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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딩노트    
글쓴이 : 박재연    14-02-07 07:20    조회 : 4,919
   영화 <<엔딩노트>>는 조만간 닥칠 자신의 장례식 절차나 사후처리에 대해 꼼꼼히 정리해둔 노트인 동시에 마지막 소원을 이뤄가는 버킷리스트이다. 69세 남자 스나다씨는 정년퇴직 후 제2의 인생을 꿈꾸던 중 말기 암을 선고받는다. 말기 암 판정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마지막을 의미하지만 그에게는 가족을 남겨두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할 시작이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이라고는 6개월 남짓. 무모한 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남은 삶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을 준비한다. 장례식에 초청할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장례식장도 미리 답사하는 등 모든 과정을 가족과 함께 꼼꼼히 챙기는 것은 여느 가족행사 준비와 다르지 않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비통함을 숨기고 태연하게 대처해 가는 모습은 대지진의 비극 앞에서도 의연했던 일본인들의 성품을 보여준다.
장례를 준비하면서 그는 버킷리스트의 목록 또한 실행한다, 손녀들과 실컷 놀아주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야당에게 투표를 하며 평생 부인했던 신을 한번 믿어보기로 작정하면서 노모까지 함께한 가족여행을 떠난다. 스나다씨는 임종이 임박하여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지금 여기가 천국이라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아버지가 스러져가는 과정을 딸이 직접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이 영화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일본 중장년층에게 엔딩노트를 작성하는 바람을 몰고 왔다고 한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죽은 후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 없는 무연사(無緣死)’가 늘어가면서 도쿄 사망인구의 30%는 빈소도 없이 바로 화장장으로 가는 직장(直葬)’을 치른다고 한다. 애도해줄 사람이 없으므로 굳이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작가 텐도 아라타(天童荒太)의 소설<<애도하는 사람>>에서 주인공이 생업을 포기한 채 날마다 연고 없는 죽음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명복을 빌어주는 것은 이런 사회적 현상을 잘 말해준다. 주인공은 애도에 앞서 생전에 고인이 누구를 사랑했는지 또 누구에게서 사랑받았는지를 알아내는데 삶의 가치는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측정가능하다는 뜻일 것이다.
   엔딩노트보다 임종노트를 작성하는 이들 또한 많으니, 임종노트는 자신의 시신을 거두게 될 누군가에게 뒷일을 부탁하는 짧은 메모이다. 그런 상황에서 스나다씨의 엔딩은 우리가 꿈꾸는 완성된 삶이고 행복한 마무리이다.
호스피스 간호사 아이라 바이오크가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에서 관계의 완성을 강조했듯이, 스나다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공포스런 미래가 아니라 남은 가족들에 대한 염려와 배려였으며 사랑과 감사의 관계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고독사와 무연사가 늘어가는 사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을 허락받았다는 것, 그리고 영화에서는 자세히 나타나지 않지만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다스릴 수 있었다는 것. 이 세 가지만으로도 그의 마지막은 더할 수 없이 축복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도 100세 장수사회가 되면서 노후 뿐 아니라 사후까지도 스스로 준비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스나다씨는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으로 명실상부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었다. 사람도 오래되면 물건처럼 식물처럼 낡고 시들어 사라진다면서 할아버지의 엔딩을 받아들이는 어린 손녀들의 모습은 죽음에 대한 성숙한 태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아직도 멀고 먼 이야기이다. ‘유품 정리업이라는 신종사업이 생겨나고, ‘동네장()’이라는 새로운 장례형태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죽음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린다. 최근 들어 존엄사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나의 죽음을 생각하면 죽음 자체보다도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크다. 고통 없이 갈 것과 딸과 남동생이 지켜봐(남편은 먼저 보냈을 것이다) 주기를 바라지만 갑작스런 사태 앞에선 이 모든 생각이나 계획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오늘도 어느 소방관의 영웅적인, 그러나 예기치 못한 죽음이 전해졌다. 그러니 불의의 사태에 대비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의료의향서에 서명을 한 것과 장기기증을 미리 서약한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살아온 방식이 죽음을 맞는 태도를 결정한다는 말대로 스나다씨는 평소에도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해왔음에 틀림없다. 또 그러한 태도는 자기존재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 될 것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고 싶은지, 내 죽음의 풍경은 어떻게 되기 바라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내 죽음의 주인공은 진정 여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이 영화는 확인시켜주고 있다.
 
    <<에세이스트>> 2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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