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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연자를 위한 변명    
글쓴이 : 이정희    13-12-15 08:47    조회 : 4,860
흡연자를 위한 변명
학정 이정희
 
 참, 세상 많이 달라졌네요. 어쩌다가 담배도 마음대로 못 피우는 세상이 되었답니까.
 저는 야만인이 아닙니다. 범법자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눈초리에 왜 그리도 경원과 경멸의 표정이 담겨 있을까요. 이미 버스정류장이나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금지되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150㎡ 이상 음식점과 주점, PC방 등에 대해서도 흡연 단속이 시작되었고 단계적 금연구역 확대에 따라 2015년에는 모든 음식점 등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된답니다.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것 같습니다. 국회에서는 담배판매 규제 법안에 대한 논의까지 있었다지요. 뉴욕시에서는 이미 그런 규제방안이 나왔습니다. 술이나 커피를 못 마시게 한다는 소린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과문한 탓일까요.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떡하라고?’
 정말이지 울고 싶은, 아니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오랜 세월 나의 유일한 오락이자 도피처, 삶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촌음의 위안마저 박탈당해야만 하는 겁니까.
 
 종일 힘들게 일한 후 저녁 회식자리에라도 가면 음식이 나오기에 앞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이런저런 한담을 나눌 때가 있었지요. 그때가 좋았습니다. 그럴 때, ”여기 재떨이 좀 갖다줘요!“하고 호기롭게 소리치던 동료의 목소리도 이젠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이제는 이 눈치 저 눈치 보아가며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씁쓸한 표정으로 연기를 내뿜고 있는 기 꺾인 사내들만 보일 뿐입니다. 흘끔흘끔 식당 안의 일행들을 바라보면서요. 측은하고 서글픕니다. 꼭 그렇게 도둑담배를 피워야만 하는 건가요.
 한때는 인삼과 함께 국영으로 관리하며 중요한 세수(稅收)원이던 담배가 아니었던가요. 남자라면 담배 한 대 피울 줄도 알아 아무리 어색하고 난처한 상황에서도 서로 한 대 권하고 불을 붙여 주면서 소통의 물꼬를 트던 그런 담배가 아니었나요.
 어느 때고 생명과 건강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이즈음처럼 건강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때도 일찍이 없었지요. 매스미디어를 통해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바로 알려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담배가 인체에 얼마나 해로우며 실제로 담배로 인한 폐암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그로 인한 경제비용은 또 얼마나 막대한지, 피우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연기를 맡는 간접 흡연자들도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받는지 저절로 듣고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누군들 흡연의 피해를 모르겠습니까. 저 또한 알고 있습니다. 금연해야 저도 건강하고 가족의 건강도 지킬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옳은 말과 그 말을 실천하는 문제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오래 길든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딴에는 노력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마땅한 대안 없이 강압적으로 몰아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흡연을 규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와는 반대로 현실은 안 피우던 사람까지도 피우고 싶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성실하기만 하면 정년까지 일해서 월급 받아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몸이 쑤셔도 내색하지 않았고 제가 하는 일에 마땅한 대우를 못 받아도 불만을 속으로만 삭였습니다. 자식들이 학업을 마치고 원하는 곳에 취업하여 더 이상 나에게 기대지 않을 때까진 묵묵히 뒷바라지하리라 이를 악물었습니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듣지도 못했던 구조조정이란 말이 떠돌기 시작하더니 저는 대책 없이 그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무능한 탓이 아니냐고요?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가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라는 망상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보통 직업인 중의 하나였지요. 그래도 아이들에게만은 희망을 걸었답니다. ‘나는 비록 급변하는 시대에 인정받지 못했지만, 너희들만은!’ 하면서 말입니다.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젓이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취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때를 잘못 만난 애비 탓에 고생도 많았는데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으니 어찌합니까. 딸이라도 능력이 있는 남자에게 시집가서 아이 낳고 잘 살기를 소망했지요. 짝은 만났으나 아이를 갖지 않겠답니다. 사는 것도 힘에 겨운데 교육비가 많이 든다니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거지요. 사위와 둘이 허리끈을 졸라매도 한 아이 뒷바라지가 만만치 않을 거라 했습니다. 왜 아이를 낳아서 스트레스 받고 죄 없는 아이까지 고생시키느냐는 겁니다. 꼭 애비인 나를 원망할 의도는 아니었을 겁니다만, 전 제풀에 속이 뜨끔하더군요. 일부 유치원의 아동 신상명세서에 조부모의 직업을 적어 넣는다는 말이 사실이라고 합니다. 혹시 모를 불안정한 부모 뒤에 든든한 후견인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미 오래 전에 정년을 채워 물러나신 분들은 운이 좋은 분들입니다. 웬만하면 직장도 보장되었고 담배도 자유로이 피울 수 있었지요. 근래의 조기 정년자 혹은 반강제적인 은퇴자의 속 타는 심정을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소위 몸피를 줄인다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어느 날 대책 없이 내몰린 사람의 막막한 심정을 짐작이나 할까요.
 저도 담배를 끊고 싶습니다. 남들처럼 등산을 하거나 다른 건실한 취미생활을 하면서 비난의 눈초리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헌데 하던 게 도둑질이라고 배운 게 그것뿐이고 누구와 어울리는 데 서툴고 또 밀려날까 봐 겁부터 나니 이를 어찌해야 좋습니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어디 먼 버진 아일랜드라는 이름의 섬에다가 실체도 없는 회사를 차려놓고 세금 포탈을 위해 거액을 숨겨두었다지요? 이틀이 멀다고 성폭행이니 추행이니 하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최근에는 우리 생활의 근간이 되고 있는 원전비리까지 드러나 공분을 사고 있지 않습니까? 일일이 들먹거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사회적 비리와 범죄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미 금연을 했던 사람까지도 다시 한 대 피워 물고 욕을 내뱉게 만들 것 같은 현실입니다. 그런데 울화통이 터져 화풀이하고 싶을 때, 죽고 싶지만 남은 가족을 생각해 스스로 마음을 달래야 할 때, 한 대 피우며 마음을 추스르는 일이 그리도 비난받아야 할 일입니까. 술이 있지요. 커피가 있지요. 하지만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담배만큼 손쉽게 저를 달래주는 것은 없답니다. 아롱아롱 말려 올라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담배연기와 함께 자칫 우울증으로 발전할지도 모를 저의 울화를 다소라도 털어버릴 수가 있다면, 한번 너그러이 저의 흡연을 참아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에세이문학>> 201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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