가에 앉아서 씻으려고 할 때 저만치 귀에 익숙한 다툼이 들렸다. 난 아무것도 모른다.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단물이 스미는 물컹한 복숭아를 맛있게 먹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엄마가 주는 동전 몇 개를 들고 막대사탕을 사서 놀다오면 되는 것처럼 그저 흐르는 물을 철퍼덕 거리며 귀에 담고 싶지 않은 그 소리들을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 난 아무것도 보고 들은 것이 없는 아이가 되어야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면 틀림없이 사라지는 엄마가 무서웠기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복숭아향이 나는 달큰한 웃음을 지어야했다.
‘엄마’라고 부르는 게 금기된 시간, 매일 놀이터에서 모래장난에 열중했다. 작은 들썩임에도 사르르 무너지는 모래성을 하나하나 연결하며 울음 따윈 잊고 엄마를 기다렸었다. 그러나 해 질 녘이 되면 매번 완성하지 못하고 모래성은 무너졌다.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때 감당 할 수 없는 중압감은 과거의 상처로 자꾸 달음박질치게 했다. 세상 무엇보다 귀하고 예쁜 아이들을 볼 때 행복한 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벼랑 끝으로 나를 내몰았었다. 주변의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길 때 마다 아파도 침묵했다. 내가 가려하는 길 위엔 언제나 ‘엄마’라는 통행금지 푯말이 서 있었다.
불면의 밤들이 지속되던 어느 날 우울증을 동반한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병명을 진단 받았다. 발병 원인은 알 수 없고 다만 완치 불가능하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암담했다. 병에 수반된 여러 가지 증상들로 일상생활의 불편함은 물론이고 견디기 힘든 나날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건 아이들을 바라볼 때였다. 난 그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를 때 곁에서 ‘응’이라고 대답해주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남편은 남처럼 늘 바빴다.
하루에 몇 번씩 한 움큼의 약을 먹었다. 약을 먹을 때마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한 움큼씩 사라졌다. 힘겨웠다. 난 늘 벼랑 끝에 서있었다. 그곳에서 크기가 부풀려져 안으로도 삼키지 못하는 절망을 떨구고 있었다.
그 무렵 가족들과 제주 여행을 떠났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코스를 정해서 초콜릿 공장, 테디베어 하우스, 성읍 민속촌, 물 깊이가 일정하다는 함덕 해수욕장 등을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성산포’였다. 아이들은 성산일출봉을 오르는 것 보다는 아래에서 보트를 타고 싶다고 했다. 하늘이 유난히 푸른 날이었다. 검은 돌이 깔린 성산앞 바다는 인적이 드물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성산일출봉은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내가 늘 서있던 벼랑 끝이라 생각했던 그 곳에서 매일 아침 둥근 해를 밀어 올려주는 힘찬 근육이 하늘을 향해 도약하고 있었다. 바다는 오랜 세월 성산포를 쓰다듬었고 성산포는 곱게 늙은 해녀의 주름살 같은 해식애(海蝕崖)를 그리고 있었다.
성산포를 품에 안은 바다는 고요했다. 내가 수없이 떨군 절망은 그곳에 없었다. 우리가 탄 보트가 물수제비를 뜨듯 바다 위를 빠르게 미끄러져 다녔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맑고 투명한 햇살처럼 바다 위를 굴러 다녔다.
 
성산포가 내게 다가온 그날 과거는 먼 기억 속 숨 쉬지 않는 시간으로 뒤돌아서 갔다. 그 후로 가끔씩 그곳을 오른다. 느린 걸음으로 오르다 보면 휘훵한 바람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시린 가슴을 여며 준다. 가벼운 발걸음이다. 너울대며 따라오는 바다를 손잡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이어지는 계단을 오른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면 언제나 내가 설 수 있게 비워둔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서 깊은 숨을 토할 때 나는 푸른 해를 낳는다. 그리고 성산일출봉의 너른 등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스스로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뿌리를 단단히 하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나의 삶이 온전하게 지금 이 순간에 머물기를.
 
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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