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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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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의귀환    
글쓴이 : 조정숙    13-09-16 15:50    조회 : 5,468
                                                           칼의 귀환
 
                                                                                  조정숙
 
신혼살림들을 채 제자리에 앉혀 놓지도 못한 어느 날, 시어머님이 연락도 없이 오셨다. 결혼해 분가한 둘째 아들에게 가재도구들을 장만해주러 오셨다고 했다.
생활에 필요한 웬만한 살림살이들은 혼수로 준비했기에 필요 없다고 해도 반드시 당신이 사주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고 막무가내였다.
어머님은 나를 앞세우고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도시의 재래시장이라야 시골의 오일장처럼 전문 상인들이 찾아오는 곳도 아니고 몇몇 상점 주변에 채소 과일 생선 등을 파는 난전이 몰려있을 뿐 이었다.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 아쉬운 대로 철물점에서 부엌칼, 고무 통, 나무 도마 등을 샀다.
솜씨 없는 대장장이가 주물떡거려 만든 것 같은 무지막지하게 생긴 부엌칼은 등 부분에 알 수 없는 기호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는데 철물점아저씨는 대장간에서 직접 만든 거라며 침을 튀겨 가며 설명을 해댔다. 옹이 자욱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묵직한 나무 도마와 어른하나가 들어가 앉아도 파묻힐 만큼 깊은 고무 통은 제 무게보다도 훨씬 무겁게 느껴져 심통이 났다.
그것들은 산뜻한 신혼살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박하고 촌스러운 것들이었다. 잡지책에 나오는 것처럼 우아하고 아기자기한 주방 인테리어를 꿈꿨던 내게 그 물건들은 골칫덩어리였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어머님은 부엌칼은 반드시 시어머니가 사주어야 잘 산다는 옛말이 있다며 숫돌까지 사서 칼을 매끈하게 갈아주고 가셨다.
친구들이 신혼집구경을 오거나 옆집 새댁들이 놀러오면 그 물건들은 웃음소재가 되었다.
“어머, 요즘 누가 이런 거 쓰니 촌스럽게.”
그렇잖아도 고향이 시골이라 촌스럽단 말을 제일 싫어하던 나의 자존심을 팍팍 긁어내렸다.
내가 보아도 그것들은 아파트 씽크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골 부뚜막에 올라있어야 제 빛이 날 물건들이었다. 결국 얼마못가 베란다귀퉁이 창고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대신 신혼살림에 딱 어울리는 은빛 갈치를 닮은 날씬하고 하얀 칼과 가볍고 매끈한 도마가 씽크대 위에 장식품 겸 놓이게 되었다.
이사와 함께 창고 안에서 까마득히 잊혀져 가던 짐들은 친정집 창고로 실려 가게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처음에는 옷자락이라도 벨 것 같던 날씬한 부엌칼은 어찌나 쉽게 무뎌지는지 칼갈이에 열심히 갈아도 며칠 못가고 가볍고 매끈하던 도마는 어느 날 두 쪽으로 쫙 뽀개져 버렸다. 이후 소위 주방용품의 명품이라는 독일제, 일본제, 칼들을 사들여 사용 해봐도 값만 비쌀 뿐이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공부 못하는 사람이 책가방만 크다고 주방칼꽂이는 더 이상 꽂을 자리가 없을 만큼 만원이 되었다. 플라스틱도마 항균 도마 대나무 도마 실리콘 도마…….도마에 한 들린 사람처럼 새로운 도마가 나올 때 마다 구입을 해대 도마전시장이 되어버렸다.
친정집에 다니러간 어느 날 마당 한 구석 수돗가에 정겹게 느껴지는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비스듬히 놓여있는 숫돌 옆에 등 쪽은 까맣고 배 부분이 반짝반짝 빛나는 칼이었다.
“엄마, 이 칼 참 잘 들게 생겼네요.”
“너희 집에서 실려 온 짐 중에 신문에 뭔가 둘둘 말려 있기에 풀어보니 칼이더구나. 근데 이 좋은 칼을 왜 안 쓰고 버렸어?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칼인데.”
자세히 보니 우리 집서 구박을 받던 그 칼이 맞았다. 등 쪽에 알 수 없는 기호도 그대로였다. 예전엔 그토록 투박하고 볼품없던 칼이었는데 그날따라 엔틱한 느낌마저 드는 게 귀한 골동품처럼 느껴졌다.
“엄마, 이거 제가 다시 가져갈게요.”
집으로 돌아와 칼꽂이에 자리 하나를 비우고 그 자리에 넣었다. 영락없이 서울역에 방금 내린 보따리든 시골 사람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수없이 사들였던 칼들과는 소리부터 달랐다. 특히 무채를 썰 때는 손목에 힘 하나들이지 않아도 사악사악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예쁘게 썰어졌고 쉽게 무뎌지지도 않았다.
이십여 년 만에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온 칼은 귀한 대접을 받으며 예전 보다 훨씬 넓어진 주방을 차지하고 있다.
다니러 오신 시어머님은 “아직도 이 칼을 쓰냐? 요즘 예쁜것도 많던데 새것으로 사 쓰지. 참 깨끗하게도 썼다.” 하셨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당신이 사준 물건을 여태 지니고 있는 며느리가 기특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머, 어머님 아녜요. 칼이 너무 좋아서 이 칼 쓰다 다른 칼은 절대 못 쓸것 같애요. 제 며느리한테 까지 물려 줄 거예요.”
여우같은 며느리의 능청스런 연기는 어머님의 얼굴에 환한 웃음을 그려놓았다.
철없을 땐 그랬다. 실용성 보다는 겉모습을 따졌고 필요한 것 보다는 어울리는 것을 선호했다. 드러내는 것보다 담고 있음이 훨씬 멋지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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